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과 인간 가족 - 7 話] 군에 간 남친에게 매일 러브 레터 쓰는 ‘곰신’ -2-

[군과 인간 가족 - 7 話]

군에 간 남친에게 매일 러브 레터 쓰는 ‘곰신’ -2-


곽찬우 여친에게 연락을 해보니 찬우의 허락을 받고 응하겠다고 한다. 벌써 부창부수(夫唱婦隨)가 나오나 했더니 다음 날 찬우도 좋다고 하는 동의를 했다고 연락을 해왔다.



[찬우 휴가 귀대 일에 두 사람이 전철역에서 헤어지며.]


곽찬우 여친으로 알려진 곰신의 이름은 희주라고 한다. 성남의 모 대학 2년 차인데 찬우와 같은 과다.

두 사람은 용인에 있는 고등학교 2 학년 때 기타 동아리에서 사귀기 시작하였다. 둘은 사귀다가 대학교도 같은 과에 들어가 1 학년을 다니고 찬우는 군에 갔다. 


그는 강원도 철원 동송에 있는 6 사단 교육대에 입영하라는 통지를 받고 작년 1월 20일 6사단 신병 교육대에 가서 입소했다. 희주는 난생 처음 들어 본 철원 동송이라는 곳까지 찬우를 따라가 추운 날씨에 입영하는 그를 터지는 눈물을 속으로 삼키며 작별을 했다. 찬우가 신병 교육대를 마치고 7연대 지원중대 106mm 분대에 배치되었다는 연락을 받은 뒤인 작년 연대 카페에 가입하여 활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희주와 두어 번 통화를 해보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보니 2학년인 자기는 학교를 휴학하고 바리스타 학원에 가겠다고 한다. 거기서 교육을 받은 뒤에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자기 카페를 가질 때까지 경험을 쌓고 돈을 모으겠다는 과감한 결심을 들려준다. 찬우와 협의도 끝냈다고 했다. 대개 그런 어린 나이에 학업을 중단하고 생활 전선에 뛰어 든다는 것은 보통 힘든 결단이 아니다.



[학원에서 배운 기술로 만든 작품. 하나는 자기고 하나는 찬우인듯]


두 사람의 집안 환경을 물어보았다. 희주의 아버지 어머니 모두 직장에 다니면서 경제 활동을 하고 있고 찬우의 아버지 어머니도 직장에 다닌다는 것이었다.


‘돈 잘 버는 집안이라면 어머니는 대개 집에서 전업 주부로 살아갈 것인데 -- ‘


나는 희주에게 사는 정도를 은근히 떠 보았다.


“ 평범하게 살아가는 집안이라고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하고 당차게 대답한다.


희주와 통화한 뒤인 한참 뒤에 철원까지 올라가서 찬우를 만났다. 부대에 들어가 면담을 신청하니 보초 근무 중이란다. 조금 후 부대 행보관 김경만 상사가 찾아오고 30분 쯤 뒤에 근무를 끝낸 찬우가 들어온다. 희주가 그간 카페에 올려준 사진으로 그 얼굴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아도 잘 생긴 미남이다. 이런 예쁘게 생긴 녀석이 태권도 실력이 3단 심사 신청을 하고 있는 알찬 2단이란다.


찬우는 작년 카페에 최초로 올려 진 휴가 사진에 이병 계급장을 달고 있었는데 어느새 상병이 되어 있었다. 학교 1년 마치고 꼭 군에 가야겠다고 인생플랜을 세웠고 1학년이 끝나면서 한 눈 팔지 않고 바로 입대하였다는 것이었다. 군의 영장이 명령하는 전방 부대에 입대했고 훈련 후 군이 배치해준 부대에서 충실하게 군 복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에 가슴이 뭉클했다. 


군에 가기 싫어서 뺀질대는 인간들의 작태는 하루 이틀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설사 군에 간다 해도 집안의 영향력을 총동원해서 편한 부대, 좋은 보직을 가려고 무척 잔머리 굴리는 요령 찾는 젊은이들도 많다. 그 작태가 군생활의 질이 비교도 안 되게 좋아진 오늘 날에도 자주 보여 눈살이 찌푸려진다. 


나의 친지 아들 놈도 별 필요도 없는 대학원까지 다니면서 별별 요령을 다 피워 군 입대를 피했었다.결국은 끌려 가다시피해서 입대했는데 서른이 다된 나이에 제대를 해보니 나이 때문에 취업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듯하다. 쓸데없는 잔재주로 인생에 데미지만 준 결과가 되었다고 하겠다. 찬우는 희주가 응원해주는 희주의 편지나 선물들이 자기 군복무에 힘이 되었냐고 물어 보자 계면쩍은 미소를 띠우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찬우에게 희주가 꽃신 신겠다는 단호한 결심에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물어봤다. 찬우는 대답한다.


“이대로 간다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내 눈을 똑바로 보고 대답하는 것으로 진심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희주의 카톡 프로필. 찬우의 흐르는 세월 동안 얻은 계급장과 전역 예정일.

그리고 우는 이모티 콘은 기다리는 자기의 마음을 표시한 듯.]


군대에 간 남친에게 매일 러브 레터를 쓰며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에피소드는 단순한 미담으로 보고 그냥 지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단 두 사람의 러브 스토리에서 우리 젊은이들의 몇 가지 밝은 가능성을 읽어낼 수가 있다. 먼저 이들 두 남녀의 배경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두 사람의 집안은 앞에서 밝힌대로 재력이나 권력같은 것이 없는 보통 사람의 집안이다. 경제적으로 말한다면 서민이고 정치 사회적으로 말한다면 기층에 가까운 집안이다. 


사실 우리 역사, 특히 국방사는 머리 좋고 힘고 있고 - 그래서 요령도 좋아 병역은 적당히 얼버무리면서- 한국의 권력과 재력의 중심으로 파고 들어갔었던 일부 -자칭- 엘리트들이 아니라 국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여 전선에 보내져 싸웠고 산화했고 불구가 되었던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써 왔다는 사실에 유의하며 이 러브 스토리를 되돌아 보자.



[국가가 보낸 영장에 따라 군에 입대하여 전선으로 투입된 전란의 한국 보통 사람들. 

그렇게 보내진 수많은 아들들이 조국을 위해서 산화하고 어머니의 가슴 속에 평생 묻혔다.]


미국의 일본계 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선진국의 필수 조건으로 사회의 ‘신뢰[Trust]’를 들었다. 그는 일본과 미국 서유럽등의 선진국은 신뢰가 있는 사회로 평가한 반면 우리나라와 중국을 신뢰가 없는 사회로 평가하고 있다.


그런 지적에 찬반의 의견이 있겠으나 우리의 사회 철학인 유교에서는 신뢰를 인간이 갖추어야 할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하나로서 인간 기본 도덕으로 삼고 있다. 젊은 남녀의 애정 관계에 신뢰, 즉 믿음의 가치를 대입하는 것이 불필요한 짓으로 보이는 상황이 되도록 한국의 오늘은 자유주의의 남녀 애정이 정형화 되어가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남녀 모두 능력만 된다면 이 사람 저 사람 바꾸어 가면 교제해도 남들이 참견할 수는 없다는 시각이 있을 수 있다. 이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요즈음 재벌, 유명인등의 사회 지도층들에게서 유행같이 터져 나오는 신뢰 일탈(逸脫)의 파경과 혼외 정사 등의 불륜에 사회는 아주 관대한 시각으로 대해주고 있다. 



[찬우 휴가 나왔을 때 한복 카페에서 찍었단다.]


옛날 같았으면 그 정도가 지나쳐 세상의 질타를 받고 사회적으로 매장되었을 불륜의 남녀 당사자들이 뻔뻔하게 매스컴에 얼굴을 내밀고 자기 말을 해대는 것은 결코 좋지 않게 보인다.


요즈음 흐려진 세태와 한참의 거리를 둔 찬우와 희주의 답답한 클래식한 러브는 신뢰 또는 신의가 말라가는 우리 사회에서 신선한 청량제로도 들린다. 


그리고 아직 우리 사회의 주요 원동력인 ‘보통 사람’들 자녀들의 도덕이 건전하게 가동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있게 느끼게 한다. 찬우는 군 복무를 마치고 학교로 되돌아가 졸업과 동시에 좋은 직장을 잡고 희주도 새내기로 도전한 사회에서 잘 이겨나가 성공한 비지니스 우먼이 되기를 기원한다.


가까운 시기에 두 사람이 인생의 자리를 잡는 날, 꽃신을 신고 영원한 반려자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물론이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Trackbacks 48 / Comments 3

  • david 2016.02.23 14:30

    전후방 오가시며 취재 에 수고 많으셧네요
    타임머신을 타고 40 년전으로 돌아간 느낌 입니다--그 시절의 젊은 날 군대 추억!!
    두 젊은 이가 동갑내기 인가 본데 당근 잘 살겟군요! 제 개인의 부끄러운 추억을 말씀 드려도 될지 모르겟는데, 켐퍼스의 낭만 (?) 이다 하여 철업씨 명동 나가 생맥주 마시고 친구들과 개똥철학이나 읇던 대학 생활 중 입대하여 전입 된곳이 " 원통" 이란 첨 들어보는 강원도 하고도 첩첩산중 이라 철업씨 부친께 후방으로 빼달라고 매달렷지요, 당시 남산에 계신 한분이 부친의
    아우 뻘 이시란걸 알기에.. 선친께서 결코 안 하셧습니다--젊어 고생 사서도 하는 거라시며... 최전방 생활에 어려움도 잇썻지만 그 시절 익힌 인내심이 지금도 인생에 힘이 되어 그때 철업는 저를 편한 후방부대로 안 빼시고 제 인생에 귀한 경험을 하게 해주신 선친께 늘 감사한 맘 이지요
    사회의 지도층에 잇는 분들 일 수록 오히려 최전방 근무 같은걸 함 으로서 건전한 시민 의식이 키워졋쓰면 조켓습니다
    육이오 때도 미국 대통령 아들 부터 참전 햇잔아요, 유엔군 사령관 아들은 전사도 햇고... 우리 사회도 그런 기풍이 어서 정착 됫쓰면 합니다

    • david 2016.02.24 02:52

      얼마나 엄 하게 하셧냐 하면요( 요즘 분들 혹 참고가 될까 해서...)후방으로 빼달란 말은 꺼내지도 못하게 하셧고 군대 갈때나 3 년 복무 중 면회 한번 오신적 업썻고 휴가 나와서 복귀 할때도 차비 한푼도 안 주셧지요. 나라에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옷 주고 월급도 주는데( 일등병 월급이 한 천 원도 못된것 같은 기억인데..당시 짜장면 이 한 300 원 됫나요?)무슨 돈 을 달래냐 하신거죠- 그래도 제가 6 남매 중 장남 엿는데도.... 당시 제가 철업써 아버님의 그런 엄격 하심에 서러워(?) 귀대 하는 금강운수 뻐스 안에서 눈물도 흘린적이 잇썻지만, 세월 지나보니 그 엄격함이 인생에 얼마나 큰 보약 같은거 엿는지... 참! 감사한 맘 늘 들지요.. 글쎄요, 요즘 기준에선 이해 하시기 좀 어려우실지 몰라도...

  • 김창원 2016.02.26 01:26

    david님 또 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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