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를 죽자고 거부한‘아버지’경찰 -2-

전투를 죽자고 거부한 ‘아버지’경찰  -2-



이 대용 중대장은 6사단 7연대로 옮겨서 계속 중대장 직을 맡고 있다가 남침의 불길에 휘말렸다. 그는 전쟁 기간 백여 번의 치열한 전투를 겪었다. 사지를 수십 번 드나들고 숱한 아군과 적병의 사연을 보고 들어왔었다.


중늙은이 경찰의 적전 비겁 행위를 하룻밤 해프닝으로 가볍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한 적전 탈영을 한 간부들, 전쟁 공포증에 걸려 부하들에게 못난 모습을 보이는 간부들 등 여러 명을 보았다.



[동대문 경찰서 앞에 거치한 일본군 92식 기관총. 훈련 모습인듯한데 실제 서울 침공 북한군 주공 앞에 있었던 동대문 경찰서는 큰 피해를 입었다.]


전쟁 발발과 함께 부하들을 전선에 버리고 마누라와 함께 먼 후방으로 날아 버리고도 아무 처벌도 없이 대령까지 진급을 했던 모 중대장이 그 대표적인 인물일 것이다.


그러나 이대용 중대장의 뇌리에는 겁 많은 홍천 경찰의 모습이 가장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결국 자식들을 위해서 아버지는 어떤 굴욕도 감수할 수 있다는 한국형 부성애를 이 경찰에서 발견한 것인데 세월이 흐르고 이해심이 생기면서 그 못난 행동에 대한 경멸감이 많이 희석되었다고 한다.


자식들의 저녁을 위해, 또는 자식들의 학비를 위해, 갖은 멸시를 당하면서 거리에 구걸을 나서거나, 장기 판매를 나서는 오늘의 한국 아버지 모습이 원래 전투와는 거리가 먼 이 사람에게서 못나게 나타난 것이란 것이다. 


아들 뻘 되는 젊은 병사들에게 개처럼 두들겨 맞으면서도 “내가 여기서 죽으면 내 새끼들은 다 굶어 죽는다.”는 일념만이 머릿속을 꽉 잡고 있어 경멸 받을 비겁한 행동도 하고 남자로서 당하기 어려운 수모를 참은 것이 아닐까?


북한군 남침 며칠 뒤에 홍천은 점령당했다. 그 웃음꺼리가 되었던 경찰과 그 가족은 어떻게 되었을까? 


사실 북한군이 남침 후 홍천까지 점령하기에 며칠 걸렸기에 경찰들은 가족 피난 여유가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를 하지 못해서 가족과 대책 없는 생이별을 하고 동료들과 같이 기약없는 남하 후퇴를 해야 했다.


[서울 점령 뒤에 기약없이 한강을 도강하여 후퇴하는 경찰들]


형사 계장이었다면 그에게 체포되거나 기소되어 원한을 품은 범죄자도 있었을 것이고 그들이 좌경화 되었다면 그의 가족들은 큰 해꼬지를 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 적 치하에서 아무 죄도 없이 경찰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학살당한 경찰 가족 숫자가 엄청났으니 우려 되지 않을 수가 없다. 


강원도경 경찰들은 밥을 구걸해서 먹고 잠은 노천 잠을 자며 대구까지 철수했지만 역시 피난 나온 정부는 이들의 잠잘 곳과 먹을 것을 마련해주지 못했었다.


강원도경은 국군 1군단에서 가서 식량을 구하고자 사정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군단 각 부대에 배속해서 싸우지 않으면 먹여 줄 수가 없다는 차가운 대답이었다.



[북한군의 총공세]


할 수없이 별다른 군사 훈련을 받지도 못한 강원도경은 낙동강 전투에 억지 투입되어 다수가 전사하고 다수가 부상했었다. 이때 전선으로 보내진 경찰관들의 나이가 20대에서 50대까지라니 홍천에서 개망신을 감내했던 40대의 형사계장도 여기에 포함되었을 가능성도 크다. 



[곡성 경찰서장 한정일 경감

퇴로가 막힌 그는 서원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 게릴라 활동을 했다.


가족을 위해 무수한 구타도 감수하며 망신을 서슴치 않았던 이 경찰이 전투에 투입되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걱정된다.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상호 전황이 다급했었던 낙동강 전선에서 북한군이나 국군 공히 독전대[督戰隊]를 동원한 전투를 했다. 


병사가 공격하지 않으면 뒤에서 쏘아 죽이는 부대. 또는 인원을 독전대라고 한다. 소련군의 대표적인 전선 잔악 행위인 아군 병사 즉결처분의 악행은 북한군에 의해서 낙동강 전투에서 유감없이 되풀이 되었다.



[소련의 인간 백정 – 소련군 독전대 정치장교]


엄청나게 소모되는 병력을 보충할 길이 없던 북한군은 남한에서 강제로 징집한 남한 출신 병사들을 공격의 전면에 내세웠다. 그 숫자가 낙동강 전선에 투입한 북한군 병력의 절반에 육박한다는 말도 있다. 


남한 출신 북한병들은 앞에서 날아 오는 총탄보다도 뒤에서 날아오는 북한군 정치 장교들의 권총 탄이 무서워서도 앞으로 무턱대고 장님 돌격을 하다가 무수히 전사했다.


앞에서 말 한 바대로 벼랑 끝까지 몰린 국군도 독전대를 동원했었다. 북한군 같은 정치 장교가 아니라 헌병들이 독전대원들을 했었다. 국군에서는 독전대라 해도 전장에서 돌격하지 않는 병사를 북한군들을 함부로 사살하지는 않았지만 전투에 소극적인 병사들은 명단을 확보했다가 전투 후에 군사 재판에 회부하여 엄하게 처벌하였다.



[낙동강을 건너 피난을 가는 여러 가족들]


나이도 많고 훈련도 되지 않은 강원도경 경찰관의 전투 실력에 애초 기대할 바는 못 된다. 강원 도경 소속의 일개 대대는 수도 사단에 배속되어 싸웠는데 이 전투 경찰 부대는 배속 초기 미군기의 오폭으로 20 여명의 피해를 보기도 했고 비봉산 전투에서 북한군에게 대패하기도 하였다. 전투력이 허약한 경찰 대대에는 더욱 엄한 독전이 가해졌다.


동해안 3사단에 배속된 강원 도경 경찰에게서 벌어진 웃지도 울지도 못할 실화를 하나 소개한다. 경찰이 맡은 구역으로 적이 박격포를 쏘면서 포위망을 압축해 올 때 도경(道警) 유도 사범인 김모경위가 지휘하는 경찰 중대의 뒤에서 헌병들이 M-2 카빈을 들이대고 전진하라고 무섭게 독전했었다.


그러자 김경위는 "포탄이 비오듯 쏟아지는데, 헌병 각하,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하면서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었었다고 한다. 유도 사범이 이렇게 공포에 질려 울었다면 그 홍천 경찰서 형사계장은 독전대의 제일의 질타 표적이 되었으리라고 본다.


그가 적전 비겁 행위를 하다가 무수히 구타당하는 수모를 겪으며 보호하고자 했던 가족의 안부도 걱정스럽고 치열한 전투에서 무수히 죽어간 강원 경찰들의 운명을 볼 때 그 홍천 경찰서 형사계장의 우려스런 운명에 더욱 가슴이 아프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Trackbacks 71 / Comments 3

  • 2016.05.08 21:11

    비밀댓글입니다

  • 팔성 2016.05.10 14:38

    일본영화에 나오던 대사..
    "전쟁은 나 하나 죽는다고 달라지진 않지만, 우리가족에게 나의 죽음은 엄청날거야."
    맞는 말입니다.

  • 김태우 2016.07.05 17:09

    정말 글 잘읽고 있습니다
    6.25 격전지마다 호국선열과 억울하게 죽은 영령들의 명복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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