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어뢰정과 일 발동정의 대결-3-

미 어뢰정과 일 발동정의 대결 -3-


- 뉴 조지아 전투

 

히긴스 사는 미 해병들이 상륙 작전에 대량으로 사용하던 히긴스 보트를 만든 회사였다. 히긴스 사의 어뢰정들은 주로 유럽 전선에 투입되었고 엘코 사의 어뢰정들은 태평양 전선에 투입되었다. 


군 역사가들에게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미 케네디 대통령이 정장이었던 PT -109는 바로 엘코 사가 진수시킨 어뢰정이었다. 이 엘코 어뢰정[PT-Patrol Torpedo의 약자]은 한국 해군에도 도입되어 한국 전쟁 중에 활약하기도 했었다. 헉킨스 요트 조선소는 단지 18척의 어뢰정만 건조하였고 이 어뢰정들은 실전에 투입되지 않았다.

 


[영국 어뢰정을 카피한 엘코 사의 PT-10]


뉴 조지아 상륙 작전에 투입된 어뢰정은 엘코 사 제품이다. 이 어뢰정은 길이 80 피트에 3기의 12기통 팩카드 엔진으로 가동하였다. 이 엔진은 비행기 엔진을 해양 선박용으로 개조한 것이었다. 연료로 항공유를 사용하였는데 연료 소모율이 대단히 높아서 각 엔진들은 시간당 66 갤런의 연료를 사용하였다. 최고 속도인 42노트에서는 엔진당 166갤런의 휘발유를 소비하였다. 어뢰정들은 3,000갤런의 연료를 싣고도 6시간에서 12시간 밖에 달리지 못했다.

 

엘코 사의 어뢰정들의 선체는 이중의 마호가니 합판 사이에 항공기에 사용하는 섬유들을 채워 넣고 접착제로 고정시킨 것이다. 조타실과 총탑은 철갑으로 보호되고 있지만 적의 기관총탄들이 명중하면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飛散]할 수가 있었다. 전체적으로 말해서 개인화기의 총탄에는 그런대로 방탄 기능을 가지고 있었으나 적 함정이나 항공기에서 날리는 포탄이나 기관포탄에는 매우 취약한 허점이 있었다.

 

하지만 그 크기에 비하면 어뢰정은 해군의 어느 수상함보다도 강력한 무장을 하고 있었다. 초기 어뢰정은 네 발의 어뢰 외에 쌍렬의 50 기관총탑 두 기를 장비했었다. 후기 형은 함수에 20mm 기관포가 증설되었다.


일본 발동정들과의 전투에서 어뢰정들이 가진 취약점은 주요 무기인 어뢰를 사용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말 한 바대로 일본 발동정들은 홀수선이 아주 낮아서 단지 1.5미터 밖에 되지 않았고 어뢰의 최소 운행 깊이는 3미터였었기 때문에 쏴 봤자 발동정 밑으로 통과해버렸다.  

 


[PT -105]

 

그래서 일본 발동정을 잡을 화력을 증가시킬 방법이 본토에서 연구되고 있는 동안 일선의 어뢰정 승조원들은 자기 나름의 노력으로 이를 해결할 방법들을 찾았다. 그 예로서 PT 109 정장 케네디 중위는 37mm 포를 어뢰정 우현에 설치했었다.


많은 어뢰정들이 불시착하거나 추락한 P-39 전투기들의 37mm 기관포를 떼어서 갑판에 설치했었다. 세 척의 어뢰정들은 어뢰 발사관들과 폭뢰들을 모두 제거하고 여기에 40mm 기관포를 달고 가벼워진 함체에 장갑을 두르기도 하였다.

               


[미군이 나포한 발동정]

 

뉴 조지아 섬의 전투에서 승선 보병 전투요원으로서 적 발동정을 상대도 전투를 하다가 산화한 미군의 일화를 소개한다. 롱 아이랜드 주의 해변에서 자랐던 George R.Wagner와 동생 빌은 해양 소년단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등 평소 해양활동에 관심이 많았었다.


1940년 형제는 해군에 입대하기로 하였다. 아직 입대 나이가 아니었던 동생 빌은 할머니의 승낙서를 제출하고 해군에 들어갔다. 해군에 입대한 빌은 전함 워싱턴에서 근무하였다. 빌이 승함한 전함 워싱턴은 과달카날 근해에서 있었던 야전에서 일본 전함 기리시마를 격침시키는 전공을 세우기도 했던 전함이었다.


그의 형 조지는 약한 시력 때문에 해군 지원에 실패해서 민간에 남아 있다가 1년 뒤인 1941년 1월에 육군에 들어가서 자동 소총[BAR]사수가 되었다

 

그가 배속된 사단은 과달카날, 조지아와 필리핀에서 싸우게 될 25사단, 트로피칼 라이트닝 -열대의 번개 -사단이었다. 뉴 조지아에 전개된 조지와 그의 자동 소총 사수들은 어느 날 해안에 접안한 어뢰정에 승선해서 자동화기로 화력 지원을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보병의 자동소총[BAR]]

 

그의 임무는 해군을 지원하여 뉴 조지아와 인근 코롬방가라 섬의 일본군 거점 사이를 오가며 병력과 군수물자를 운반하는 발동정들을 격멸하는 것이었다. 일본군의 발동정 부대들은 주간에는 해변의 망그로브 숲에 숨어 있다가 밤에만 운항하였다. 발동정의 조타실과 기관실은 방탄 장갑으로 보호되어 있었다. 통상 두 정의 기관총을 싣고 다녔으나 접적 기회가 빈번한 해역에서는 47mm 대전차 포를 추가로 무장하기도 하였다.

 


[뉴 조지아 섬 작전도] 


목제의 미 해군 어뢰정들에게는 발동정들이 수송하는 병력들이 가진 소총과 공용화기들도 위험한 존재들이었다. 이들 기본 화력에 더해서 일본군들이 해안선에 은밀히 건설한 포대와 발동정들을 엄호하는 일본 해군의 수상 비행기들도 역시 어뢰정들에게 위협적인 존재였엇다. 


어뢰정들 중에 레이더가 있는 배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색적(索敵)임무는 시각에 의존하고 있었다. 야간에 눈으로 해안의 컴컴한 배경을 목적으로 은밀하게 움직이는 일본 발동정들을 발견하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미군 야간 정찰기가 가끔 발동정들을 발견하고 어뢰정들을 유도하는 일도 있었다. 


뉴 조지아 섬의 해변에서 어뢰정에 올라탄 보병들은 어둠 속에서 어뢰정이 해변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자 뱃전에 붙어서 사주 경계를 하였다. 

 

조지는 BAR을 뱃전에 거치하고 경계태세에 들어갔다. 보병들의 화기는 일본 철제 발동정에게 별다른 위해를 주기는 힘들다. 그러나 그들이 퍼붓는 자동화기의 화력은 발동정에 승선한 일본 보병들의 머리를 들지 못하게 하여서 그들의 화기 사용을 저지하는 예방의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 사이 어뢰정들은 발동정의 취약 급소인 후미로 돌아 처리할 수가 있었다.

 

발동정들이 어뢰정에게 발각되면 밤바다는 요란한 총성과 함께 불꽃으로 점멸하곤 했다. 미 해군 어뢰정과 육군 병사들의 자동화기가 불을 뿜으면 일본 발동정도 치열하게 응사했었다. 어둠 속에서 어뢰정들과 발동정들은 단지 20미터의 간격을 두고 접전할 때도 있었다.

 

응전하는 일본군은 발동정의 철판 뱃전의 엄호되어 사격을 해댔고 어뢰정들은 우세한 기동력과 더 얕은 곳으로 드나들 수 있는 융통성으로 우세한 위치를 선점하며 사격을 했다. 


전투는 순식간에 결판이 났다. 대부분 일본군 발동정들이 대파되거나 격침되는 것이 통상적인 결과였었다.


1943년 7월 21일부터 8월 말까지 뉴 조지아 일대에서 작전하던 52척의 어뢰정들은 약 100척의 발동정들과 조우하여 그 중 15척을 격침시키고 22척을 대파시켰다. 어뢰정들의 활약은 발동정 격침 숫자 같은 표면적인 전과보다도 보이지 않은 이면에서 대단한 수확을 거두었다. 

 

뉴 조지아 섬의 일본군 공급선을 차단함으로서 육상의 해병들과 육군들이 힘들이지 않고 적을 격파하며 전진해나갈 수가 있었다. 어뢰정에 승선해서 자동소총으로 적과 해상 전투를 전개하던 육군 보병 죠오지는 어느 치열한 해전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한때 해군에 지원했다가 시력 때문에 입대를 거부당해 육군으로 갔었던 젊은이가 이 해전 중에서도 가장 치열한 해상 육박전에서 전사했던 것은 참 아이러니라고 하겠다. 뉴 조지아 섬에서 해군 어뢰정에 승함하여 싸운 육군 병사들의 무공이 공식 태평양 전사에는 기록 된 것은 없다. 위의 이야기는 아들이 아버지의 무공을 찾아서 조사를 하고 얻은 자료로서 기록에 남긴 것이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Trackbacks 63 / Comments 1

  • 팔성 2016.04.26 12:07

    저 BAR을 한국군은 기관총으로 오인해서 "고지에 기관총 몇정 배치"라는 식으로 보고하여 본부에서는 그걸 믿고 방어대책을 세우다가 중공군에게 번번히 뚫렸죠. 총신이 과열되면 총알이 나가지 않고... 장탄수도 적어서 좀 포지션이 애매했던. 무겁기는 아주 무겁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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