북한 호랑이 사냥한 페르시아 왕자 -1974년 -2-

북한 호랑이 사냥한 페르시아 왕자 -1974년 -2-


희귀 동물의 사냥에만 특화된 그의 취미는 한국 호랑이에게 쏠렸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근세 조선이 세계를 향하여 문을 열었던 1880년대부터 한국의 호랑이는 구미 수렵 전문가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으나 한국 호랑이의 매력적 특징들이 희귀 추구 구미 헌터들의 유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요즈음 어느 학자가 러시아 호랑이의 유전인자와 한국 호랑이의 유전인자가 같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호들갑스럽게 발표하자 이 말에 너무 무게를 둔 각 동물원의 담당자들은 시베리아 호랑이나 중국 동북호 전시실 설명문에 한국 호랑이라는 명칭을 붙이느라 바쁘다.


초등학교 1학년 어린애라도 보여주면 한국 호랑이와 시베리아 호랑이의 생김생김과 크기가 다르다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본다. 한국 호랑이와 시베리아 호랑이가 절대 같은 종의 호랑이로 볼 수가 없는 차이가 분명 존재하는데 둘 다 같은 명칭으로 불리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동물 분류학에서야 유전인자가 부동의 기준이 되겠으나 민족 정서상, 그리고 상식상 생김생김에서부터 분명 차이가 있는 우리 호랑이를 한국 호랑이라고 부르기를 중단한 처사는 바람직하지 않게 생각된다



한국 호랑이는 동양 3국, 즉 시베리아 호랑이 중국 호랑이[동북호]중 가장 작아서 미니 [Miniature]호랑이라고 불렸었다. 머리가 약간 작아 다른 동아시아 호랑이들 보다 더 날쌔게 보인다. 줄무늬의 간격이 좁고 선명하다. 또 복부의 하얀 부분이 매우 넓어서 모피의 아름다움이 다른 동아시아 호랑이들을 압도했었다. 


한국 호랑이는 좁은 지역에서 경쟁을 하며 살아서인가 제일 표독스러웠고 사람 공격을 서슴지 않고 해댔다. 한국 호랑이에 대한 평판이 잘 알려졌었으나 한국 호랑이는 20세기에 들어오면서 빠르게 멸종되어가고 북한 일부 지역에서만 근근히 살아남았다.


북한에는 호랑이들이 그런대로 제법 있었던듯하다. 6.25 전쟁 중에 중국 연변 지역에 갑자기 호랑이가 무척 늘었고 인명 피해도 자주 있었다. 연변 어르신들은 북한의 호랑이들이 밤낮없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미군의 전투기나 폭격기들이 내는 폭음에 놀라서 강을 건너 중국으로 피난온 것이 아니냐고 추측했었다.


십 여 년 전에 북한에 한국 호랑이는 아직도 10마리 미만이 살아 남아있다고 했는데 지금 상태가 어떤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하여튼 드물지만 그 전설적인 호랑이들이 살아 남아있다고 하니 희귀한 동물만 쫓는 트로피 헌터 아부둘 레자 왕자가 가만 있었을 리가 없다. 그는 교섭을 거듭해서 북한에 와서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세계적으로 희귀한 트로피 동물를 잡는 꿈을 이루었다.


[윈체스터 458구경 매그넘 탄]


사진에 보이는 그의 총은 총신이 굵다. 그가 애용하던 7mm 총이라면 총신이 저렇게 굵지는 아닐 것이다. 강력한 맹수용 총인 458구경의 총신으로 보이며 그가 맹수를 잡기 위해서 만반의 준비를 한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에서 사진을 다시 보자. 아브둘 레자 왕자 좌우의 북한 인간들이 여느 사냥 가이드나 발꾼[추적자]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 모두 살집이 잘 붙어 있고 옷차림을 근사하게 차려 입은 것을

보면 그들은 고위 관리들로 보인다. 한 명은 통역이고 한 명은 그를 전담 마크하는 로비의 전문가가 아닌가 하는 추리가 가능하다.


1974년 제1차 오일 쇼크를 거치면서 이란은 천정부지로 오른 오일 값으로 세계의 돈을 주어 담았었고 나라 전체가 흥청망청했었다. 마치 주부가 장보기 하듯 최신의 무기들을 마구 사들였다. 미국의 F-14기도 이때 사들인 것이고 영국제 최신 치프텐 탱크도 이때 사들인 것이고 나중에 주문 취소되었지만 미 해군 최신 스프루언스 급 구축함 다섯 척도 이때 사들인 것이다. 이란 왕 레자 샤는 미국  방문 길에 TV에 츨연하여 이란을 금세기[20세기]말까지 세계 5대 강국으로 만들겠다고 큰 소리쳤었다.


[1978년 이란을 방문한 미 대통령 카터와 팔레비]


중동의 왕족들은 거의 이권과 특혜에 개입해서 막대한 돈을 버는 존재들이다. 오늘날 사우디 아라비아에 득시글한 부자 ‘왕자’들이 그 좋은 본보기다. 1979년 이란 팔레비 왕이 호메이니가 주도한 시민 혁명으로 왕좌에서 쫓겨날 때 그에게 퍼부어진 비난중의 하나는 ‘왕족들이 부정부패했다’는 사실도 있었다. 


아부둘 레자 왕자도 사업을 하는 사람인데 이권 사업에 관심이 없었겠는가?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그는 외국 친구도 많았었다. 그가 오일 채굴에 관여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북한이 돈이 물처럼 철철 넘치는 중동의 부자 나라 권력의 핵심에서 제발로 찾아온 이 귀빈을 그냥 호랑이나 한 마리 들려주고 단순한 관광이나 시켜서 돌려 보냈을리는 만무하다.



[1958년, 아기를 낳지 못해 팔레비 왕에게 이혼당한 비운의 소라야 왕비.

이란인과 독일인의 혼혈이다]


북한은 그때 이란에 가서 돈을 벌어올 건설업 같은 상업적 기술이 없었다. 당시 북한은 남한이 외자 도입의 전략으로 경제 개발에 성공한 것에 자극 받아서 분수에 넘는 외자를 마구 도입할 때였다. 그 엄청난 이란의 오일 머니가 욕심이 났을 수도 있다. 이란이 돈을 대출해주었는지는 확인이 안되지만 아마 상당액을 떼어 먹혔을 것이다. 북한은 세계 최악의 악성 채무국이었으니까 말이다.


또 있다. 최신 무기만 구매하던 이란의 무기시장에도 개인 화기나 포탄 등의 저수준 기술분야에서 북한이 머리를 들여 밀어볼 숨은 시장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무렵 북한은 이런 보병이나 포병의 기본화기 분야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어 제법 쓸만한 상품들을 생산하고 있었다. 이란의 왕자에게 진귀한 호랑이 한 마리를 선물한 북한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꿀단지 이란에 혀를 대며 핵심으로 파고들었을 것이다. 


북한은 이래저래 아부둘 레자 왕자를 브로커로 삼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했을 것이고 그의 중개로 이란 군부 등의 권력 최상층에 인맥을 쌓았을 가능성이 크다.


5대 강국을 꿈꾼다던 이란 팔레비 국왕의 꿈은 5년도 못 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의 정적이며 종교 지도자인 호메이니를 추종하는 국민들이 시위를 일으켜 팔레비를 이집트로 내쫓았다. 팔레비 축출 후에 들어선 이란 정부는 5대 강국이 되기에 가장 비효율적인 신정국가[神政國家]체제로 변신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의 이란 종교 지도자 호메이니.]


아부둘 레자 왕자는 운이 좋았던가, 또는 앞날을 내다보는 예지력이 있었던듯하다. 그는 형 팔레비가 쫓겨나기 2년 전 주변 정리를 하고 미국으로 거주지를 옮기고 말았다. 미국의 플로리다에서 사냥을 즐기며 유유자적하던 아부둘 레자 왕자는 2002년 작고했다.


팔레비 왕조가 타도되고 권력층도 무너졌지만 북한의 이란 인맥은 그런대로 살아있었다. 그 인맥은 1980년에 발발한 이란 이라크 전쟁이 벌어지자 그 가치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전쟁 덕에 북한은 이란에 지대지 미사일은 물론 막대한 무기를 팔아먹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는 당시 반미 색깔을 노골적으로 들어내는 이란에 무기를 팔지 않아 이란은 무기 획득에 무척 애를 먹었다. 북한이 이 틈새를 파고 들었던 것이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북한과 이란은 밀접한 관계를 맺어오며 지금까지 지내 왔던 것이다. 이번 박대통령의 이란 방문은 북일 관계에 던지는 일종의 견제구였는데 하여튼 한국 호랑이가 그 관계 형성에 일조한 북한 이란의 관계가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하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Trackbacks 0 / Comments 1

  • ㄷㄷㄷ 2017.01.24 00:50

    저거 북한 호랑이가 아니라 동물원 호랑이를 풀어준 걸 겁니다. 탈북 외교관의 자서전에서 봤던 것 같네요. 무슨 아랍 왕자가 와서 백두산 호랑이를 잡고 싶다길래 동물원 호랑이까지 풀어줘서 잡았다는...
    그래서 대가로 무슨 경제 협정을 맺었다던가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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