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철교에 숨어 있는 軍史 [ 끝 ] 묵묵히 역사를 지켜 본 증인

한강철교에 숨어 있는 軍史 [ 끝 ] 묵묵히 역사를 지켜 본 증인


일단 강에 부교를 설치하였지만 용량이 부족하고 무거운 장비를 신속히 도하시키는데 문제가 많았다. 결국 한강철교 응급 복구에 나서 1950년 10월 19일, 미 제62공병단이 가설재로 제작한 임시 철교가 용산과 노량진 사이에 놓임으로써 4개월 만에 한강을 가로 질러 다시 열차가 운행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38선 이북으로 진격하여 적을 격멸하고 통일을 달성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였다.



[ 대통령도 참석한 임시 철교의 개통식 모습 (1950년 10월 19일) ] 


하지만 그러한 즐거운 상상도 얼마안가 일장춘몽으로 바뀌었다. 중공군의 참전으로 순식간 전세가 역전 당하였고 1951년 1월 4일, 아군은 수도 서울을 다시 적에게 내주고 한강을 건너 남쪽으로 후퇴하여야 했다. 이때 다시 한 번 한강에는 가설 교량들을 파괴하는 폭발음과 섬광이 울려 퍼졌다. 다만 6개월 전과 달랐던 점은 안전하게 아군과 피난민이 후퇴를 완료한 상태였다.



[ 1.4 후퇴 당시 한강에 설치된 부교의 폭파장면 ]


37도선 일대에서 전열을 재정비한 아군은 3월 14일, 서울을 재탈환하고 이후 전선은 휴전까지 현재의 DMZ 일대에서 소강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 전선이 안정된 1951년에 다시 한강에 임시 철교가 놓이게 되는데, 이 철교는 미 제453건설공병단에 의해 제작되어 전쟁이 일어난 지 거의 1년만인 1951년 6월 12일 밴 플리트 미 8군 사령관을 비롯한 군고위층이 참석한 가운데 개통하여 이듬해 7월 A, B교가 가복구되기 전까지 사용되었다.

 


[ 미 8군 사령관이 참석한 1951월 6월 12일 임시 교량 개통식 ]

 

지난 110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키며 함께 하였던 한강철교의 역사에서 1950년은 가장 잔혹하였던 시기였다. 을축대홍수같은 불가항력적인 천재나 부실공사와 같은 창피스런 인재가 아닌 고의에 의해 살려달라는 수많은 민초들의 비명과 함께 다리가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전쟁 기간 중 군용목적을 위하여 파과와 복구가 반복되었지만 전선이 소강상태가 된 이후 다시 일상을 위해 열차는 달려야 했고 철교도 보강되어야 했다.



[ 1952월 7월 22일 A교 개통식 ]


C교가 1957년 7월 완전 복구되었고 그 동안 가복구되어 임시적으로 사용하던 A교는 사용이 중지되었다. 이후 A, B교가 완전 복구되어 전쟁 이전의 상태로 한강철교들이 본 모습을 다시 찾게 된 것은 공교롭게도 일본과 관련이 많다. 경제발전과 더불어 물동량이 급격히 증대되어 재개통된 C교만으로 교통량을 원활히 처리하게 힘들게 되자 1966년 2월 정부는 경인선을 복선으로 확장함과 동시에 A, B교를 복구하기로 결정하였다.



[ 하늘에서 바라다 본 한강철교의 모습으로 A교만 연결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이 때 복구사업에 투입 된 자금이 대일청구권 제1차 차관에 의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일제의 한국 지배와 관련한 피의 대가였는데, 이 돈으로 한강철교 A, B교의 복구를 1967년 8월 착공하여 전쟁으로 파괴된 지 19년만인 1969년 6월 경인선의 복선개통과 함께 완전 복구시켰고 이후 1995년 경인선의 복복선 재 확장과 함께 D교가 만들어져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 최근 한강철교 C, D교의 모습으로 수도권전철과 KTX를 비롯한 국철이 사용한다 ]


지난 세기는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를 거친 격랑기였다. 한강철교는 파란만장한 이 시기의 개막점인 1900년에 탄생하여 아직까지 그 자리를 묵묵히 지켜 왔다. 국권 침탈기에는 제국주의 침략자의 수탈과 침략의 통로로써 사용되었고, 동족상잔의 비극기에는 많은 이들이 피눈물을 흘린 장소다. 다리의 목적은 탄생 때부터 지금까지 똑같지만 비극적인 수단으로 이용한 것은 사람이었다.

 


[ 1899년 건설 중에 있던 한강철교의 모습 ]


현재 4개 철교를 이용하여 하루 1,300여회의 열차가 한강을 건너다니고 있다. 그 만큼 현재의 한강철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단순한 교통로라는 의미로 다가 올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잊고 있었음에도 한강철교는 지난 시대의 아픔을 직접 겪고 지켜 본 몇 안 돼는 건축물이다. 우리는 제대로 생각하고 있지 않지만 마치 지나간 어려움을 자식들에 굳이 내색하지 않으려는 아버지처럼 한강철교는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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