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사를 사수하고 수호하는데 평생을 바친, 故 박병선 박사

우리나라 역사를 사수하고 수호하는데 평생을 바친, 박병선 박사



과거 우리나라의 역사가 담긴 옛 서적이나 문헌의 가치를 복원하고 다시 생명을 불어 넣는데, 평생을 바친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역사학자 故 박병선 박사인데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는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라고 알려져 있던 그 역사를 뒤바꾼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녀와 직지의 만남 순간, 그리고 그녀가 진짜 찾으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오늘은 우리의 것을 지켜내고 그 존재와 가치를 되찾으려 했던 그녀의 열정적인 삶을 들여다보도록 합시다.



ㅣ그녀와 '직지심체요절'의 뜻밖의 만남, 그리고 뒤바뀐 역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를 졸업한 그녀는 우리나라 여성 최초로 프랑스 유학을 떠난 인물 중 하나이기도 한데요. 33살 늦은 나이에 그녀가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약탈해 간 외규장각 의궤를 꼭 찾아보라는 그녀의 스승, 이병도 선생의 당부가 있었기 때문인데요. 외규장각 의궤는 단지 프랑스에 있을 것이라는 추측 뿐이었지, 정확한 존재 여부조차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프랑스 유학을 떠난 박병선 박사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병인양요에서 약탈당한 조선시대 도서 외규장각 의궤 뿐그녀는 우리 문화재산을 되찾고자 프랑스 전역의 도서관, 고서점 등을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돌아다니게 됩니다. 




한편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는 1972년 유네스코 '세계 도서의 해' 전시를 준비하던 중에 동양권을 담당할 실무자가 없어 고민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때 마침 도서관 일대를 드나들면서 유명해진 '박병선' 박사의 존재를 떠올리고,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박병선 박사를 사서로 불러 도움을 청하게 됩니다. 


그렇게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특별연구원으로 채용돼, 마음껏 책을 찾고 볼 수 있었던 그녀는 더욱더 열심히 열정적으로 의궤 찾는 일에 열을 올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 깊은 곳 동양 서적고에서 먼지에 뒤덮인 책 한 권을 발견하게 되는데요. 그것이 바로 직지심체요절이었습니다. 



[출처 : 세계기록유산/ 금속활자주조전수관]



직지심체요절은 직지라고도 불리는데, 승려인 백운 화상이 이름난 승려들의 말씀이나 편지 등에서 뽑은 내용을 수록해 놓은 책으로 충북 청주 홍덕사라는 절에서 1377년에 금속활자로 찍어 낸 책입니다. 당시 50~100부 정도 인쇄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요. 현재는 하권 한 책만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 쇠를 부어 만든 글자를 배포했다"


당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는 '구텐베르크의 성서'로 알려져 있었는데요. 직지의 마지막 장에 쓰여있던 글씨는 그 보다 이른 시기에 직지가 발간되었다는 것 증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녀는 프랑스 측에 이를 알렸지만 이 사실을 믿지 않았고, 박사는 직지가 금속활자본임을 증명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연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인쇄 역사 공부를 하면서 금속 활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조사하고, 감자, 고구마, 지우개 등을 이용해 직지에 찍힌 글자의 형태와 비교하며,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세계에 알리고자 지속적인 연구를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직지'가 금속활자로 인쇄되었음을 증명하고, 1972년 프랑스 국립도서관 '세계 도서의 해' 전시에서 '책의 역사'전에 직지가 세계에 알려지게 되는데요. 이후 직지의 가치는 세계에서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면서 금속활자의 역사가 바뀌게 되었습니다. 



ㅣ 그녀가 프랑스 유학을 나섰던 진짜 이유 '외규장각 의궤'의 존재


박병선 박사가 밝힌 직지의 존재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를 타이틀을 가져다주었고, 우리나라 문화 유물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해줬습니다. 

그렇게 직지를 세상에 알리고 난후, 그녀가 프랑스 유학길을 떠난 진짜 이유인 '외규장각 의궤'의 존재를 찾고자하는 열정은 끊임이 없었는데요. 도서관 내부의 온갖 장소를 다 찾아봐도 도저히 찾을 길이 없는 의궤 때문에 지쳐만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1977년 도서관 별관에 파손 동양 도서가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곳에서 몇 날 며칠을 밤새우며 의궤를 찾는데 열정을 쏟아부었습니다.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결국 노력 끝에 파손 서적 보관창고에서 '외규장각 의궤'를 찾게 되고, 영영 잠들어 있을 뻔했던 의궤는 그녀의 손에 이끌려 세상의 빛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그녀는 반가운 마음에 프랑스 국립도서관 폐지 창고에 방치되어 있던 외규장각 의궤의 행적을 한국에 알리게 됩니다. 




하지만 프랑스는 그녀가 의궤의 존재를 한국에 알렸다는 이유로 '한국의 스파이'라고 오명을 씌우고 권고사직 처리를 하게 됩니다. 그녀는 이에 굴하지 않고 지속적인 의궤 연구를 하기 위해 일반인으로 도서관에 열람 신청을 하게 되는데요. 어느 순간 의궤는 '귀중 도서'로 도서관에서 따로 관리를 하게 되고, 이를 이유로 매일 열람 거절을 당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궤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더 강해져만 갔습니다. 결국 10여 년간 매일 도서관에 찾아가 열람신청을 한끝에, 열람이 가능해지면서 의궤 해제하는 작업을 하게 되는데요. 의궤가 한자와 이두로 되어 있어 하루 종일 연구해도 몇 장 해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그녀는 끼니를 거르면서까지 일에 몰두를 했습니다.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이러한 박사의 꾸준한 연구와 끈기로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을 추진하기로 했는데요. 이후 의궤는 그녀의 노력으로 반출된 지 145년 만에 대여 형식으로나마 고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소유권이 프랑스에 있어, 5년 주기로 대여 합의를 갱신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인 직지의 존재와 가치를 세상에 알리고자 했던 故 박병선 박사. 그녀는 지금 오랜 암 투병으로 생을 마감하고, 국가 사회공헌자로서 국립 서울현충원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우리 문화재 복원과 보호에 공을 세운 박병선 박사는 잃어버린 우리 역사를 되찾아 주었고, '대한민국'의 귀중한 보물을 지키는데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우리 역사와 문화의 수호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그곳에 잠들었지만, 누군가는 그녀의 뒤를 이어 직지와 의궤를 안전하게 완전히 가져오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 간절함처럼 우리는 우리나라 역사의 소중함을 알고 귀중하게 여기며, 그것을 확실히 지킨다면 그것 또한 나라를 사랑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요? 




Trackbacks 0 / Comments 1

  • 최초의 2017.11.22 08:37

    일본은 인물 역사 영화도 많이 제작인데
    우리나라는 역사인물 관련 영화가 별로 없는게...

    이분은 정말 대단한 분인데
    막상 영화나 다큐가 없는 현실...

    문화재 발굴...
    10년간...

    내가 일본 시모노세키 억류당한후
    10년간 혼자 조사후 미발굴 독립투사 발굴...

    이점에서 고 박병선 박사님의 노력을 공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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