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영웅이야기]6·25전쟁 당시 육탄공격으로 용맹을 떨친 심일 육군 소령

6·25전쟁 당시 육탄공격으로 용맹을 떨친 심일 육군 소령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必生則死), 죽기를 각오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고작 13척이라는 전선과 군사로 왜선 133척과 맞서야하는 명랑대첩을 앞두고 명장 이순신 장군이 남긴 유명한 명언입니다. 적군의 월등한 수적 우세에 죽음과 맞서야하는 두려움 앞에 떨고 있는 장수들을 향해 장군이 보여준 비장한 결의는 전의를 불태웠고, 불가능해 보였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한국전쟁 발발 당일에도 ‘필사즉생 필생즉사’의 각오로 앞서 전진으로 뛰어들며 전우들의 전의를 불태운 영웅이 있습니다. 바로 수류탄과 화염병을 들고 북한군의 전차 포탑 위로 돌진하는 육탄공격을 감행하여 적 전차를 격파한 심일 육군 소령입니다. 당시 구경조차 하지 못했던 북한군의 전차를 보고 극한 두려움에 떨고 있던 아군들에게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영웅적인 면모를 보여주며 용기를 불어넣어준 심일 육군 소령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6·25전쟁 발발 당일 

아군이 한강 방어선을 구축하도록 공헌한 ‘춘천-홍천 전투’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경, 북한군이 서해안의 옹진반도로부터 동해안에 이르는 38선 전역에 걸쳐 국군의 방어 진지에 기습 공격을 하면서 6․25전쟁이 발발했습니다. 북한군은 7개 보병사단, 1개 기갑사단, 수개의 특수 독립연대로 구성된 총병력 11만 1000명과 1,610문의 각종 포, 그리고 280여 대의 전차 및 자주포 등을 제일선에 동시에 투입했습니다. 



▲춘천지구전투 당시 심일 소위가 북한군 자주포를 격파한 M1 57㎜ 대전차포

(사진 출처: 국방 일보)


북한군 제1군단 예하 1·6사단은 105전차여단의 203전차연대와 206기계화연대의 지원 하에 개성에서 서울로 공격하고, 주공 부대인 북한군 제3·4사단과 제105전차여단은 각각 연천·철원 일대에서 의정부를 거쳐 서울로 공격해 왔습니다. 그리고 북한군 제 2군단은 춘천과 홍천을 점령한 후 수도권 외곽에 거대한 포위망을 구축하여 국군 주력을 섬멸할 계획으로 남진합니다. 


그러나 춘천과 홍천 일대에서 특공조를 편성하여 화염병과 폭약을 가지고 육탄으로 적 전차를 파괴해 아군의 전의를 높이고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한 심일 육군 소령의 활약으로 북한군 제2군단의 기도는 차질을 빚게 됩니다. 위용을 과시하는 적 전차를 향해 망설임 없이 돌진한 심일 소령의 용맹함은 아군 제6사단의 본보기가 되었고, 춘천을 2일씩이나 방어할 수 있도록 저력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아군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꾼, 심일 육군 소령의 육탄공격   

1923년 함경남도 단천(端川)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 재학 중이던 1948년,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하여 1949년 5월, 육사 8기로 임관한 심일 소령은 6·25전쟁이 일어난 당시 6사단 7연대 대전차포중대 2소대장으로 복무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중위였던 그는 남하하는 북한군의 SU-76자주포가 아군의 대전차포를 맞고도 포탄 세례를 퍼부으며 계속 전진해오자, 특공대를 편성하여 수류탄과 화염병을 들고 적의 포탑 위로 돌진합니다. 



▲심일 육군 소령  (사진 출처: 국방 일보)


전쟁을 도발한 북한은 막강한 화력과 전차를 앞세우고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해 온 반면, 전차를 구경조차 못했던 아군은 적 전차에 극도의 두려움을 갖고 있던 때, 심일 중위는 오로지 5명으로만 편성한 특공대를 이끌고 육탄공격을 감행하여 적 전차 2대를 격파하는 용맹을 보여줍니다. 


심일 중위의 영웅적인 면모와 전공은 삽시간에 전 군에 전파되었고, 북한군 전차와 자주포에 대한 아군의 공포심을 제거하여 모든 전선에서 육탄공격으로 적의 전차를 파괴하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무섭게 진격하던 북한군의 기세를 꺾고 춘천을 2일간이나 지연방어 함으로써 아군이 한강 방어선을 구축하고 유엔군이 참전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강원도 원주시 태장동 현충공원에 있는 ‘심일 소령 동상’ 

(사진 출처: 국방 일보)


이후 심일 중위는 대위로 1계급 특진되어 7사단 수색 중대장으로서 충북 음성지역 전투, 경북 영천 304고지전투 등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웁니다. 그러나 아군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며 전장에서 용맹함을 떨치던 그는 1951년 1월 26일 강원도 영월지역 전투에서 적의 총격을 받아 끝내 장렬히 산화했습니다. 정부는 그해 10월, 고인에게 위관급 장교로는 최초로 태극무공훈장과 함께 소령 특진을 추서했습니다. 


육군에서는 2002년 ‘심일상’을 제정하여 고인의 용기와 군인정신을 기리고 있으며, 2012년 1월 5일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는 유족과 육군 등 유관 단체 주요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고인을 추모하는 현양 행사를 거행하기도 했습니다. 



▲102보충대 내 심일 공원에서 개최된 故심일 소령과 육탄 5용사에 대한 추모식

(사진 출처: 국방 일보)


심일 육군 소령이 활약했던 ‘춘천-홍천 전투’는 6·25전쟁 발발 당시 북한군의 남침 속도를 저지해 북한군이 국군을 포위섬멸하려는 계획을 좌절시키고 전황에 큰 영향을 끼친 전투입니다. 만일 한국전쟁 발발 당시 북한군의 남진을 막지 못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심일 육군 소령을 비롯하여 온몸을 바쳐 사지(死地)로 뛰어들어 나라를 지켜낸 호국병사들의 용기와 희생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충성!




 

Trackbacks 0 / Comments 6

  • 조선일보 2016 6 17 2016.06.17 12:43

    심일 소령 영웅담은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어요

  • 한우리에9 2016.06.19 22:32

    [최보식 칼럼] 北 탱크를 부순 '호국 영웅'의 불편한 진실 2016.06.17 | 조선일보 | 다음뉴스 '빗발치는 포화 속에서 육탄 돌격으로 북한군 탱크를 부순' 고(故) 심일 소령은 6·25 호국 영웅 중 맨 첫 줄에 있다. 태릉 육사 교정과 원주 현충공원 등...
    이 기사에 대해 육군에서는 삐른시간내 그 진위여부를 밝히고 육군의 입장 표명은 물론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할 것입니다

  • 슈냥 2016.09.13 07:55

    전쟁터에서 자주포를 북한군에게 넘겨주고 부랴부랴 도망간 심일이 전쟁영웅이라니...글쓴이는 북한군이십니까?

  • ksim6880 2017.01.29 21:05

    잘못알고 계신 분을 위해 한마디 적겠습니다. 이대용 공사는 1951년 5월에 제6사단 7연대장 등 간부들이 심일의 부모를 위로하기 위해 심일의 태극무공훈장 상신 공적을 조작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국방부 심일공적확인위원회가 조사과정에서 처음 확인하게 된 심일의 '태극무공훈장' 상신서는 이미 1950년 11월에 공적 내용이 작성되어, 사단-군단-육군-국방부로 올라가며 심의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대용공사가 말한 시점보다 6개월전의 일입니다. 이것으로보면 조작되었다는 주장이 오히려 조작된 것이 틀림없습니다.

  • Favicon of https://www.aby544.net TFav 2020.07.08 06:38

    좋은 자료입니다.

  • Favicon of https://www.dpp855.com wuVg 2020.07.08 06:39

    좋은 하루 되세요~ 좋은정보입

댓글 남기기

블로그 인기 키워드

Tistory Cumulus Flash tag cloud by requires Flash Player 9 or better.

링크

re_footerlink.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