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호’의 ‘수석총[燧石銃]’ -3-

영화 ‘대호’의 ‘수석총[燧石銃]’ -3-



이제 말을 본격적으로 수석총 쪽으로 옮겨 본다. 수석총은 두 가지 형태로 발전했다. 하나는 총열에 나선[螺線]이 파있어서 총탄이 발사되면 그 총탄이 나선을 그리며 날아가 명중률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 날 모든 실탄총의 방식이 된 라이플 총이다. 바로 이 수석총 시대에 라이플[나선]의 사용이 본격화되었다.



총구에서 본 라이플링 –나선


나선있는 총도 수석식도 있었지만 나선이 없는 총도 있었다. 나선있는 총은 라이플이었고 나선없는 총은 머스켓이었다.


미국에 수석식 라이플 시대를 연 것은 미국으로 이민 온 독일계 총공[銃工-총기제조 대장장이]들이었다. 이들은 라이플 총신을 채택하고 개머리판은 미국에 자생하는 단풍나무를 사용하였다. 총의 명중률을 향상시키고자 무척 긴 라이플 총신을 채택하였다. 긴 총 중에는 총구가 사람 턱에 닿을 정도로 긴 것도 있었다. 이 시대에 만든 수석총은 롱 라이플, 또는 켄터키 라이플이라고 불렸다. 



서구 수석총의 최고봉 -켄터키 라이플


라이플 방식의 총은 총구에 탄환을 밀어 넣는 작업이 무척 힘들다. 머스켓보다 장전 시간이 세 배나 더 걸렸다. 그래서  빠른 사격과 화력이 필요한 군용총에는 머스켓이 많았다. 


수석총이나 화승총은 총구에 둥근 납탄[鉛丸]을 밀어 넣어 장전하는 전장총 [前裝銃]이며 밀어 넣은 작업이 [앞에서 말 한대로]무척 힘이 든다. 그러나 곧 둥근 납탄을 헝겊 조각에 싸서 총구에 밀어 넣는 쉬운 방법이 발견되었다.


수석식 머스켓의 명중이 확실한 유효 사거리가 단 100미터 정도지만 수석식 라이플의 유효 사거리는 200미터로서 두 배 정도 더 길었다. 독립 전쟁 시대 서부 개척의 영웅 대니얼 분같은 명사수는 일정한 크기의 납탄[鉛丸]과 미리 그 정확한 화약량을 계량해서 소분[小分]해놓은 약포를 소지하고 다니다가 사용했었기에 항상 일정한 탄속과 탄도, 탄착점을 유지하는 사격을 했고 명중률이 아주 높아 그를 개척기의 최고 명사수라는 타이틀을 누리게 하였다.



왕년의 명우 훼스 파커가 분한 대니어 분- 수석총의 길이를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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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 총은 미국 독립전쟁 때 미 독립군들이 수석식 라이플을 다수 사용하여 장거리 사격으로 사거리 짧은 머스켓을 사용하는 영국군을 괴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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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수석총의 시대가 일본이나 한국에 왜 오지 않았던가하는 문제에 대한 소고(小考)를 해볼 필요가 있다.그리고 이 의문은 이 글의 주제이기도 하다.


수석총의 한국 정착 실패의 원인에 대해서 심층 분석해본다. 효종이 러시아에서 신유 선생이 노획해 온 수석총이나 네델란드 표류민 일행이 제조한 수석총에 대해서 보였던 부정적 의견에서부터 그 분석을 시작해보자. 그의 언급은 조선 수석총에 대한 역사적으로 유일한 수석총 분석이며 비판이다.


첫째 제조 가격이 세 배나 비싸다. 둘째 화약의 사용량도 두 배나 된다. 셋째 부싯돌을 50번 격발하면 새 것으로 바꾸어야 한다등의 문제점이 지적된다. 그런 것이 문제라면 한국보다 훨씬 실리적이고 현실적인 사고 방식이 있는 서양에서 수석총은 탄생하지 말았어야 한다.


수석총은 거추장스런 화승의 존재를 제거하고 날씨에 지장을 받지 않으며 빠른 발사 속도등의 이점 [利點]은 이런 단점을 상쇄 추월하고도 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수석총이 고객만족을 주지 못했던 점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여기서 나의 주관적인 추측을 제시 해본다. 그것은 수석총의 특징이기도 한 부싯돌의 발화 과정에 무언가 불만족스런 점이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이다.


나의 머리 속에 각인된 한 목격 사실이 그런 추측을 가능케 한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인근 도시의 친척집에 가져오던 길의 기차 속에서 아주 독특한 구경을 했다. 한복을 입은 80정도 되는 영감님이 짧은 담뱃대에 연초를 담더니 조끼 주머니에서 가죽 주머니를 꺼냈다.


그 가죽 주머니에는 쑥을 말려 부빈 것[부싯깃]과 부싯돌이 들어있었다. 나는 평생 처음 부싯돌로 불씨를 만드는 것을 보았다. 불은 좀처럼 말린 쑥에 붙지 않았다.영감님은 20여 번 가까이 부싯돌을 쳐서 겨우 쑥의 부싯깃에 불을 붙이는 작업에 성공을 하고 몇 번이나 불어서 불을 키웠다. 그리고 불을 키운 쑥 부싯깃를 담배에 얹어 한참 동안 공을 들여 불씨를 담배 전체에 키운 다음에야 끽연을 하는 것이었다. 참 힘들어 보였다. 


그때 성냥은 지금처럼 흔했었고 또 바로 옆 여행객에게 라이터를 빌려 달라고 하면 얼마든지 편한 흡연이 가능했는데 그 영감님은 그렇게 부싯돌을 치고 불을 만들어 담배 피우는 것을 하나의 멋이나 맛으로 즐겼던 것 같다.


나는 옛날 집안의 며느리들이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이해할 수가 있었다. 잿속에 불씨[숯]를 묻어두어 밤새 불씨를 보존하다가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 밥을 바로 지을 수가 있는 것인데 부엌에 이런 불씨를 보관하는 화로가 따로 있었다고 한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씨를 꺼뜨린 며느리에게는 시어머니의 날벼락이 떨어졌다.


이 일화를 이야기 하는 배경이 있다. 당시 그 영감님이 불이 잘 붙지 않아서 부싯돌을 수십 번이나 쳐야 했고 만들어진 불꽃의 크기가 별로였던 것이 아직도 기억이 있다. 불꽃은 당시의 지포 라이터나 현재의 가스 라이터 불꽃보다도 작았던 것 같았는데 가연성이 높은 가스에도 불이 붙지 않아 여러 번 격발해야 하는 실정을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반면 유 튜브에 오르는 수석총의 발사를 보면 부싯돌의 격발 불꽃은 엄청나다는 단어를 동원해야 할 만큼 그 불꽃이 크다. 저 정도의 불꽃은 되어야 단번에 격발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지 않으면 격침을 되풀이 되 물리며 여러 번의 격발이 필요할지 모른다.




수석총[FLINT LOCK]의 격발- 잘 보면 연기 밖으로 뚫고 나오는 무수한 붉은 스파크들이 보인다.



우리나라의 부싯돌은 차돌, 즉 석영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유황이 섞인 황철석이라는 것도 있고 자수정도 있었는데 아마 그 시대 조선에서는 차돌만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차돌이 사용되어 격발이 제대로 되지 않자 그 시원치 않은 결과에 결국은 수석총의 채택이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즉 유럽이나 미국에서 사용된 수석총의 부싯돌은 그 불꽃의 크기로 보아 특별한 종류의 수석총 전용의 부싯돌이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조사해보니 현재 미국이나 수석식 소총[현재 이런 취미인들을 위해서 과거 수석총을 복제 판매하는 업체들이 여럿 있다.] 이런 현대의 수석총을 위한 수석으로서 검은 색의 특별한 돌들이 판매하고 있다. 이 수석은 특히 영국산들이 많다.





요즈음 재현한 수석총 메니어들을 위한 영국산 부싯돌[수석]





수석총의 발화 구조를 다시 보여준다.


긁으며 타격하는 수석의 특성상, 이 검은 수석은 발화 과정을 보면 발화한 부스러기도 많이[즉 잘 긁어지며]생성되며 그 발화점도 높은 대형의 스파크를 만드는 특성이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 백두산에서도 많이 나는 흑요석인 것 같지만 더 알아보아야 하겠다.[이렇게 본다면 우리나라 차돌은 불꽃 부스러기도 잘 생기지도 않고 불꽃의 크기도 작기 때문에 발화에 문제점이 있을 수가 있다.] 


부싯돌의 문제 외에 화약의 질 문제가 있을 수가 있다. 이 흑색 화약의 질은 초석[焰硝-염초]의 질이 좌우한다. 초석은 요즈음 우리와 친근한 번개탄[착화탄]의 제조에 사용한다. 


과거 동서양의 흑색 화약에 들어가는 초석[염초]는 집안의 대들보 먼지나 마루 틈새의 먼지를 모아 끓이고 여과해서 얻어 사용했었다.17세기에 인도에서 천연 초석이 발견되어 유럽은 이런 과정이 생략되었다. 자연 초석을 사용하는 서구의 흑색 화약은 폭발력이나 인화력이 조선의 화약보다도 훨씬 질이 좋았었다.


다른 글에서 소개했는데 1871년 6월 광성보에서 어재연의 조선군은 바로 수 백 미터 앞 손돌목 해협을 따라 북상하던 미 해군 포함[砲艦],모노캐시와 파로스 두 척과 그리고 작은 기정[汽艇]네 척에 수 백 발의 포탄과 총탄을 퍼부었다. 미군의 기록은 그때 포격의 치열함이 미 남북전쟁 때 있었던 어떤 포격보다 훨씬 격렬했슴을 알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척의 포함과 네 척의 기정들은 별다른 손상을 입지 않았었다. 



광성보 앞 손돌목 해협의 모노캐시와 파로스



단지 암초에 함저 [艦底]가 손상되어 되돌아 갔을 뿐이다. 두어 명의 수병들이 조선군의 징겔포에 부상을 입었지만 생명에 지장이 있던 정도는 아니었다. 미군들은 자기들의 경미한 피해 이유가 조선군의 화약 질이 불량했었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포함 모노캐시


‘은자의 나라 한국’저자 W. E.그리피스는 광성보의 조선군 화약은 너무도 천천히 타들어가 빠른 미군을 맞출 수가 없었다라고 쓰고 있다. 이것은 조선 화약의 낮은 질을 지적한 또 다른 기록이다




광성보에서 전사한 미 해군 맥키 대위의 어머니가 미국 켄터키 주 렉싱턴 공립 도서관에 기증한  깃발, 화승총, 경포, 전립등의 노획물- 한국에 별로 알려지지 않은 귀중한 유물 들이다.


위의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동양 흑색 화약의 낮은 인화력이 수석총의 선택을 막았는지 모른다. 불량한 일회용 라이터의 질 낮은 개스는 스파크를 여러 번 터뜨려도 쉽게 인화되지 않는 사실이 이를 추측 하게 한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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