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 계곡에 돌진한 전차대 -4-

임진강 계곡에 돌진한 전차대 -4-


식현리 전투는 양측의 전차가 맞붙지 않았었기 때문에 별로 주목 받지 못했던 한국전쟁 전차전들의 하나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 전투는 막 춘계 공세를 개시했던 중공군에게 던졌던 암시는 아주 불길한 것이었다. 


한국전쟁 중 기계화 부대, 특히 전차 부대 운용에서 얻은 교훈은 기계화 부대를 산길에 몰아 넣지 말라는 것이다. 미군은 좁은 산길에 기계화 부대를 투입했다가 매복한 적군에게 공격 당하면 어떤 대피해를 입는지를 그 전해 1950년 가을과 겨울, 청천강 이북과 장진호에서 뼈저리게 실감했었다. 


반대로 기계화 부대를 상대로 하는 방어 작전에서도 준수하여야 할 원칙이 있다.대전차 대책없는 대군을 개활지에 밀집 전개시키지 말라는 것이었다.그 냉혹한 교훈을 이 식현리 전투가 최초로 중공군에게 가르쳐 주는 기회가 되었다.


하지만 팽덕회가 이끄는 중공군 수뇌부는 50만 대군을 동원해서 발령시킨 춘계공세, 즉 5차 전역에서의 서막에 주어진 이 교훈을 전혀 깨닫지도 못했고 활용하지도 않았다.



[김일성과 팽덕회 - 조중 수뇌부

이들은 한반도 북쪽에서 거둔 반격전의 승리에 도취되어 춘계공세 때까지도 

한국을 완전 점령할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개활지에 밀집대군을 전개시키지 말라는 교훈을 중공군이 한달 뒤인 춘계공세의 공세 종말점인 서울 동쪽 한강변에서야 뼈저리게 느꼈지만 이미 때는 늦었었다.

 

[이런 개활지에서 수만 믿고 인해전술을 하면 전차의 밥이 되기 마련이다. 

- 독소 전쟁 초기 소련의 평원]


팽덕회나 그 부하들은 압도적인 병력만 투입하면 아무리 강한 화력을 가진 적도 격파할 수 있다는 수[數]의 불패[不敗] 원칙이라는 미몽에서 깨어나지를 못했다.


중공군의 춘계공세도 병력의 압도적인 투입으로서 적을 압도하려는 환상 같은 인해전술을 기본 개념으로 하고 시작한 것이었다.그 때까지 그런 환상이 통하는 전투를 해왔었고 성공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반도는 그들이 작전하던 중국 대륙에 비하면 집안 뜰처럼 좁은 곳이었다. 1951년 춘계공세 때 중공군이 너무 많은 병력을 좁은 한반도 중부 지역에 집중하다 보니 슬슬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들과 산, 도로를 가득 메운 많은 대부대가 우글우글하며 서울 북방에서 한강 중류까지 커다랗고 밀집된 공격 목표를 형성해서 미군이 일찌감치 항공 정찰로 이를 파악하고 있는 터였다.

설상가상으로 이들 중공군의 대군은 공세종말점에 달해서 휴대했던 식량과 실탄을 거의 다 소진한 기진맥진한 기아 상태였다..


때를 노리던 미군 9군단은 전차 200량을 동원해서 이 거대한 밀집 군중같은 중공군 부대를 중간에서 절단하고 여기에 한미 보병부대가 합세하여 도로와 민둥산 산야에 널린 중공군들을 난도질하듯 도륙하기 시작하였다.


중공군이 남한 절반 정도를 먹어 치우겠다고 시작한 춘계공세가 한 달이 지난 1951년 5월 하순이었다.


중공군은 하늘을 뒤덮은 공격기들과 지상에서 종횡무진하는 전차들을 막아낼 마땅한 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저 죽어나가며 도망쳐야 했다. 


50만 명이 투입된 이 춘계공세 즉 중공군 5차 전역에서 약 8만 명의 중공군 병력이 섬멸 당했는데 이 중 2만 명은 포로가 된 병력이었다. [중공군의 공식 전사는 3만명만 잃었다고 거짓 기록하고 있다.]


오죽 중공군을 많이 죽였으면 미안하게 생각한 미군들이 이 전투에 ‘5월의 대학살’이라는 이름까지 붙여주었을까!


‘병력’의 압도적 투입이란 적의 병력을 염두에 두었을 때나 쓰는 말이다. 전차나 포병이나 항공력 같은 ‘화력’의 앞에서 ‘병력’은 그저 풍부한 먹이일 따름이다.


중공군은 개전 이틀 째인 1951년 4월23일,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식현리에서 중공군 일개 대대 병력이 미 일개 전차 중대에게 전멸당한 사건은 비록 작은 전투였는지 몰라도 앞으로 중공군에게 다가올 대재앙을 예고한 전투였다. 



[미국 기자가 한국 통역에게 부탁하여 모두 처형하겠다고 거짓 엄포를 놓자 울면서 애걸하는 중공군 포로들- 거의 전부가 순박한 농부 출신들인데 한국전쟁에 내몰려 대량으로 죽임을 당했다. 식현리의 중공군들도 압록강에서 임진강까지 비를 맞으며 걸어와 떼죽음을 했다.]


팽덕회를 비롯해서 중공군 사령부의 작전부서는 이 식현리 피습을 전략적인 시각으로 분석하고 판단한 뒤에 춘계 작전을 다시 수정해서 우선적으로 선두 부대에 최소한 대전차 지뢰 정도의 무기부터 지원했어야 했다.


그리고 무턱댄 전진만 하지 말고 미군이 전차를 앞세운 반격을 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조심해서 전진해야 했는데 너무 지나친 만용을 부린 결과로 수많은 병력을 잃었다.



[중공군의 포로들]


[전후 패배 분석 회의에서 팽덕회는 자기 실수는 감추고 왜 도로에 장애물이나 깊은 함정을 설치하지 않아 전차들에게 당했느냐고 애꿎은 부하들만 질타했는데 본질이 공격이었던 춘계공세에서 그런 여유는 없었으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겠다]


중공군에게 큰 교훈을 준 식현리 보전조 공격은 우리 국군 작전 분야에도 암시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Trackbacks 51 / Comments 2

  • david 2016.01.31 13:52

    네! 그렇 습니다. 우리네 인생사도 그렇코
    인간이 겸손치 못하고 자만에 치우치다 보면 이런 삽질 들을 하게 되나 봅니다
    이런 전사를 보며 새삼 느끼는 것은 전쟁 이란게 결국은 무기의 싸움 보다 인간 간의 싸움 이라는 것을....무기개발 이야 끝이 업쓸 것이고, 허나 그것을 지혜롭게 쓰는 자는 마지막 승리자가 되고 그러치 못 한자는 패배자가 되겟죠
    새삼 이런 세상의 진리를 알려주는 글 같아 잘 보앗 습니다. 계속 좋으신 글 부탁 드리며...

  • 제임스정 2016.02.02 08:14

    결론은 적전차를 파괴할 화력이 못되는 상태에서 적 전차와 교전시엔 적전차의 케터필더를 집중공격 움직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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