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 물러나거라 [ 上 ] 또 하나의 전쟁

뒤로 물러나거라 [ 上 ] 또 하나의 전쟁


1951년 7월 8일, 휴전 회담 개최를 위한 최초의 연락관간 예비 접촉이 개성에서 열렸다. 하지만 시작부터 착석 위치, 다과 제공 등의 문제에서부터 신경전을 벌이면서 휴전이 쉽게 이루어지기 힘들 것임을 예고하였다. 결국 덤덤하고 건조한 밀고 당기기 끝에 사흘 후인 7월 11일 본회담을 시작하기로 간신히 날짜를 잡았다. 그러자 유엔군 사령관 리지웨이(Matthew B. Ridgway)는 1개월 간 전투 중지 명령을 하달하였다.


[ 좌석 문제부터 신경전을 벌인 최초 예비 접촉 모습 ]

 

회담의 촉진을 위해 공산군 측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였는데, 이처럼 이때까지만 해도 유엔군 측은 적어도 앞으로 몇 주면 모든 합의가 이루어지고 휴전에 이를 것으로 낙관하였다. 하지만 인사도 없이 본회담이 시작되었을 때, 정작 제일 먼저 벌어진 일은 탁자 위의 깃봉 크기를 놓고 벌인 신경전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깃봉이 높아져만 갔고 이후 회담 진행이 잘 되었을 리 없었다.



[ 리지웨이 유엔군 사령관의 환송을 받는 대표단 (左에서 右로)

버크, 크레이기, 백선엽, 조이(수석), 리지웨이, 호디스 ]

 

그렇다 보니 최초 회담이 개시된 후, 보름간의 치열한 설전 끝에 7월 26일에 가서야 겨우 합의한 내용이라는 것이 고작 앞으로 회담을 벌일 5개항의 의제를 확정한 것뿐이었다. 1항과 5항은 회담의 성격을 규정한 형식적인 문구였으므로 2항 군사분계선, 3항 휴전 감시 방법 및 기구 그리고 4항 포로 교환의 3개 항이 앞으로 토의할 주제였다. 다시 말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말로써 싸울 범위를 선정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 공산군 측 휴전회담 대표단 (左에서 右로)

세팡, 덩화, 남일(수석), 리상조, 장평산 ]

 

그래도 공통의 접점을 찾았으니 이제부터 하나하나 타결만하면 휴전은 이루어 질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정작 휴전에 이르기까지 회담이 앞으로 2년간 더 계속될 줄은 피아 모두가 예상을 하지 못하였다. 이처럼 난항을 겪은 이유는 회담을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하는 공산군 측의 의도 때문이었다. 그들은 불리하면 회담에 적극적이었지만 그러면서 다른 기회를 찾으려 시간을 끌며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려 하였다.



[ 최초 회담이 벌어진 개성의 여관 ]


대표단만도 유엔군 측은 정치에 관여해 본 일이 없는 순수 군인들로 구성하여 오로지 군사적 견지에서 휴전을 생각하였던 반면, 공산군 측은 정치적인 인물들이 대거 참여하여 처음부터 선전 및 선동의 장으로 회담을 이용하였다. 하지만 공산군 측의 의도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유엔군 측은 아무리 협상 타결이 급하더라도 원칙을 벗어나는 결정은 최대한 자제하였다. 덕분에 회담이 예상을 벗어나 장기간 계속되었다.


[ 회담장 부근의 유엔군 헬기 조종사와 안내하는 북한 여군

아무리 전쟁이지만 그래도 웃을 수 있는 순간은 있었다 ]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의제를 정하였지만 최초 협의 대상인 군사분계선 설정에서부터 엄청난 설전이 벌어졌다. 양측 모두 자신에게 유리한 주장만 하였기 때문에 벌어진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기도 하였다. 공산군 측은 전쟁 발발이전 남북의 경계였던 38선을 주장하였다.  옹진반도와 개성을 양보할 테니 우리가 점령하고 있는 동부 요충지를 돌려달라는 것이었는데 당연히 우리에게 일방적인 양보를 요구한 것이었다.



[ 공산군 점령 지역인 개성 시내를 둘러보는 유엔군 측 수행원

팽팽한 회담장 안과 달리 밖의 풍경은 여유롭기조차 했다 ]

 

반면 유엔군 측은 군사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현재의 전선을 분계선으로 삼으려 하였다. 한때 개성을 우리에게 내 주면 대신 금성과 고성을 양보하겠다고 제안하였을 정도로 개성의 정치적, 경제적, 상징적 위상이 컸지만 결국 포기하였다. 사실 힘으로 개성을 충분히 탈환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이곳을 기준으로 휴전선이 이루어지면 개성 시내를 북한 쪽에서 내려다보게 되어 군사적으로 상당히 불리하였다.


[ 치열한 대결 끝에 합의한 군사분계선을 획정하는 모습 ]


결국 지루한 협상 끝에 유엔군 측이 개성을 군사적으로 점령하지 않겠다는 언질을 주고난 후 종전 시점의 접촉선을 기준으로 현재의 휴전선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최초 회담 당시에 유엔군 측의 주장을 공산군 측이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이다. 현재의 전선을 기준으로 정하자고 할 것임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지만 다음 편에 소개 할 예상을 넘는 유엔군 측의 최초 주장에 공산군 측은 몹시 당황하였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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