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철교에 숨어 있는 軍史 [ 4 ] 해방, 분단 그리고 비극

한강철교에 숨어 있는 軍史 [ 4 ] 해방, 분단 그리고 비극


1945년 8월 15일 드디어 일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이 되었다. 그 동안 일제의 침탈 도구로 이용되던 철도는 해방이후 우리 사회의 주요 사회간접자본으로 남게 되어 고속도로가 뚫리기 시작한 1970년대 이전까지 유일한 혈맥 노릇을 하였다. 이처럼 신생 대한민국의 기간 교통망으로 거듭난 한국의 철도와 그 중심 표상인 한강철교는 수탈과 착취가 아닌 국민과 나라의 발전을 위한 진정한 도구로써 사용되게 되었다.



[ 질곡의 터널을 지나 해방의 날을 맞았다 ]


그러나 이런 행복한 시간도 얼마가지 않아 비극을 상징적으로 알려주는 흉물로 변하게 되었다. 바로 1950년 6월 28일 새벽 2시 30분에 있었던 한강철교, 인도교 폭파 사건이다. 전쟁 개시 3일 만에 서울이 적에게 함락되자 상당수의 아군과 장비 그리고 민간인을 서울에 놔둔 체 다리를 폭파시켰다. 통제도 안한 상태에서 벌어진 폭파로 인하여 후퇴 중인 군경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름 모를 민초들도 희생되었다.



[ 폭파 된 한강철교의 모습 ]


후퇴하는 부대가 적의 진격을 막거나 늦추기 위해 교량이나 주요 교통 시설물을 자의로 파괴하는 것은 오래전부터 시도된 전술이다. 6.25전쟁 초기 한강교량은 한강의 남북을 유일하게 연결하는 전략시설물이었으므로 국군이 이를 파괴한 것은 일견 타당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교량 폭파의 방법과 효과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당시 정부의 무책임이었다.



[ 1.4후퇴 당시 파괴된 인도교와 철교 부근으로 도강하는 시민들 ]


국가를 앞서서 보위할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들은 제일 먼저 다리를 이용하여 줄행랑쳤다. 오히려 국군이 선전하여 38선 너머로 공산군을 격퇴시키고 있다는 거짓 방송을 계속 틀어 놓음으로써 시민들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마저 박탈시켰다. 더구나 다리를 폭파 시킬 당시에도 시민들의 통행을 제한하지 않고 기습적으로 폭파시켜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의 생목숨을 빼앗아 버렸다.



[ 폭파에 실패한 철교를 이용하여 도강하는 북한군 ]


북한군이 서울 점령 후 국군에 대한 추격을 멈추고 3일간 지체하였던 미스터리한 이유를 이전에는 이런 희생을 감수하며 시도한 한강다리 폭파를 이유로 들고는 했지만 현재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우선 북한군이 나름대로 도강 장비가 있어 한강을 건너는데 그리 문제가 없었다는 사실이었고 실제로 당시 북한군 6사단은 이미 한강을 건너 김포로 진입하여 시흥방면으로 진격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 1950년 6월 30일 파괴되지 않은 교량을 폭격하는 모습 ]


그 보다 확실한 증거는 한강철교, 인도교 폭파작전 당시 한강 철교 C교와 인도교 폭파는 성공하였지만 철교 A교와 B교는 폭파에 실패하였던 점이다. 다시 말해 북한군이 마음만 먹었다면 탱크를 몰고 한강을 도하할 통로가 있었고 실제로 이후 공격을 재개할 때 이곳으로 전차부대들이 통과하였다. 이들 A, B교가 완전히 파괴되어 통행이 막힌 것은 이후 UN군의 공습에 의해서였다.



[ 서울 수복 직전 파괴된 한강교량을 경계하는 미 해병1사단 ] 


이처럼 후퇴 시에는 후세의 사가들로부터 두고두고 비난을 받을 만큼 너무나 안이하게 제대로 된 대책도 수립하지 않고 한강의 교량을 서둘러 폭파시켰고 더구나 효과도 제대로 얻지 못하였다. 하지만 반대로 아군의 반격이 개시되자 끓어진 한강의 다리들은 아군의 진격을 더디게 하는 장해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서울을 수복하여 38선 이북으로 진격을 준비하는 아군에게 다리의 복구가 시급하여졌다.



[ 부교를 이용하여 장비와 병력을 도강시키는 모습 ]


1950년 9월말까지 UN군의 보급로는 상당히 한정되어 있었다. 우선 철도는 단기간 복구가 힘들 정도로 파괴되었고 경부간 국도는 지도에 길이 표기되어는 있지만 시골의 소작로 수준에 불과하였다. 이런 길을 이용하여 부산에서 38선 인근까지 보급물품을 올리기는 힘들었다. 따라서 UN군은 인천항에 물품을 하역하여 육로로 보급품을 전선으로 보내는 루트를 애용하였는데 한강이북으로 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한강을 도강하여야 했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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