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복하라! 너희들은 포위되었다

항복하라! 너희들은 포위되었다

 

전쟁이라는 상황은 워낙 급박하게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므로 감성이 이성을 지배하는 경우가 흔하게 벌어진다. 나중에 전후좌우 사정을 모두 알고 나면 너무나 어이없다고 한 숨을 쉴지 모르지만, 목숨을 걸고 싸우는 치열한 전투 중에는 멀쩡히 눈뜨고 상대에게 당하는 사건은 의외로 많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사건 당사자들의 선택이나 결정이 잘 못되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 치열한 전투 중에 항상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다 ]

 

왜냐하면 전쟁은 항상 목숨을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의 연속이기에 어떤 결정적인 판단을 내릴 경우라면 상당히 진지하게 고뇌하였을 것은 틀림없다. 그러한 순간이라면 당연히 1초의 촌각도 한 시간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전쟁은 아무리 무기와 장비가 동원된다고해도 종국적으로 사람들의 결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다음에 소개할 내용은 6.25전쟁사에 나와 있는 바로 그러한 사례다.


[ 급박한 상황에서는 수많은 판단을 하여야 하고 종종 어이없는 경우도 벌어진다 ]


1950년 7월 중반이 되면서 낙동강을 교두보 삼아 결사의 방어전을 펼치는 아군과 최후의 일격을 가하여 부산까지 점령하려는 북한군 사이의 일진일대의 공방전이 일대에서 연일 벌어지고 있었다. 폭염이 겹쳐지면서 그해 여름은 더욱 뜨겁게 불타올랐고 전선은 양측이 흘린 피로 적셔졌다. 특히 마산, 왜관, 다부동, 영천, 포항의 전략 거점들은 전쟁의 승부를 결정할 건곤일척의 싸움터였다.


[ 1950년 9월 낙동강 전선의 상황도 ]

 

그렇게 불같았던 그해 여름이 지나가고 조석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 9월이 되자 이제 적들도 아군의 철벽같은 방어선을 넘지 못하고 때리다 지쳐버린 상황이었다. 영천 일대를 사수하던 국군 청성부대는 한 달 가까이 계속 된 북한군 5사단의 엄청난 압박을 물리치고 반격에 나설 준비를 진행하고 있었다. 당시 아군은 조만간 개시 될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면 낙동강을 박차고 나와 앞으로 내달릴 예정이었다.


[ 아군 2소대가 전진 배치를 위하여 이동에 들어갔다 ]


그러던 9월 11일 아침 10시경, 예하 19연대 5중대 2소대는 새로 보급된 3.5인치 바주카 로켓포를 장비하고 전초를 설치하려 조교동으로 출동하였다. 이때 T-34와 더불어 전쟁 초기 북한군의 대표적 기갑장비인 Su-76 자주포 1대가 굉음을 내며 전속으로 달려오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Su-76은 자주포로 구분되지만 제2차 대전 당시 독일의 돌격포처럼 소련이 사용하던 대표적인 보병 근접지원용 기갑장비였다.

 

[ 전쟁 초기 서울 도심을 지나가는 북한군 Su-76 ]


신형 바주카 로켓포로 충분히 격파할 수는 있었지만 당시 2소대는 진지를 구축하기 전이라 아직 발사 준비를 완료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그대로 우물거리면 Su-76은 2소대가 방어선으로 예정하고 있던 도로 인근을 그대로 통과 할 지경이었고 자칫하면 배후에 있는 5중대 본진을 치고 들어갈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렇다면 선두부대와 제19연대가 순식간 분단될 수도 있었다.


[ 3.5인치 로켓포로 격파가 가능했지만 준비 시간이 부족하였다 ]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소대장이나 소대원 모두 시간적 여유가 없고 이를 막기 위한 준비도 되어있지 않아 허둥대고 있었다. 바로 그때 전입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신병 하나가 갑자기 도로 중앙으로 뛰어 나갔다. 어느 누구도 제지할 틈도 없이 순식간 벌어진 일이었다. 아무리 겁 없는 신병이지만 맹렬히 달려오는 자주포를 단신으로 막으려 한 이 행동은 누가 보더라도 너무나 무모한 행동이었다.


[ 신병은 홀로 Su-76을 세우고 항복을 요구하였다 ]

 

이 신병은 두 손을 번쩍 들고 북한군 자주포를 향해 그 자리에 서라고 신호를 보내었다. 이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도로 한가운데 갑자기 나타난 국군을 보고 놀란 Su-76은 급정거를 하였다. 약간의 침묵이 흐르고 나서 신병은 큰소리로 외쳤다. "너희들은 포위되었다. 항복하라". 아무런 답변이 없이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신병은 다시 외쳤다. "항복하면 목숨은 살려 주마"


[ 낙동강 전투 당시 도로 한가운데서 격파된 Su-76 ]

 

그러자 자주포의 헤치가 서서히 열리고 지휘관과 승무원 4명이 차례로 손을 들고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신병의 가만 행위에 철저히 속아 자신들이 위험한 상태에 빠져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이들을 마주한 신병은 북한군의 무장을 하나하나 해체하기 시작하였고 그때서야 정신이 든 소대장과 소대원들은 차례로 튀어나와 항복한 북괴군 포로를 접수하고 온전한 Su-76을 노획하였다.


[ 적의 항복으로 끝났지만 여러 생각을 들게 하는 사례다 ]


맹렬히 달려오는 적의 자주포를 향해 뛰어든 신병을 용기 있다고 하여야하나? 아니면 만용이었다고 해야 할까? 그도 저도 아니면 재치가 있었다고 할까? 그리고 국군의 갑작스런 출몰에 놀라 자주포를 멈추고 항복하였던 북한군들은 좁고 어두운 자주포 안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얼마나 많은 갈등을 겪었을까?

 

[ 전투 후에는 노획품을 보며 여유를 즐기지만, 과연 직전까지도 그랬을지는 의문이다 ]

 

다만 대치하고 있던 그 짧았던 시간이 도로에 서있던 신병도, 근처에서 매복해 있던 소대원들도, 자주포속의 북한군도 모두 너무나 무서운 순간이 확실하였을 것이다. 비록 어처구니없는 에피소드로 소개하였지만 제3자에게나 그런 것이지 당사자들에게는 그 시간이 평생을 살면서 잊지 못할 가장 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은 항상 무서운 순간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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