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호’의 ‘수석총 [燧石銃]’ -8-

 영화 ‘대호’의 ‘수석총 [燧石銃]’ -8-


호랑이에 걸터앉은 조선인이 들고서 포즈를 취한 파라독스 총의 주인은 과연 누구일까 ? 한 추측의 단서는 배경에 보이는 천막이 제공한다. 호랑이 사냥꾼들은 민박을 하지 않고 천막에서 야영을 했다는 이야기다.


뒤의 천막 참조


이 천막은 미국에서 국민 천막이라 할 만큼 오랫동안 사용되어온 월 텐트 [Wall tent]또는 캔버스 텐트[Canvass tent]라는 것이다. 청바지를 만드는 두꺼운 캔버스 천으로 만들어졌고 천막 안을 밝게 만드는 빛의 반(半)투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거의 백색을 띄고 있다. 


보이는 굴뚝은 쉐퍼드 난로라고 불리는 사각형 난로의 것으로서 항상 이 캔버스 천막과 컴비로서 사용되었다. 윗 사진의 천막은 지금도 미국의 엘크[말사슴] 헌팅같은 원거리 사냥 때에는 사용되는 변함없는 미국형 텐트인 것이다. 



쉐퍼드 스토브



그러니까 이 캔버스 텐트는 호랑이 사냥꾼이 미국인임을 암시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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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이면 조선 거주 미국인들이 상당히 많았을 때였다. 무엇보다도 1890년대에 미국 선교사 파견의 러쉬가 있었다.


미국 기독교 측은 일찌기 동양 선교에 눈을 돌리고 선교사들을 파견했었다. 그러나 성과는 별로였었다. 영국과 전쟁을 아편전쟁을 벌였다가 대패한 중국의 민중은 서양 선교에 매우 적대적이었으며 선교사가 가끔 살해되기도 했었다.일본을 두드려봤지만 불교와 신도의 기반이 돌같이 단단한 일본에서 기독교가 파고 들 틈이 그렇게 넓지가 않았었다.


반면 미국인 기독교 선교사가 1880년대에 찾아온 조선의 민족은 그들에게 문을 활짝 열었다. 반상[班常]차별하지 않은 기독교의 평등사상과 박애주의,교육의 장려, 앞선 선진문물은 원래 하느님을 섬기던 메시아 사상이 있었던 조선 민족들이 여러모로 관심을 안 둘 수가 없었다.


조선의 선교 성과에 감동한 미국 기독교계는 1890년대에 들어오자 각 선교 재단이 너도나도 선교사들을 파견했었고 조선에 온 그들이 모국에 퍼뜨린 정보를 타고 미국인 경제인들도 많이 들어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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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운산군 운산 금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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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서 평북 운산 금광 같은 오지에도 미국인들 수백 명이 거주했었다. [이 광산은 노다지라는 단어를 탄생시킨 장소이며 한국전쟁중에 모택동의 아들 모안영이 미 공군 폭격에 죽은 곳이기도 하다.] 조선의 미국인들중에 선교사들을 포함해서 사냥을 다니는 사진을 남긴 사람들이 제법 많다.이들 중에 호랑이 사냥꾼이 없으리라는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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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외교적으로 외국인의 호랑이 사냥을 후원한다고 하더라도 조선 왕실이 이런 천막까지 제공하는 자잘한 서비스를 제공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또 미국에서 먼 거리를 온 원정 사냥꾼이 이렇게 거추장스런 것을 가져왔을 것 같지가 않다.


이 천막은 지방 출장 선교가 많은 선교사나 광맥을 찾아 다니던 광산 기술자처럼 야외 활동이 많은 분이 사용하다가 사냥에 가져왔거나 미국에서 온 호랑이 사냥꾼들이 빌려 사용했었을 가능성이 크다. 아마 국내 거주 미국인 중에 이 비싼 가격의 파라독스 총을 소유하는 사람이라면 선교사보다도 사업가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하겠다.


조선에 장기 거주하는 미국인이 이 사진의 주인공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산탄과 실탄을 양용[兩用]하는 파라독스 총이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에 파견된 영국 식민지 관리들과 같이 해외에 장기 거주 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다는 사실이 암시해준다. 미국에서 온 호랑이 사냥꾼이라면 보다 살상력이 강한 맹수 사냥 전용의 강력한 라이플을 가져오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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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래 전에 일본에서 발간된 사냥 잡지에서 현대식 파라독스 총을 접했었다. 1960년대에 일본인 사냥꾼이 인도에 사냥을 가서 표범을 잡은 기사였다. 그는 파라독스 쌍발총을 사용했었다. 그 책에 수록되었던 포수의 파라독스 총에 관한 여러 사진들이 기억난다. 이 사실은, 세월의 차이는 있었지만 극동 총포 시장이나 수렵계에서도 파라독스 총이 널리 퍼져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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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미국에는 미국 들소 사냥 전문의 단발 샤프 라이플이 있었으나 길고 무거워서 미국의 사파리 사냥꾼들 중 많은 사람이 영국제 쌍발총을 사용했었다.


1909년 아프리카 사파리 원정 사냥을 갔었던 미국 대통령 시어더 루스벨트 대통령이 영국 홀랜드 & 홀랜드사에 주문해서 제조한 쌍발 실탄총을 가지고 사냥을 갔던 사실이 이를 증명해준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1909년 사파리- 홀랜드 & 홀랜드 쌍발총


미국이 영국의 맹수용 라이플 시장 아성을 깨기 위해서 개발한 맹수용 윈체스터 1895 총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사진을 찍을 무렵 그 총이 아직 극동까지 진출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사진 속의 미국 호랑이 사냥꾼은 비싼 영국총 외에 별다른 옵션이 없었다고 하겠다. 만약에 윈체스터가 일찌감치 출시되었다면 휠씬 가격이 싼 이 총이 조선 거주 미국인에게 인기가 있었을 수도 있었다.


조선으로 호랑이 사냥을 나온 미국인들 중에 유일하게 사용 총기에 대한 기록을 남긴 루즈벨트의 사촌 개릿 포브스가 이 윈체스터 1895를 사용했었다. 이 총은 애용자들 중에 시어더 루즈벨트 자신도 있었다.아프리카로 사파리 원정을 갈 때 그는 영국제 쌍발총과 함께 이 총도 가지고 갔었다.


윈체스터 1895


이 총은 나중에 한국을 포함한 극동 지역들인 만주, 시베리아등에 수입되어 호랑이를 쫓는 포수들에게 많이 애용되었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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