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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이야기

천안함 46+1 용사, 잊지 않겠습니다.

천안함 46+1 용사, 잊지 않겠습니다.


▲ 2010년 3월 23일 항해 중인 천안함의 마지막 모습 (출처 : 대한민국 국군 플리커)


3월 26일은 천안함 피격사건 6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2010년 3월 26일 해군 제2함대 소속 초계함 ‘천안함’은 작전 수행 중 북한 잠수함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총 104명의 승조원 중 46명이 전사했습니다. 오늘은 천안함 피격사건 6주기를 맞아 사건 진행 과정을 되짚어 보고,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천안함 46+1 용사들을 기리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 2010년 4월 12일 인양작업이 진행 중인 천안함 함미 부분 (출처 : 대한민국 국군 플리커)


천안함의 피격 전 임무수행부터 피격 순간까지


천안함은 3월 16일 화요일 평택항을 출항, 백령도 서방 경비구역에 배치되었습니다. 정상적으로 임무에 임하던 천안함은 피격 전날인 25일 목요일 풍랑주의보 발령으로 인해 백령도 서방 경비구역을 이탈해 대청도 동남방으로 피항했습니다. 그리고 3월 26일 06시 경 기상이 나아져 경비구역 복귀를 위한 항해를 시작합니다. 같은 날 08시 30분 경 천안함은 경비구역에 도착해 정상적인 작전임무를 실시했으며, 20시 당직근무 인원 교대 후 나머지 인원은 휴식 및 정비 중이었습니다. 함장은 21시 05분 경 함내 순찰을 마치고 함장실로 돌아와 컴퓨터 이메일·게시판과 KNTDS(Korea Naval Tactical Data System:한국해군전술자료처리체계) 화면을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볼 때 천안함은 정상적인 임무수행 중에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1시 22분 갑작스러운 후미 충격과 함께 1~2초간 ‘꽝’하는 굉음이 들렸고 함내 정전이 되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일부 격실에 바닷물이 유입되어 천안함은 우현으로 90도 기울어졌습니다. 사건 발생시 충격으로 함장실에 갇혀 있던 함장은 통신장 등 4~5명이 내려준 소화호스를 허리에 묶고 좌현갑판으로 탈출했습니다. 

생존자들과 합류한 함장은 즉시 함미 쪽을 확인했습니다. 연돌 이후 부분이 보이지 않았으며 약한 기름 냄새가 났습니다. 그는 함수 부분이 90도 기울어져 있는 것을 보고 승조원 구출을 지시했습니다. 부상자를 포함한 생존자를 구조하고 인원을 점검하니 모두 58명이었습니다. 이들에게는 고속정이 올 때까지 대기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 천안함 침몰 사흘째인 2010년 3월 28일 실종자 수색 중인 해군 SSU 대원들

(출처 : 대한민국 국군 플리커)


상황 보고·전파와 승조원 구조


21시 28분 경 천안함 포술장은 휴대전화를 이용해 2함대 상황장교에게 구조 요청을 했습니다. 휴대전화를 이용한 것은 정전으로 함내 유·무선 통신이 모두 제한되었기 때문입니다. 2함대 상황반장이 상황장교의 휴대전화를 넘겨받아 “배가 우측으로 넘어갔고 구조가 필요하다”라는 내용을 확인했습니다. 상황반장은 21시 30분 경 문자정보망을 이용해 대청도 고속정편대에 긴급출항을 지시했습니다.

21시 30분 경 2함대 당직사관은 천안함 전투정보관으로부터 지원병력을 요청하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지휘통제실장에게 보고한 당직사관은 인천해양경찰서 부실장에게 직통 전화를 걸어 인근에 있는 해경 501함, 1002함을 백령도 서방으로 보내달라는 요청을 했습니다. 21시 32분 경 2함대 연락장교는 휴대전화를 이용해 옹진군청 소속 어업지도선 214호 선장에게 전화해 구조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이어 해군 고속정과 해경함, 관공선 등 모든 작전요소가 동원돼 천안함 승조원 구조가 시작되었습니다. 21시 56분 고속정 3척, 22시 10분 고속정 2척이 천안함에 도착해 인명구조를 시작했습니다. 함장은 고속정을 이용할 경우 함정이 흔들려 실족의 위험이 있다고 판단, 해경정의 RIB(Rigid-hulled inflatable boat : 고속단정)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22시 41분 경 해경 501함 소속 2척의 RIB가 19명을 구조했습니다. 23시 08분 경 어업지도선 인천 227호는 부상한 장병 2명을 구조한 후 백령도로 후송하였으며 잔류 인원 36명은 해경 501함에 의해 구조되었습니다. 이들은 고속정편대로 환승했다가 다시 초계함으로 재환승하여 3월 27일 14시 경 평택항에 도착했습니다. 3월 26일 23시 13분~27일 04시 35분까지 천안함 침몰 지역 부근에 대해 수색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 2010년 4월 24일 인양된 천안함의 함수 (출처 : 대한민국 국군 플리커)


민·군 합동조사단 구성과 조사 진행


3월 31일 국방부는 최초 민·군 합동조사단 82명(현역 59명, 정부기관 17명, 민간 6명)을 편성했습니다. 이후 4월 12일 외국 전문가들을 포함한 73명(한국 49명, 외국 24명)을 재편성, 다각적인 조사활동을 실시했습니다. 민·군 합동조사단은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정밀조사를 통해 침몰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는 데 목표를 두고 운영되었습니다. 

조사단의 조사는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뉘어 진행되었습니다. 사진·영상 촬영, 증거물 채증, 증거물 분석, 시체 검안·부검 등을 포함한 ‘과학수사’ 영역, 선체 강도 해석, 선체 충격 해석, 함 안정성, 함정 관리 등을 포함한 ‘함정 구조·관리’ 영역, 어뢰, 기뢰, 수중유체 분석, 기타 폭발물 등을 포함한 ‘폭발 유형 분석’ 영역, 그리고 정보·해저환경에 대한 ‘정보 분석’ 영역이 그것입니다. 민·군 합동조사단은 6월 30일까지 총 92일 간 운용되었으며, 6월 9일부터 17일까지 유엔 안보리에 참석해 조사결과를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 민·군 합동조사단의 천안함 조사 결과 발표에서 공개된 어뢰 추진동력장치

(출처 : 대한민국 국군 플리커)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


민·군 합동조사단은 선체 인양 전(3월 31일~4월 14일), 함미 인양 후(4월 15일~4월 23일), 함수 인양 후(4월 24일~5월 19일), 어뢰 추진동력장치 수거(5월 15일) 등 일정에 따라 철저한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조사단이 수집한 자료는 5월 20일 내·외신 기자들을 대상으로 합동조사 결과로 발표되었습니다. 

조사단은 천안함의 침몰 원인을 ‘수중폭발’로 판단했습니다. 수중폭발 중에서도 비접촉 어뢰의 가능성을 가장 높게 판단했으며 계류기뢰(닻을 이용해 일정한 수심에 설치해 두는 기뢰)의 가능성도 있긴 하나 희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조사단이 침몰 원인을 어뢰 피격으로 판단한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수중폭발의 근거로 선체 손상부위를 정밀계측 분석한 결과 충격파와 버블효과로 인해 선체의 용골이 위쪽으로 크게 변형된 점, 외판이 급격하게 꺾이고 선체에는 파단된 부분이 있는 점, 좌현 측이 위쪽으로 크게 변형된 점, 절단된 가스터빈실 격벽이 크게 훼손되고 변형된 점, 함안정기(함정이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방지해주는 부분)에 나타난 강한 압력 흔적, 열 흔적이 없는 전선의 절단, 선저 부분의 수압 및 버블 흔적 등을 들었습니다. 또한 생존자들이 들었던 폭발음, 충격으로 쓰러진 좌현 견시병의 물이 튀었다는 진술, 백령도 해안초병이 관측한 높이 약 100m의 백색 섬광불빛 등은 수중폭발로 발생한 물기둥 현상과 일치했습니다. 이외에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지진파와 공중음파 분석 결과, 백령도 근해 조류 분석 결과, 폭약성분 분석 결과 모두 어뢰 발사와 폭발 등을 뒷받침해주었습니다. 결정적으로 5월 15일 침몰 해역에서 발견된 어뢰 추진동력장치는 북한이 해외 수출용으로 배포한 어뢰 소개자료의 설계도와 크기·모양 등이 일치,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어뢰 공격에 의한 것임을 확신하게 했습니다. 조사단은 천안함은 어뢰 수중폭발로 발생한 충격파와 버블효과에 의해 절단되어 침몰한 것으로 결론 내렸으며, 사용된 무기체계는 북한에서 제조·사용 중인 고성능폭약 250kg 규모의 CHT-02D 어뢰로 판명되었습니다. 


▲ 천안함 탐색구조작전 중 순직한 고(故) 한주호 준위

(출처 : 국방일보)


조국 바다에서 전사한 천안함 46용사, 그리고 한주호 준위


천안함 피격사건 이후 전사한 46명 승조원들의 사연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며 다시금 사람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습니다. 전탐장 이창기 원사는 전탐선임하사의 아이가 아프다는 소식에 후배 대신 출동했다가 전사했습니다. 혼인신고 10주년에 맞춰 결혼식을 올리려던 박경수 중사는 제2연평해전의 생존자로 알려져 주변의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이외에도 결혼을 앞두고 있던 강준 중사, 동생의 대학 진학을 위해 입대한 김종헌 중사, 홀어머니를 모시던 김동진 하사 등 안쓰러운 사연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영웅이 있습니다. 바로 천안함 탐색구조작전 중 순직한 고(故) 한주호 준위입니다. 본래 특수전여단(UDT/SEAL)의 현장 지휘관을 보좌하고 조언하기 위해 현장에 온 한 준위는 상황의 긴박함을 느끼고 곧바로 구조작전에 자원했습니다. 거센 조류와 시계 제로인 최악의 상황에서 함체에 부표를 연결하는 작업에 나섰던 한 준위는 연이은 잠수로 결국 순직하고 말았습니다. 국가에서는 고 한주호 준위에게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하고, 한주호상을 제정(2011년)하는 등 그의 살신성인 정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천안함은 우리 영해에서 정상적인 임무 도중 북한의 어뢰 공격에 의해 침몰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47명(고 한주호 준위 포함)의 전사자가 발생했습니다. 천안함 피격사건, 연평해전, 연평도 포격 등 조국을 위해 우리 바다에서 목숨을 바친 장병들의 희생을 기억하기 위해 국가에서는 올해부터 3월 넷째 주 금요일을 ‘서해수호의 날’로 지정했습니다. 나라를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바친 국군 장병들의 숭고한 희생을 우리는 언제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