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군화 신고 휴전 회담장에 나온 북한 경비병

미군 군화 신고 휴전 회담장에 나온 북한 경비병


한 메니어가 군사 사이트에 올린 한국전쟁 당시 휴전 회담장에 배치된 북한군 경비병의 누비옷 차림 사진에서 특별한 점을 발견하였다. 이 사진은 인터넷에서 자주 보이던 흑백 사진이었다. 그러나 이 사진만은 컬러 처리를 하여서 그간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검은 테로 표시한 곳을 보아주시기 바란다.]


흑백 사진에서는 잘 알 수 없었던 사실이었지만 이 컬러 사진에서는 북한군이 북한 제식 군화인 헝겊 군화가 아니라 미군의 것으로 보이는 군화를 신고 있다는 점이 나타나 보인다. 단 간부인 오른 쪽의 나이 든 북한군의 군화는 빼놓고 말이다.


북한 경비병의 미군 군화 착용은 소위 말하자면 미군에게 엿먹어보라는 심리전의 일환일 것이다. 북한은 첫 휴전회담이 북한 땅인 개성에서 열릴 때부터 유치한 심리전을 해댔다. 개성에 들어오는 유엔군 대표들을 공산군이 노획한 미군 지프차에 태운다거나 공산측 대표 남일이 노획한 무초 대사의 크라이슬러 승용차[잘못 오인한 것이지만]를 타고 나타나는 자동차를 이용한 선전전이 펼쳐졌고 실내에서는 유엔군 대표의 의자를 공산군 대표의 것보다 훨씬 낮은 것을 배치하는 것으로 미군 대표를 조롱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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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초 대사의 승용차는 1951년 10월 22일 북진하던 6사단 7연대 1대대 1중대가 청천강가에서 김일성이 버리고 간 22대의 고급 승용차를 노획했을 때 김일성의 승용차와 함께 노획되었었다. 노획한 차 중에서 최고의 고급차였다고 한다. 김종호 사단장이 사용하다가 무초 대사가 국군에 자기 승용차의 행방 추적을 부탁해서 돌려주었다. 남일이 타고 와서 으시댄 크라이슬러는 아마 북한군이 서울에서 도둑질해간 다른 외국인의 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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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담장을 중간지대인 판문점으로 옮겼을 때 양측의 경비병이 배치되었다. 북한군 경비병들의 남루한 누비 군복과 섬뜩하게 보이는 긴 날창이 유엔측 기자들의 눈길을 끌어 사진이 많이 찍혔었고 신문에도 소개되었었다. 누비옷은 천 사이에 솜을 깔고 이것이 고정되도록 바느질로 누빈 것이다. 방한 효과가 커서 소련군, 중공군, 북한군,그리고 국군도 동계 피복으로 입었었다. 


[국군의 누비 방한복]


과거 따뜻한 남한 사회에서는 저런 누비 옷이 비교적 드물었으나 누비 버선은 많았었다. 어르신들의 말씀은 누비 버선의 방한 효과가 뛰어났으며 현재의 어지간한 털 양말보다 나았다고 한다. 현재 누비는 여성의 패션 분야를 제외하면 사라진 옷이 되었으나 산사로 돌아다니거나 추운 곳에서 수행해야 하는 스님들은 아직도 이 누비 두루마기를 착용한다.


[허허 벌판에 마련되었었던 초기 판문점 회담 장소]

[유엔군측 경비병]


누비 군복을 입은 북한군을 촬영한 또 하나의 다른 사진이 인터넷에 돌아다닌다. 위의 사진은 세 명이 찍혔지만 그 사진에는 단 한 명이 촬영되어 있었다. 그 경비병의 누비 옷도 아주 남루했었다. 유엔 측 기자들이 다가와서 카메라를 마구 들이대니까 이 북한군의 표정은 당황감과 수치감과 분노로 이그러질대로 이그러져 있었다.


카메라 세례에 모욕과 조롱으로 느껴졌는지, 또는 처음부터 그랬었는지는 몰라도 경비병들은 노획한 미군 군화를 신고 나타났다. 북한군 장교의 군화는 목이 긴 장화지만 사병들은 당시 일본어인 지카다비[地下足]로 통칭되는 헝겊-고무창의 농구화형 군화를 신었었다. 비슷한 것들은 국군에게도 지급하기도 했다.


사진의 북한군이 신은 군화의 전 소유자인 미군이나 국군은 포로가 되었거나 전사했을 것이고 북한군은 그런 사실을 은근히 과시함으로서 미군을 조롱하는 선전전을 했을 것이다.


미군 군화가 아닐 가능성을 생각하게 하는 것은 미군 군화의 앞 코는 많이 올라와 있는데 사진 속 북한병들의 군화는 납작하게 보이는 점이다. 이 둥그렇게 올라온 미군 군화 앞부분은 무거운 것이 떨어졌을 때나 돌같이 딱딱한 물체에 충돌했을 때 발가락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나는 혹시나 해서 중공군이나 소련군이 지급한 군화가 아닐까 하고 그 가능성을 알아보았었다.


그 당시 중공군도 장교 사병 공히 농구화 같은 군화를 신었었다. 소련군은 장교 사병 공히 목이 긴 가죽 장화를 신었었다. 그러니까 이 사진의 군화는 북한 동맹국의 군화는 아닐 것이다.




[누비 옷의 중공군. 신발은 농구화 닮은 중공군 군화. 중국 샹하이에서 만든 것이 많았었고 

신발 상태가 안 좋았던 국군도 많이 빼앗아 신었었다. 품질이 국산보다 나았다고 한다.]


나는 행여나 해서 가지고 있는 두 권의 한국전 화보에 나오는 미군 수백 명의 군화를 다 확인해봤다. 나는 여기서 한국전 당시 미군의 군화가 기본적으로 같지만 약간씩의 변화가 있는 여러 종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진에서와 같이 코 부분이 별도의 가죽으로 만든 형도 있었고 코 끝까지 통가죽으로 만든 형도 있었고 목 부분 옆에 조이는 스트랩[페스너]이 있는 형도 있었다. 코의 높이도 높고 낮은 형이 있었고 목이 길고 짧은 차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공통으로 꼭 같은 것은 북한군의 군화에서 보이는 것처럼 군화 끈 묶는 부분이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두 북한 경비병이 신고 있는 군화는 미군 군화라는 것을 단정할 수가 있었다.


북한군 군화 코끝 소위 뻥을 넣은 부분이 낮은 것은 군화가 물에 오래 잠겨있었거나 오래 사용했었거나 또 군화들을 한 묶음으로 묶어서 보관하면 이 뻥이 축소된다.


구두약등의 보호제를 바르지도 않고 관리를 엉망으로 해도 이 뻥이 줄어든다. 아마도 이 군화의 원주인은 격렬한 전투를 겪으며 군화를 험하게 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어서 노획한 북한군 병사가 제대로 관리를 못했으니 코가 줄어들 수 밖에 없던 것으로 보인다. 군화의 목이 짧아 보이는 것도 카메라의 각도와 바지가 가려져서 그렇게 보였을 가능성이 더 크다.

 


[미군 군화. 나의 군 시절 국산 군화는 사진과 같이 군화 코가 두 조각이었으나

암시장에서 거래하던 미제 군화는 일체 통가죽이었고 코도 낮았었다.]


나는 오른쪽 나이 든 북한군 간부가 이 신은 군화의 생김생김이 미군 군화와 많이 다른 점에 주목했다. 뒷 굽이 너무 얕고 코가 너무 납작하다. 바지 아래 살짝 보이는 군화 등에도 다른 무늬가 있다.




북한군 하사관인 이 녀석은 군화를 신는 방법부터 두 졸병과 다르다. 즉, 바지를 아래까지 내려 군화 등을 덮었다. 군화 목 부분이 짧거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단화는 아니다.


바지로 가려진 이 북한 하사관 군화의 정체가 무엇일까? 나는 옆으로 살짝 보이는 가죽 바느질의 패턴을 단서로 그 실제를 찾다가 일본군의 군화였던 헨조카[編上靴]를 주목하였다.


보니 옆구리 바느질 패턴이 유사하다. 일본 군화 헨조카는 남한 국방 경비대도 신었었고 경찰도 사용했었다. 일본군 헨조카는 갈색, 브라운 색이 많았지만 검은 색이 있었는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색깔을 검게 물들이는 것은 별 문제가 아니다.




[일본군 공식 군화 헨조카[編上靴],사병용과 하사관용이 따로 있었으며 이 군화를 신은 다리에 각반을 감았다. 전투시에 일본군 장교들은 표가 나는 군화대신 헨조카를 신기도 하였다.]


일본군 관동군 50만 명과 만주군 20만, 만주 경찰 20만의 군화인 헨조카는 넘치게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소련군이 압수한 헨조카 중에 일부가 북한군에 공급되었고 이 것이 하사관의 제식 군화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진짜 진품 헨조카가 아니라 북한내 모방 생산품일 가능성도 있다. 북한이 북한군을 창군하면서 군모라던가 군화에서 나름대로 독창적 길을 걸으려고 했다. 사병들은 지카다비[地下足]를 신었으나 장교들은 소련의 영향을 받았는지 옆에 붉은 줄이 쳐진 푸른 색 승마 바지에 목이 긴 가죽 장화를 신었었다. 스타일리스트였던 김일성의 입김이 느껴지는 측면이다. 그는 무릎 위가 넓은 승마 바지 광이었다.


장교 군복에서 이렇게 멋을 부렸다면 하사관들의 신발에도 어떤 특전을 부여하지 않았을까?  즉 장교가 신던 장화는 아니라도 가죽으로 만든 군화가 하사관의 군화로 제식화했을 가능성이다.그렇다면 목이 약간 짧은 반장화인 헨조카형 군화가 결정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김일성은 일본군, 만주군, 만주군 경찰들과 싸우면서 이 헨조카와 매우 익숙해졌을 것으로서 이 익숙함이 하사관의 군화 모양 결정에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다.

 

[근사하게 빼 입은 남일과 뒤의 노획 미제 크라이슬러. 

왼쪽에 후즐근한 누비옷의 경비병 팔과 날창을 꽂은 총이 보인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Trackbacks 39 / Comments 4

  • ~.~ 2016.02.15 00:50

    메니어가 아니라 매니아입니다.

  • 울프 독 2016.02.15 01:20

    별것을 다 시비하시는군. 한글로 최대한 정확히 표현하면 메이니어입니다.
    네이버에 들어가서 실제 발음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한글 외래어 표기법이 현실과 차이가 많아 여러 오류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 ㅡ.ㅡ 2016.05.12 23:19

    걍 좋아서 신은거 같은데.
    일개 병사 따위가 도발할 정도의 의식으로
    똘똘 뭉쳤다면 후덜덜아님? 군중속에 불가능한일일텐데. 가죽군화 현재도 장교들만 신음.
    딱딱한 플라스틱군화가 발보호한다지만. 기동력 제로. 100미터 10초뛰는넘이 20초 넘을듯

  • 2016.05.15 15:52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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