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병 항공대의 근접 항공 지원 개발사 -2-

미 해병 항공대의 근접 항공 지원 개발사 -2-

 


“ 이 신개념인 공지 팀 운용 시스템은 일선에서 그 효율성을 기대 이상으로 잘 발휘하였습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해병대가 먼저 전위 부대로 급조한 1개 여단 병력을 급파했었던 낙동강 전선에서부터 공지 팀 시스템이 가동되어  전투에 활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국전쟁 발발 후인 9월 7일부터 10월 9일 사이,제 1 해병 사단을 지원하던 4개 전투기 대대와 2 개의 야간 전투기 대대는 많은 전투 출격을 하였었다. 아놀드 A.룬드 소령이 지휘하는 VMF 데쓰 래틀러[DEATH RATTLER] 대대가 가장 많은 전투 출격을 하였다. 공식 기록에 의하면 이 기간 그의 대대는 무려 784 회를 출격하였었다. 

                                       

 [대지 공격용 로켓탄을 날개에 장착한 콜세어 기]


태평양 전쟁 후에 이 대대는 해체될 뻔했었다. 전투기들은 전부 전투기 보관소로 보내지고 조종사들은 다른 부대로 전출을 준비하고 있을 때 한국 전쟁이 발발했다. 덕분에 대대는 마지막 순간에 기사회생할 수가 있었다. 대대는 짧은 시간에 쫓기면서 급하게 전투 태세를 다시 갖추었다.

 

인천 -서울 탈환 작전 기간 이 비행 대대는 동해에서 작전하던 미 해군 호위 항모 바동 스트레이트[CVE118]함을 모함으로 해서 활동했으며 정찰 임무와 전단 살포 임무도 수행했었다. 그러나 지상 지원을 했던 전투 출격이 가장 많은 출격 임무였다.


다른 정예 대대인 VMF 블랙 십 대대는 호위 항모 시시리 [CVE1180]함에서 출격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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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위 항모는 정규 항모에 비해 길이는 절반, 총톤 수는 1/3의 작은 규모로서 대개 7,000-15,000톤의 크기였다. 항공기는 20-50기 정도를 적재했었다. 호외 항모는 단기간에 다량 건조할 수가 있었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중에 건조했던 항모 151척 중에서 122척이 건조하기 빠르고 쉬운 호위 항모였었다.

                    


호위 항모, 바동 스트레이트


호위 항모 바동 스트레이츠 함은 전설적인 조종사 출신 해군 대령 존 S. 태치 대령이 지휘했었다. 그는 1941년 유명한 태치 위브[Thatch,s weave] 전투기  공중 전법을 개발하여서 F4F 와일드캣이 더 기동성 좋은 제로기를 상대로 큰 성과를 올리게 했었다.


태치 위브는 두 기의 전투가 나란히 날면서 수시로 가위처럼 날며 동료(同僚)기의 후미를 교대로 엄호해주는 공중전 기법이다. 



[태치 위브]


                                           

그는 해병 항공대가 개발한 근접 지원 전술을 크게 평가했었다. “이건 말야, 마치 보병의 어깨에 포병 포를 얹어주는 것과 같군!“ 하고 전적인 동감을 표시했었다.


태치 대령은 때로는 해병 항공대의 출격 후 실시하는 브리핑 미팅에 참석을 해서 주의 깊게 듣기도 하였었다. 해병 항공대가 거둔 근접 항공 지원의 전과가 어땠는가 하는 호기심이 강했을 것이다.

 

그는 후에 해병 항공대를 평하였다.


“그들은 정말 성실했었어. 해병 조종사들은 근접 항공 지원에 세계 최고의 프로들이야! 그저 최고의 찬사 외에 할 말이 없군!”

 


해병 항공대에 대한 극찬의 평가를 한 사람이 또 있었다. 유명한 한국전 참전 해병 1사단의 지휘관 올리버 스미스 소장이었다. 그는 서울 탈환 작전 중 그가 직접 경험했었던 해병 항공대의 근접 항공 지원을 이렇게 말하였다.


“해병 공지 팀의 활약과 그 전술 교리는 전투 중에 거둔 뛰어난 성공으로 재입증 되었습니다. 잘 은폐한 적 부대와 힘들게 싸우고 있는 해병들에게 공중의 전우가 퍼부어주는 지원은 놀랄 정도로 사기를 크게 올려주는 것이었습니다.”

 


해병 7연대 1대대 B 중대 박격포 소대장 조셉 R.오웬 중위는 자기가 다른 전장에서 북한군과 싸울 때 체험했던 근접 항공 지원의 효과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회상하는 글을 남기기도 하였다.

 

“ 상공을 선회하던 진한 청색에 뒤집힌 갈매기 날개를 가진 콜세어들 중에서 한 기가 선회를 벗어나 우리가 발사한 연막탄 표식을 향해 급강하해왔다.


날개의 전면 기관총구에서 붉은 예광탄의 줄기가 지상의 적들을 향하여 쏟아져 내렸다. 수직이다시피 급강하하던 콜세어기는 기총 세례를 마치고 능선 수 야드 상공에서 다시 기수를 들고 상공으로 솟구쳤다. 


우리는 조종석의 조종사를 볼 수가 있었고 기체에 쓰여진 대형 흰 글씨의 해병대[MARINES]라는 표식을 볼 수가 있었다.첫 기가 타격을 가하고 이탈하자 다음 콜세어가 내습했다.이 콜세어는 작은 네이팜 탄들이 들어있는 관모양의 통을 떨어뜨렸다.네이팜 통은 지상에 부딪혀 한 번 퉁겨나더니 폭발하였다.


사방으로 확 퍼진 불길은 죽음의 커튼을 만들어 북한군 진지를 휩쓸었다.북한군에서 불과 200야드 떨어진 우리는 폭발의 진동과 뜨거운 화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해병 5연대 1대대 B 중대장 보병 대위 프랜시스 I. 아이크 펜튼 주니어 대위는 금화 터널 능선 공격 때 서울 충정로 터널에 숨어있던 북한군을 섬멸해버린 해병 항공대 조종사들의 그 가공할 정확성과 정확한 공격 솜씨와 대담한 용기에 대해 칭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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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튼 대위는 서울 탈환 작전 때 최대의 격전을 겪었던 서울 스미스 능선 (안산-금화 터널- 충정 터널)의 능선]에서 전투했었으며 유명한 한국 해병대의 연희 고지도 이 능선 전투장의 한 지점이었다]에서 싸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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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 조종사들의 근접 지원 기술은 아주 놀라웠어요. 그렇지만 나는 항공대가 소이[네이팜] 탄두가 붙은 로켓탄를 개발해서 사용하였으면 합니다.이 로켓은 동굴이나 터널 속 깊숙한 곳으로 쏘아 넣어 큰 불이 나게 할 수가 있어요. 나는 대형 로켓탄인 타이니 팀 같은 것에 네이팜(燒夷)탄두를 부착할 수가 있다고 봅니다.”

 

펜튼 대위가 말한 로켓탄은 화재 발생용 로켓이다. 이 소이(燒夷)로켓 탄은 실제로 한국 전쟁 중에 개발되어 실전에 사용되었었다. 필드 해리스 소장의 제 1 해병 항공단은 역시 서울 탈환 작전에 참가했던 미 육군 7 보병 사단을 지원했었다.


항공단은 해병 항공- 해군 화력 지원 연락 장교단의 찰스 E. 크루 대위의 노력으로 57일간 아군에게 오폭으로 인한 단 한 명의 아군 피해를 내지 않고 1,024회 출격을 할 수가 있었다.이 항공 공격이 가깝게는 200야드 밖의 적군을 타격을 하는 것이라는 사실에서 볼 때 대단한 성과였었다.

 

7 사단 배속 포병 여단장 호머 W. 키이퍼 준장은 해리스 소장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해병 항공대의 공지팀이 운영하는 근접 지원 전술은 아주 이상적입니다.이 시스템은 우리 육군 항공대[당시 독립전의 공군]도 도입했으면 합니다.”

 

한국 전쟁을 거치며 미 항공부대는 제트 시대로 들어섰다.미 공군은 F-86은 소련제 MIG -15를 상대로 싸워서 전과를 올렸다.미 해병 항공대도 그러맨 사의 F-9F 팬서 제트기를 한국 전장에 데뷔시켰다.이 팬서 전투기는 한국 전쟁 중 미 해군이 사용했던 주력 전투기다.

 


[F9F 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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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초로 머큐리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선회한 존 글렌 중령은 해병 항공대 조종사로서 한국 전쟁에 참전해서 F9F 팬서 전투기를 조종하였었다.그는 조종사 교환 프로그램에 따라 미 공군에 일시 파견되어 F-86을 몰고 27회 출격해서 세 기의 미그 기를 격추한 기록을 세웠었다.그는 후에 정치에 입문하여 미 의회 상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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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Trackbacks 36 / Comments 1

  • david 2016.01.24 05:54

    The Bridge of Dockori( " 원한의 독고리 다리"란 제목으로 상영 됫다 하던데....)란 영화 에서 원산 근교의 다리를 폭격하는 항모 출격 편대가 미 해병 아니면 해군기 엿는지 모르 겟군요. 한국전 배경 영화중 수작 으로 꼽히는 영화 인데요 항모에서의 전투기 운용 장면이 실감 나게 잘 묘사 됫고 변호사로 일 하다 한국전 후 소집되어 전투기 조종사로 이역땅 에서 분투하다 함경도 땅 어디선가 공산군의 적탄에 맟아 죽어가는 마지막 장면 참 가슴 아팟 썻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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