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話는 그들이 만들었다 [ 3 ] 완성된 전격전 그러나

神話는 그들이 만들었다 [ 3 ] 완성된 전격전 그러나


1940년 5월 10일, 여러 차례의 망설임과 연기 끝에 드디어 히틀러는 일생일대의 도박을 단행하였다. 그것은 20년 전 돌파에 실패하여 300만 명의 독일 젊은이가 숨져간 지옥의 서부전선으로 독일의 군대를 집어넣는 것이었다. 이렇게 위험을 감수하여야 할 가장 큰 이유는 프랑스가 베르사유 체제로 독일의 목을 짓누르는데 가장 앞장 선 철천지원수로 반드시 복수하여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었다. 



[ 독일은 드디어 프랑스 침공을 개시하다 ]


하지만 비록 만슈타인이 입안한 낫질계획(Sichelschnitt)을 히틀러가 전격적으로 채택하여 이에 따라 개전을 하였지만, 전쟁을 결심한 히틀러나 마지못해 전쟁을 벌여야 하는 군부도 전선이 고착되어 하염없이 인명만 죽어나간 20년 전의 기억이 머리에서 떠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만에 하나라도 돌파에 실패하여 전선이 고착화되고 다시 참호전이 반복 된다면 어떻게 하나하는 염려를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



[ 독일도 프랑스도 제1차 대전의 악몽을 항상 기억하고 있었다 ]

 

이러한 우려를 가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구데리안이나 만슈타인이 주장하던 속전속결 전략을 완성하기 위한 독일군의 장비가 너무 턱없이 부족하고 성능도 미흡하였다는 점 때문이었다. 비록 프랑스 침공전을 앞두고 새롭게 제식화한 3호, 4호전차가 본격 투입되었지만 아직은 소량이었고, 여전히 지난 폴란드 전선에서 활약하였던 1호, 2호전차가 독일군 기갑부대의 중핵이었다.



[ 프랑스 전역에서도 1, 2호 전차가 독일기갑부대의 주력이었다 ]

 

이에 반하여 프랑스나 영국이 보유하였던 기갑 장비들은 상대적으로 강력한 중전차들이었는데, 객관적으로 1:1 로 독일 전차와 연합국 전차가 대결을 한다면 독일군의 처참한 패배로 끝날 것이 확실할 만큼 성능 차이가 있었다. 예를 들어 아라스(Arras)에서 영국 전차에 의해 독일의 진격이 멈추게 되자 대공포로 사용하던 88mm Flak을 대전차포로 긴급 전용하여 사용하였을 만큼 독일의 기갑 장비는 열세였다. 



[ 프랑스 점령 후 독일이 노획하여 사용한 프랑스의 솜무아전차 ]

 

하지만 역사는 이러한 우려와 예상과 달리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변변한 통신 장비도 갖추지 못한 체 분산배치 되어있던 연합군의 느려터진 중전차들은 상호 밀접한 연락 하에 대규모로 무리지어 전선을 집단 돌파하여 쾌속으로 진격하던 경량의 독일전차들을 당해내지 못하였다. 전차의 성능이 아니라 기갑부대를 운용하는 방법 차이에서 승패가 결정된 것이었다. 연합군은 차례차례 분산 포위되어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 독일의 집단화 기습공격에 프랑스는 전의를 상실하였다 ]

 

이후에 전격전으로 개념이 정립되어지는 진정한 신화가 실현되어 가고 있던 중이었다. 폴란드에서 처음 시도하여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발전한 독일의 전격전은 프랑스 전선에서 이처럼 꽃망울이 맺히게 되었다. 결국 당대 최강 육군 강국 프랑스가 6주 만에 항복 문서에 서명을 하도록 만들어 세계를 놀라게 하였고 이후 이런 놀라운 경험은 독일군의 기본 전략이 되었다.



[ 6주 만에 프랑스가 항복함으로써 전격전의 신화가 정립되었다 ]


이후 북아프리카와 발칸반도에서 계속하여 이어진 독일의 쾌속 진격은 불패의 원동력이자 전쟁 방법의 새로운 텍스트가 되었고 영국을 제외한 전 유럽을 독일의 발아래 놓이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독일 스스로도 놀랄 만큼 계속된 승리에 도취되어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스스로의 약점을 아직 깨닫고 있지 못하였다. 아니 어쩌면 설령 알았어도 크게 문제 삼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 기갑부대의 쾌속진군 이면에는 이런 모습이 일상이었다 ]

 

계속된 승리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선봉의 기갑부대를 후속하여 진군할 후위부대에게 약점이 드러났다. 특히 상당 부분을 차량이 아닌 우마차에 의지하는 보급 부대의 기동력은 선도부대의 쾌속 진격을 뒷받침하기에 미흡한 부분이 많았다. 이러한 단점은 폴란드나 프랑스에서 이미 확인된 문제였지만 종심이 짧은 전역이어서 큰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1941년 여름 달려간 러시아의 끝없는 평원은 그러하지 못하였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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