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특집] 역사 속 존경받는 애국지사들

 [스승의날 특집] 역사 속 존경받는 애국지사들




Carpe diem, Seize the day Boys, Make your lives Extraordinary.

(카르페디엠, 현재를 즐겨라, 시간이 있을때 장미 봉우리를 거두어라)

- 죽은 시인의 사회 중-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속 제자들의 '인생 선장님'이자 스승이었던 로빈 윌리엄스가 남긴 명대사 중 하나입니다. 영화 속 명대사로 유명해진 '카르페디엠'은 '지금 살고 있는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라틴어입니다. 스승이란 교육을 넘어 인간의 도리나 이치, 삶에 바른 가르침으로 이끄는 사람을 말합니다. 


5월 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지금 우리 역사의 또 다른 스승이자 역사의 궤도를 뒤바꾼 리더들의 모습이 떠오르는데요. 많은 후손들에게 존경의 대상이된 역사의 궤도를 바꾼 고국에 대한 애국심과 용기로 역사를 이끌었던 그들의 업적을 다시한번 되새겨 봅니다.




ㅣ 모두에게 존경받는 역사 속 인물 '독립운동가'  


김구와 한일애국단 의거를 계획한 '이봉창'의사


 


[출처 : 국가보훈처 독립기념관]


김구 선생이 주도하던 '한인애국단'과 금정 청년회 등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 '이봉창'의사. 그는 일본의 천황인 '히로히토'에게 수류탄을 투척한 장본인인데요. 청년기 이후 일본에서 생활하며, 해외 동포들의 후원금과 중국 정부의 무기 및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는 등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친 인물입니다.


당시 그는 오랜 일본 생활로 인해 습관적으로 나오는 일본말과 생활 방식 때문에 일본놈이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무시당하기 일쑤였는데요. 큰 업적을 남기고 난 이후에도 이를 기리는 기념사업회가 없어 순국 63주년이 지나고 나서야 처음으로 건립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주변에서 오해와 무시를 당하기도 했던 '이봉창'의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죽기전까지 불태웠던 조국에 대한 애국심은 절대 잊지 못할 겁니다.




계몽운동가에서 독립투사가 된 '윤봉길(윤우의)'의사


 


[출처 : 힌국민족문화백과]


"제 시계는 어제 6원 주고 산 것인데 선생님의 시계는 2원짜리입니다. 

저는 앞으로 몇 시간 뒤면 시계가 필요 없으니 이 시계를 차시지요"


이봉창 의사와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비밀리에 조직한 '한인애국단'에 있었던 '윤봉길'의사. 그는 일왕의 생일인 1932년 4월 29일에 김구 선생과 시계를 교환 한 뒤, 중국 상하이 훙커우공원으로 향해 행사장에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 상하이파견 사령관 '시라카와' 등 주요 인물들을 살상하고 24세 나이에 생을 마쳤습니다. 올해로 윤봉길 의사 의거 84주년을 맞이해 상하이와 서울에서 동시에 기념식도 있었는데요. 그의 숭고한 뜻과 대한독립을 위해 청춘을 바친 애국정신이 후대에도 계승될 수 있도록 우리는 노력해야 할것입니다.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장군

 



[출처 : 힌국민족문화백과]


만주 대한 독립군의 총사령군으로 독립군 본거지인 '봉오동 전투'에서 최대의 승전을 기록한 대한 제국의 마지막 시기의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 1868년에 태어난 홍범도 장군은 봉오동 전투를 비롯해 만포진, 삼둔자,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여 대승을 거둔 항일독립운동군입니다.

 최근 해군에서는 홍범도 장군의 애국심을 기리고 국민의 안보의식을 다지고자  214급 잠수함 7번 함의 명을 '홍범도 함'으로 제정했는데요. 조국을 사랑한 그의 마음은 바다를 수호해야 할 병사들에게 좋은 덕목이 되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노인동맹당 요하연 지부장 '왈우 강우규' 의사



[출처 : 국가보훈처 독립기념관]


천 만 관객을 모은 영화 <암살>에서 의열단이 만들어진 계기로 재조명되었던 '왈우 강우규' 의사는 일제 신임총독을 향해 '애국의 폭탄'을 던졌던 독립운동가 중 한 인물입니다. 비록 총독 폭살에는 실패를 하지만, 일본 경찰 37명이 죽고 다치면서 일제의 만행과 강압통치에 대해 민족의 강력한 의열 항거로 맞섰다는 점에서 존경의 인물로 오르고 있는데요. 


어린 시절부터 한의학을 공부했던 그가 독립운동가로 활동하게 된 계기는 1855년 함경남도 흥원에서 상업에 종사하던 중 독립운동가 '이동휘'를 만나고부터 인데요. 55세의 나이에 민족의식에 눈을 뜬 그는 이후 3.1운동 소식을 듣고 만세운동을 주도하며, 한인 독립운동단체 '노인동맹단'에 가입하는 등 많은 활동을 하게 됩니다. 또한 그는 안중근 의사와 윤봉길 의사의 의거에 결정적인 자극과 계기가 된 인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동양의 평화를 꿈꾼 의병장 '안중근'


 


[출처 : 국가보훈처 독립기념관]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모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위인들의 사진 중 안중근 의사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해 안타까움을 주기도 했는데요.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새벽 하얼빈역으로 나가 '이토 히로부미'에게 3발의 총탄을 명중 시키는데 성공해 큰 공을 세운 독립운동가로 유명하죠.


 



항일 투사 11명의 동지들과 함께 조국의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을 맹세하면서, 손가락을 자르고 선혈로 태극기 앞면에 '대한독립' 넉자를 쓴 '안중근' 의사. 이 지장을 보면 안중근 의사와 함께한 독립운동가들의 뜨거운 애국심이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오늘 독립운동가들의 과거 역사와 사건들을 되짚어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는데요. 일제강점기의 애국자들에 대한 대단한 열정과 용기에 다시한번 마음이 경건해집니다. 

'스승의 날'. 각자의 마음 속에 있는 존경인물 스승의 모습은 다를지 모르지만, 지금 이자리에 우리 모두가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해준 존경의 대상은 하나입니다. 그들을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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