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라덴의 기관단총 -1-

빈 라덴의 기관단총 -1-



9.11 테러 사건을 주동하고 파키스탄으로 스며들어가 잠복하고 있던 테러 주범 오사마 빈 라덴이 심야에 급습한 미 해군 SEA의 특수팀에 의해서 사살 당한지 5년이 흘렀다.





9.11테러 성공 직후에 아프간까지 추격해온 미군을 따돌리며 기고만장하던 시절 그는 가끔 동영상을 만들어 언론 플레이를 가끔 했었다. 그가 동영상을 출연할 때는 꼭 어울려 보이지 않던 분위기용 소도구가 동반 출현했었다. 






시간이 가고 그가 깊숙이 잠적한 뒤에 더 이상 그의 동영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미군의 지원을 받은 북부 동맹군이 탈레반들을 격파하고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점령했을 때 2003년 이후 빈 라덴과 그의 알 카에다 조직원들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과의 접경인 토라 보라 산속으로 도주했었다. 


2003년 12월 그를 산속에 몰아넣은 미군은 폭격을 가하며 특수 부대 병력을 투입해서 그를 압박했는데 그 지역의 부패한 군벌이 돈을 받아먹고 빈 라덴 일당을 파키스탄으로 도주하게 만들었었다. 파키스탄으로 산악에서 머물던 그는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 부근 도시 아보타바도의 육군 사관학교에 바로 인접한 곳에 집을 짓고 몇 년간 꽁꽁 숨어있었으나 그만 CIA에 꼬리를 잡혀 SEAL에 사살 당했다.



빠르게 잊혀 진 인물이 되어가던 그가 얼마 전 어느 Cable TV에 잠깐 얼굴을 보여 주었다. 바위를 배경으로 옆에 짧은 총신인 구소련제 AKS-74U를 옆에 놓은 빈 라덴이 미국에 대해서 여러 욕설을 해대던 장면이 스치듯 지나간다.


키가 193cm나 되는 장신의 빈 라덴 옆의 놓인 소도구격인 짧은 AK74U-S는 영 어울리지 않는 구도였다. 총기가 연출의 소도구로 활용되는 다른 사진들의 구도처럼 빈 라덴이 이 기관단총을 전투에서 하듯이 양손으로 잡고 앞에 총 자세를 취한다던가 하다 못해 무릎에다 놓은 쉬어 자세를 취한다던가 하는 모습이 보여야 하는데 그런 것은 없이 거리가 있는 위치에 실내 장식물같이 놓인 짤막한 AK 74U-S소총은 영 어울려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이상한 구도의 동영상에 나온 기관단총은 당장 의혹의 대상에 올랐다. 뒷말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저 총이 놓여있는 방향과 형태에 따라 전 세계의 알 카에다에게 메세지를 보낸다고 한다. 빈 라덴이 정말로 그렇게 했는지 너무 오버 센스를 했는지는 아직 미궁이다.



빈 라덴이 파키스탄의 도시에 신축한 은신처로 잠적하자 동영상은 잘 나타나지 않았다. 빈 라덴이 세계의 TV화면에서 홀연 사라진 사이 나는 이 짤막한 기관단총이 빈 라덴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기관단총은 빈  라덴이 22세 때인 1979년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구소련 점령군과 싸울 때 그의 부대가 구소련 정예 부대인 스페츠나츠로부터 노획한 것이다.


빈 라덴의 아버지 Mohammed bin Awad bin Laden은 사우디의 대 건설 회사의 소유자였다. 그는 돈만큼이나 많은 마누라를 두었었다. 회교 율법으로 4명까지의 부인을 둘 수가 있었지만 빈 라덴의 아버지는 22명의 마누라와 첩을 거느렸다. 결혼과 이혼을 되풀이 하며 그는 회교 율법과 행정법에서 허용한 부인의 숫자 네 명을 유지했었다. 


빈 라덴의 어머니는 열 한 번째로서 마누라 아닌 첩이었다 그것도 파혼당한 첩이었다. 빈 라덴의 아버지는 무려 50여명의 형제들이 있었다. 빈 라덴도 젊은 나이에 여러 명의 와이프로부터 20여명의 자식을 두었었다.


빈 라덴은 대학을 졸업하고 1979년 아프가니스탄으로 가서 대쏘 전투에 참전하였다. 그때 아버지는 사망했었고 그에게 상당한 유산이 상속된 때라 그는 그 자금을 군자금으로 사용하면서 아프가니스탄의 아프가니스탄에서 대소 전투를 조직하고 지휘하였다. 부잣집 도련님이 그런 위험한 일을 했을까 싶지만 빈 라덴은 직접 최일선에서 총격전을 하며 전투를 했었다. 그가 활약한 지역은 나중에 미군에 쫓겨 도망쳤던 토라 보라 산맥일대였다.


앞에서 말했었다. 그가 TV에 같이 출연하였던 AKS-74U기관단총은 소련군과의 전투에서 노획한 것이다. 빈 라덴 부대에게  소총을 빼앗긴 소련군 부대는 유명한 특수부대인 스페츠나츠 부대다. 이 특수 부대는 빈 라덴의 부대를 섬멸 일보직전까지 몰아넣었으나 최종 섬멸에 실패하였었다.


빈 라덴이 이 총을 옆에 놓고 과시하며 TV에 출연하는 것은 바로 훈장을 전시하는 인간 공통의 심리와 비슷하다. 자기 딴에 화려한 전공을 쌓은 진정한 전사임을 뽐내는 심리하고 하겠다.그러면서도 총과 약간 거리를 둔 것은 그가 단순한 전사의 이미지를 넘어 종교적 지도자이고 민족주의자며 반외세 투쟁의 지도자로서의 더 높은 이미지까지도 과시하고 싶어서 일 것이다.


빈 라덴의 부하며 이라크 알카에다 책임자였던 자르카위가 항상 총을 들고 사진에 나오는 것과 대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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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르카위는 김선일씨를 참수한 흉악범이다.

요르단의 뒷골목 양아치 출신이었던 자르카위도 미국의 추적을 받고 폭살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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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전투도 했지만 인맥을 동원해서 사우디에서 전투원과 자금을 끌어 와 무자헤딘의 투쟁을 원조해서 아프간내에서 인기를 누렸었다





빈 라덴은 구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기 시작한 1987년 모국인 사우디 아라비아로 돌아왔다. 그는 귀국할 때 최고의 전리품을 이 소련제 기관단총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는 사우디 아라비아에 머무는 동안 미군에 대한 증오감을 돋우며 소련군 대신 미군을 공격 대상으로 삼아서 여러 번 테러를 가했다.


그의 이런 변태적이고 폭력적인 테러리스트의 길은 그가 심취하였던 급진적이고 폭력적인 이슬람 교리의 한 가지가 큰 영향을 끼쳤지만 그가 어린 나이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맛 본 폭력의 쾌감과 함께 역시 맛본 소영웅주의가 또 다른 요소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는 사우디에서 추방되어 수단으로 옮겼다가 여기서도 테러를 저지르고 쫓겨났다. 그는 역시 그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두목 무하마드 오마르의 비호 아래 아프간으로 옮겼다. 빈 라덴은 이곳에서 알 카에다를 조직하고 훈련 캠프를 만들고 본격적인 테러 활동을 시작했다. 여기서 그들 시각으로 보면 대박을 터뜨렸고 일반인의 눈으로 보면 잔인무도한 911테러를 일으켰다. 


이것은 그의 최후를 대국 미국의 응징에 맡긴 직접적인 것이 되었다. 악에 받힌 미국이 그를 아프간 내부까지 들어와서 추격하자 미리 구축해둔 토라 보라의 토굴 속에 은신했다가 파키스탄으로 도주하였다.토라 보라로 도주할 때 끌고 같이 도주한 훈련 캠프의 부하만 1,000명 정도였다는데 그 운명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미군의 무지막지한 폭격에 죽었거나 살아남은 아랍종자들은 이라크 같은 곳으로 돌아가서 배운 기술로 테러 범죄를 주도했을 것이라는 추측만이 든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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