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펠러 전투기 최후의 공중전

프로펠러 전투기 최후의 공중전



아래 일화는 2차 세계 대전,한국 전쟁, 프랑스의 인도 차이나 전쟁, 그리고 북아프리카 식민지 전투에서 숱한 전투를 경험하며 여러 진기록을 남긴 미국 F-4 U 콜세어 전투기가 그의 역사 마지막에 싸운 전투를 소개하는 것이다.

              

혼두라스 공군 F4U 콜세어 전투기 [1956년 도입]


콜세어 기는 태평양 전쟁 발발 직전 개발이 마무리되어 전쟁이 1년 지난 1943년 2월에 전투에 투입되었었다. 제작사는 미국의 Chance Vought사였다. 원래 해군용으로 개발되었지만 좁은 항모 갑판에서 수행해야 하는 착륙에 여러 문제점이 발견되어 콜세어 전투기 대부분을 육상에서 출격시키는 해병 항공대에게 전용시켰다. 이후 콜세어 기는 해병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러나 미 해군도 일부 콜세어 기들을 계속 사용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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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 날개를 뒤집어 놓은 것 같은 콜세어 기의 독특한 모습은 설계에서 특별한 항공 역학적 요소가 적용되었던 것이 아니라 구조상 바퀴의 다리가 너무 짧아서 그대로 설치하면 프로펠러가 땅에 닿는 문제가 발생했다. 그래서 할 수없에 날개를 낮추어 이 문제를 해결했던 것이 그런 괴상한 모양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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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개전 후 미군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일본 제로 전투기를 최초로 성능면에서 압도해버린 전투기가 이 콜세어 기였었다. 콜세어 기는 한국전에 참전, 대지 공격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전공을 세웠다.

 

제트 시대가 오자 다른 프로펠러 전투기들이 대부분 생산 중단과 퇴역의 수순을 밟았던 것에 비해서 콜세어 기는1953년도까지 생산되었다. 콜세어 기는 총 12,500기가 생산되었다. 태평양 전쟁 중 한창 수요가 급증했을 때는 Chance Vought사만의 단독 생산력이 부족하여 타이어 회사인 Goodyear사의 자회사와 F2A 버팔로 기를 생산했었던 Brewster사도 콜세어 기들을 생산했었다.

                            


 [미 해병 항공대의 F4U 콜세어기 ]


 

콜세어기들이 활약하던 태평양 전쟁이 끝났고 한국 전쟁도 끝났다. 시간이 흘러 콜세어 기들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거의 잊혀질 무렵인 1969년 콜세어 기가 다시 열전의 스타로서 세상에 출현했다. 먼 중남미의 혼두라스와 엘살바도르 사이에 벌어진 축구 전쟁이라는 괴상한 이름의 전쟁에서 였다.

 

전쟁에 축구 이름이 붙었지만 그 전쟁의 배경에는 복잡한 배경이 있었다. 엘살바도르는 국토는 작았지만 인구가 혼두라스보다 40%나 많았고 혼두라스는 인구는 작았으나 그 영토는 엘살바도르 보다 다섯 배나 컸다. 결과 엘살바도르 농민들이 월경해서 혼두라스에 들어가 개간을 하며 소유 토지를 늘려 나가는 현상이 벌어졌다.. 

 

1960년대가 되자 혼두라스 농민의 20%가 엘살바도르에서 건너와 농사를 짓는 엘살바도르 출신들이었다. 국내 여론이 안 좋아지자 혼두라스 정부는 1962년 토지 개혁령을 발표하고 1967년 엘살바도르 이주 농민들의 땅을 모두 몰수하여 혼두라스 농민들에게 분배해주었다.

 

이 일로 두 국가 사이 감정은 극히 안 좋아졌고 1969년, 다음 해에 있을 1970년 월드컵을 위한 중미 예선전에서 양편 사이의 폭력이 난무하고 정부 간에 비난전이 오고 가다가 국교가 단절되고 엘살바도르의 선공으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공격의 선두에 엘살바도르 공군이 앞장섰다. 1969년 7월 14일 오후에 작전 개시가 있었다.대형 폭격기가 없었던 엘살바도르 공군은 민간기인 DC-3기에 폭탄을 매달고 출격해서 혼두라스 공군 기지를 폭격했고 엘살바도르의 육군이 혼두라스 영내로 쳐들어갔다. 반격에 나선 혼두라스 공군은 엘살바도르 공군 기지를 폭격하였다.이후 육상전은 엘살바도르 육군이 주도했으나 제공권은 더 우세한 혼두라스 공군이 확보하고 엘살바도르를 압박하였다.

 


[DC 3 ,공군형은 C-47]

                     

전쟁이 열전으로 번질 것 같은 기세에 미주기구[OAS]가 개입해서 양국에 휴전하도록 압력을 가했다.양국이 휴전에 동의함으로서 전쟁은 100시간도 지나지 않은 7월 20일 끝이 났다.혼두라스 영내로 진격해 들어갔던 엘 살바도르 육군은 혼두라스가 몰수한 엘살바도르 농민 소유 토지 반환등의 요구 조건을 내밀고 버티었으나 미주기구의 압력으로 다음 달인 8월 20일 철수하고 말았다.

 


[엘살바도르와 혼두라스의 축구 전쟁]

 

이 괴상한 이름의 전투에서 공중전 사상 프로펠러 전투기들이 최후로 싸운 전투가 있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혼두라스 공군의 페르난도 사토 대위는 콜세어 전투기를 몰고 출격하였다.1969년 7월 17일 아침 그는 엘살바도르 공군의 F-51 무스탕 기 한 기를 격추하고 조종사를 전사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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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F-51은 전후 플로리다에 있던 미국의 케벌리어 항공기 제작사가 중고 기체와 잉여 군수 부품으로 조립한 무스탕 기였다. 캐벌리어 2000이라는 명칭이 있었고 엘살바도르에 수출된 이 전투기들 날개 끝에 연료 탱크가 부착되어 있었다. 


[캐발리어 사 F51- 날개 끝 보조연료 탱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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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재차 출격한 그는 엘살바도르 공군 소속 두 기의 FG-1 1기를  격추했다. FG-1은 콜세어의 주문 폭주로 타이어 회사인 굿이어 사에서 조립했었던 F-4U 콜세어 기의 다른 이름이다.콜세어 기가 콜세어 기들을 격추한 것이다. 

 

두 기의 조종사중 한 명은 낙하산으로 탈출하였으나 다른 한 기의 조종사는 기체의 공중 폭발로 전사하였다. 원체 공군력이 빈약했었던 엘살바도르 정부는 4명의 미국인 베테란 용병들을 고용했으나 이들은 실전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이 미국제 바다의 전투기[콜세어]와 육지의 전투기[무스탕]가 서로 붙은 공중전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벌어졌던 유일한 프로펠러 전투기들의 대결로도 기록된다.

 

콜세어 기는 그 긴 활약 기간 동안 여러 특이한 기록을 세웠었다.

오키나와 전투 때 해병대 R.R. 크링맨 중위가 조종하는 콜세어 기는 고공으로 비행하는 일본 육군 쌍발 전투기 Ki-45 돈류[屠龍]를 공격하는 도중 기총 고장으로 타격을 줄 수가 없자 후미로 접근하여 프로펠러로  돈류의 꼬리 날개를 긁어 격추시켰었다. 콜세어 기의 프로펠러 끝들이 5인치가 날아갔지만 그는 무사히 돌아왔다.

                                   

[일본 2식 전투기 돈류- B-29 요격에 주로 사용]

               

6.25 전쟁 때 미 해군의 레이더 장비 야간 전투기 콜세어 F4U-5N 기는  야간 전투의 에이스를 배출했다. 가이 보드론[Guy Bordelon] 해군 대위가 조종하던 야간 전투기는 수시로 남한 영공을 잠입하여 폭격을 해대는 공산측의 프로펠러 전투기들을 요격해서 다섯 기를 격추하고 에이스가 되었다.

                    


[가이 보드론 대위]

 

한국전쟁중에 프로펠러기인 콜세어 기는 제트 전투기인 미그 15기를 격추하기도 하였다.1952년 9월 10일 해병대 조종사 Jesse G. Folmar 대위는 대동강 하류 상공에서 미그기에게 기습을 받았지만 오히려 반격하여 이를 격추해버렸다..

 

그러나 이 축구 전쟁에서 혼두라스 공군의 F4U기가 1차 대전 초기 조종사끼리 권총을 난사하며 시작되었던 길고 긴 프로펠러 시대의 항공전에 마지막 마침표를 찍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제일 특기할만한 항공 전사적 가치가 있을 듯하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Trackbacks 49 / Comments 3

  • david 2016.01.20 00:47

    몇년 전 읽엇던 기사를 기억해 봅니다
    해당 인물의 이름은 기억이 안 나는데요
    그는 미 해병 최초의 흑인 조종사 엿습이다
    인종 차별을 극복하고 해병 콜세어기 조종사 가 된 그는 장진호 전투에 참전하여 본문에서 나오듯이 많은 대지공격에 참가하여 전공을 세우던 중 지상포화에 피습되어 장진호 부근 고원지대에 비상착륙 케 되엇는데 같이 날던 동료 조종사 시야에 그가 불시착후 조종석에서 탈출하는 모습이 보이질 않아 그 백인 해병 동료 조종사는 적들이 접근해 오는 위험을 아랑곳 않코 불시착한 동료기 옆에 착륙해서 보니 그 흑인 해병 조종사는 불시착시 충격으로 접혀진 조정간 사이에 발목이 끼어 고통속에 움지이질 못 하고 잇썻습니다
    아무리 앨 써봐도 조정간을 절단 하던가 끼인 다리를 절단 하지 않는 한 그 흑인 해병 조종사는 빠져 나올 수 가 업는 상태엿고 허나 그 상황에서 조종간를 절단할 공구도 다리를 절단할 의료기구도 업는 상황에서 의식이 희미 해져 가는 그 흑인 콜세어기 해병 조종사는 목숨을 걸고 자신을 구하려온 동료 해병에게 자기의 머리카락과 개인 소지품 몇점을 건네주며 중공군이 몰려 오기 전에 어서 이륙 하라 말을 합니다
    두 해병은 얼싸안고 눈물로 작별을 한후 동료 백인 해병은 즉시 동해상 의 항모로 귀환 후 비행단장에게 보고를 하니 단장은 즉시 편대를 꾸며 구출하러 가자 햇지만 이미 날은 저물고 어두운 개마고원의 적지 상공에서 작전 은 불가 함을 인지 한후 낙망에 빠지고 맘니다 담날 현장상공을 날아 갓쓰나 중공군에 점령된 기체의 모습만 보일뿐 그 흑인 해병 콜세어 기 조종사는 고통 속에 춘 겨울 낯선 땅 개마고원 어디선가 죽어 간거죠. 세월이 50 년이나 흐른 후에 마침내 이 흑인 해병 콜세어 조종사 의 감투는 미국방부에 알려져 유족에게 훈장이 수여 됫습니다 고마운 한 미국 젊은이 의 실화 인데요, 한 10 년 전 인지 미국 항공잡지 AOPA 에 낯던 기사 입니디

    • Favicon of http://white49444944@gmail.com 된.장 2016.03.11 10:38

      훈훈한 이야기인데 ..전쟁은 무섭슴니다

  • david 2016.01.20 20:45

    이 추억의 콜세어 나 머스탱 같은 왕년의 명품 전투기 들은 오늘날 북미주의 주머니가 좀 두둑한 뱅기쟁이 들의 toy 들 입니다
    두 기종 의 현 시세가 2-3 백만불 정도 인데요. 에어쑈 가보면 이 기종 뱅기 주인들, 애들 장난감 자랑하듯 show off 이 대단하죠(?) 플로리다 의 한 비행학교 에선 머스탱 한 시간 태워주고 4,000$ ( 5 백만원 돈)남짓 밭나본데 좀 심하다 생각도 들지만 또한 여기 사람들 생일 선물로 밭아 타고나서 life time experience 하고 호들갑(?) 떠는거 보면 항공 문화가 우리 와는 다른거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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