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암흑 시대를 뚫고온 한국 최초의 여성비행사 '권기옥'

대한민국의 암흑 시대를 뚫고온 한국 최초의 여성비행사 '권기옥'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영웅들을 되돌아보면 누구보다 큰 꿈과 대범함을 품었던 여성들도 많은데요. 그중에서도 중국 만주 벌판에서 대한 독립을 외치며, 8.15해방, 6.25전쟁, 그리고 근현대사의 암울하고 절박했던 시대를 뚫고 온 여성이 있습니다. 한국 최초 여성 비행사 '권기옥'인데요. 영화 <청연>이 개봉되면서 '박경원'이 한국 최초 여성 비행사로 널리 알려졌지만, 대한민국 공군이 인정한 한국 최초의 여비행사는 권기옥입니다. 오늘은 하늘 위에서 조국의 자유를 외친 권기옥의 삶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ㅣ어린 나이에 대한 독립 운동가가 된 소녀 




[출처 : 국민일보_당시 숭의여학교 모습]


1903년 평양에서 1남 4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난 그녀는 집에서 '권갈례'로 불리게 됩니다. '일찍 생을 마감한다'는 뜻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녀의 탄생은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가난한 집안 형편에 11살 때부터 은단 공장에 취직해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던 그녀는 12살이 되던 해 교회에서 운영하는 숭현 소학교에 입학을 하고 졸업한 뒤, 기독교 계통학교인 숭의여학교에 3학년으로 편입하게 됩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권기옥은 당시 숭의여학교에서 교사로 있었던 박현숙*의 영향을 받아 반일 비밀 결사 단체인 송죽회*에 가담하게 됩니다. 숭의학교 재학 중에 3.1운동이 일어나자 일본의 눈을 피해 한선부, 김순복, 차진희, 최순덕 등과 함께 태극기를 만들며 애국가 가사를 등사하는 등 독립운동에 참여하게 되는데요. 1919년 3월 1일, 태극기와 애국가를 적어 치마에 숨겨 모인 이들은 김선주 목사의 독립 선언문 낭독 하에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고 거리에서 만세 운동을 펼칩니다. 


*박현숙 선생 : 항일 기독교여성단체 활동 독립운동가 ㅣ *송죽회 : 1913년 평양에서 조직된 항일 비밀여성단체



ㅣ대한독립을 위해 비행사가 되고자 했던 권기옥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애국심으로 10대의 청춘을 불태우던 그녀는 일본 경찰에게 주목을 받게 되고 유치장에 구금되기를 반복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1917년 5월 여의도 비행장에서 열렸던 미국인 '아트 스미스'의 곡예비행을 통해 비행사의 꿈을 갖게 되는데요. 


1920년 그녀는 임시정부와 연계해 군자금을 모집하는데 활동하던 중, 평양 지역 청년 조직인 평양 청년회와 연결된 것이 드러나 체포되었다가 출소 후, 바로 '브라스밴드단'을 결성해 평안도와 경상도 지방을 순회하며 민중계몽운동, 독립운동의 연락책으로 나서 활동하게 됩니다.

 

그해 여름, 그녀는 평남도경 폭파를 위해 석탄 창고에 폭탄을 당일 현장까지 운반하는 일을 돕게 되는데요.  평남도경 폭파사건을 진행하던 도중 일본 경찰에게 들통이나 다시 체포 직전까지 가게 됩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임시정부 일원인 '조만식'의 도움으로 중국 멸치배를 얻어 타고 나와 상하이로 망명하게 됩니다. 

이 폭파 사건을 계기로 그녀의 낭만적인 비행사의 꿈은 대한 독립을 위한 꿈으로 더 확실하고 선명해집니다.




ㅣ뜨거운 애국심과 열정으로 이룬 꿈 


중국 상하이로 망명한 그녀는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인 '손정도' 목사의 집에 머물며, 비행사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힙니다. 그녀는 바로 "비행기에 폭탄을 싣고 날아가서 총독부를 폭파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안고 중국의 항공학교에 도전하게 되는데요. 하지만 학교에서는 '여자'라는 이유로 입학을 거절하고, 그녀의 열정과 애국심, 그리고 오기는 더욱더 불타오르게 됩니다. 


그녀가 중국 항공학교 입학에 열을 내며 도전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독립에 대한 염원도 깊었지만 비행술을 배우면 독립 운동에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인데요. 당시 임시정부에서는 비행기 확보가 어려웠기 때문에 권기옥의 항공학교 입학이 중요하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다른 나라의 학교보다 중국의 항공학교 학비가 저렴했기 때문에 그곳의 입학이 더 절실했습니다.





[출처 :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_운남육군항공학교 졸업장]


1923년 12월, 그녀는 유력 인사의 추천서를 통해 운남육군항공학교 입학에 성공하게 됩니다. 당시 입학을 허가했던 '탕지야오'는 조선 독립운동에 호의적이었던 총사령관으로, 비행사가 되기 위해 이국만리를 찾아온 그녀의 용기에 감탄하고 입학을 승인한 것인데요. 그녀는 꿈에 대한 목적과 의지만큼 우수한 성적으로 운남육군항공학교 제1기생으로 졸업해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가 됩니다. 



ㅣ 이상정과 함께 대한 독립을 꿈꾸며 항일운동에 나선 그녀



[출처 :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


이후 북경에 있는 개혁 성향 군벌 풍옥상군의 항공대에 들어가게 되는데요. 권기옥은 동로군 항공대의 부비항원으로 임명됩니다. 한편 남원항공학교 교장 겸 동로군 항공대 대장인 '서왈보'의 소개로 독립운동가 '유동렬' 장군과 '이상정'을 만나게 되는데요. 이상화의 형이었던 이상정은 26세에 권기옥과 같은 독립운동의 뜻을 갖고 꿈을 함께 이루고자 결혼을 하게 됩니다. 


중국 공군에서 뛰어난 실력으로 대령에까지 올랐던 그녀는 1931년 일본의 기습 점령으로 상하이 전투가 발발하자, 일본군을 기총소사*를 하면서 항일운동에 기여하게 됩니다. 1937년 중일 전쟁 발발 후에는 충칭으로 이동해 육군참모학교 교관으로 근무하면서 영어, 일본어 그리고 일본의 주요 인물 식별법과 성격 등을 연구해 강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기총소사 : 근접 비행 또는 저공 비행을 하면서 항공기의 기관총·로켓포 등으로 적을 난사하는 일



[출처 : 동아일보]


그렇게 중국 공군에서 활약했던 그녀는 광복 후, 1949년에 귀국해 국회 국방위원회 전문위원으로 대한민국 공군 창단에 중요한 힘이 되었고, 전재산을 장학사업에 기탁하는 등 마지막 생까지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일본 경찰의 주목을 받으면서 옥살이를 반복했지만, 애국심 하나로 두려움을 무릅쓰고 당당하게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그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비행사이자 대한민국 공군의 어머니, 그리고 독립운동가로 남은 그녀의 이름은 권기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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