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병 항공대의 근접 항공 지원 전술 개발사 -1-

미 해병 항공대의 근접 항공 지원 전술 개발사 -1-



학생 시절 어느 미 육군 헬리콥터 조종사와 나누었던 이야기중에 나의 뇌리에 오랫동안 남게 된 한 사실이 있었다. 근접 지원 기술에서는 미 해병대 항공대[항공단이 더 정확한 번역]가 공군이나 해군 항공대를 훨씬 앞서 있다는 내용이었다.


기억에 남았던 이유 중에 하나가 미 해병대가 독자적인 항공대를 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사람과의 대화에서 처음 알았었기 때문이었다.


 

[해병대 전투기  F -4 U 콜세어] 

 

나는 태평양 전쟁에서 활약한 미 해병대 에이스들을 진작부터 알고는 있었다. 조 포스[26기 격추]나 그레고리 ‘패피’ 보잉턴[28기 격추]이니 하는 탑 에이스들은 해병 항공대 조종사들이었으나 얇은 지식 밖에 없었던 나는 이들이 해병대에 배속된 해군 항공대 조종사들로 오인했었다.


미 해병대의 위명[威名]은 자주 들어왔었지만 해병대가 항공대[정확히 말하면 해병 항공대-US Marine Aviation Corps-]까지 독자적으로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현재의 미 해병 항공대의 크기는 어지간한 중진국의 공군과 맞먹는 규모를 가지고 있다. 미 해병 항공대는 1912년 창설되었다. 항공기의 역사와 거의 같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가 있을 것이다. 1, 2차 대전에서 활약을 했으며 한국 전쟁과 중동의 여러 전투에서도 참전하였다. 한국 전쟁 중에 미 해병대가 근접 지원용으로 운용했었던 F4U 콜세어 전투기는 우리 국방사에 기록해 둘만한 큰 공적을 쌓았다.

 


[초창기 해병대 비행정 커티스 S-3]


한국 전쟁 후에 미 해병 항공대는 완전히 제트 시대로 탈바꿈해서 미 공군이나 해군과 같은 첨단 항공기를 운용했었다. F4 팬텀이나 F/A-18 호넷을 사용하기도 했었고 미 공군이나 해군에는 없었던 영국제 수직 이착륙기 해리어 기의 미국 생산형인 AV-8을 운용하기도 하였었다. 

 

현재 최신형기 F-35B형 340기를 발주한 상태로서 해병대는 미래에 이 스텔스 전투기들로 막강한 파워를 가지게 될 것이다. 

 

내가 학생 시절 들었던 해병 항공대가 근접 지원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장진호 전투에 참전했던 중공군의 전쟁 수기에서 확인할 수가 있었다.

 

장진호 전역 참가 종군자의 수기에는 장진호 전역에 참전해서 경험했었던 여러 고통스런 전투들이 많이 나오지만 특히 공중에서 가해졌던 공격에 대한 공포스런 경험들이 잘 소개되어 있다.


미 전투기들이 어찌나 극성을 부리며 공격을 해대는지 장진호 전역에 동원 된 중공군들은 전투보다도 숨기에 더 전전긍긍했었다는 이야기였다.그의 글은 미군 전투기들은 중공군들에게 공포 그 자체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철수하는 해병들을 네이팜 폭격으로 지원하는 콜세어기]


간접적이지만 중공군으로부터 다른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또 있었다. 한 중국 동포는 중공군에 입대하여 장진호 전투에 참전했었던 자기 집안 어른이 말하기를 미군 전투기들이 여름 철의 고추 잠자리 떼처럼 까맣게 하늘을 뒤덮고서 미 해병대를 엄호해주어 주간에는 해병대에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 신기에 가까웠던 미 해병대의 근접 항공 지원 기술이 태평양 전쟁 후 탄생하였고 한국 전쟁에서 최초로 시도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미국 해병 항공대 전사가의 글을 아래에 소개한다.


미 해병 항공대 지휘관이었던 로버트 켈러 중장은 해병 항공대의 근접 지원에 대해서 말했었다.

“현대 해병들의 공지 팀 개념은 한국 전쟁 때 탄생 되었습니다."

 

켈러 중장은 한국 전쟁 중인 1950년 9월 25일, 서울 상공에서 해병 항공 VMF-21 블랙 십[black sheep] 비행대대의 대대장 왈터 E.리스치드 중령이 북한군의 대공 사격에 전사한 뒤에 이 유명한 대대의 후임 대대장를 역임했었던 인물이었다. 불랙 쉽 비행대대 : 에이스 그레고리 보잉튼이 대대장이었던 해병 VMA-214 공격 대대의 별칭으로1970년대 TV 연속극 타이틀로 유명해졌다. 태평양 쟁 중 북부 솔로몬 전역에서도 전투기 대대장으로 활약했던 오랜 전투 경험의 배경을 가진 그는 한국 전쟁 중에 해병 항공대의 공지 팀의 근접 항공 지원 개념이 실용화되었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고 있다. 

 

태평양 전쟁의 페레이우, 이오지마, 그리고 오키나와 작전에서 해병들은 항공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었다. 그러나 당시 육상의 해병대가 받았던 근접 항공 지원은 한국전쟁에서 보여준 정교함과 정확함에서 뒤떨어진 것이었다. 

 

1950년 한국 전쟁 첫 넉 달간 1 해병사단의 항공단이 낙동강 전선과 서울- 인천 작전, 그리고 장진호 전투에서 발휘했었던 근접 항공 지원의 전공은 역사에서 찾아보기가 힘든 것이었다. 


해병 항공대의 노만 앤더슨 소장은 한국 전쟁중의 달성한 근접 항공 지원 성공은 이 짧은 기간에 해병 조종사들과 보병 장교들의 헌신적인 노력의 덕분이라고 평했었다. 

 

해병 항공대는 태평양 전쟁 후반에 들어서면서 귀중한 경험들이 다량 축적되었고 태평양 전쟁 후 축적된 이 경험들을 조종사들과 육상 부대 간부들이 분석과 조사를 거듭한 끝에 지휘체계를 단일화한 공지 팀 운용의 시스템을 추출해냈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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