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쟁 중 어머니들의 투쟁 -2-

한국 전쟁 중 어머니들의 투쟁 -2-


- 죽음, 절망, 노력. 좌절, 인내, 생존



[역시 도시의 어머니와 아들] 

아이의 저 머리는 상고머리라는 것으로서 도시 아이들이 많이 하던 전형적인 헤어스타일이었다.



[다 커도 아들은 아들] 

추운 날씨에 출정하는 아들을 만나 더운 물을 마시게 해주는 어머니. 지금은 볼 수 없는 바가지가 눈에 띈다. 어머니의 눈길에 안타까움과 근심이 서려있다. 전선에 가면 한 줌의 재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으니 아들을 떠나 보내는 그 심정인들 오죽하겠는가 ?


​아들의 모자에 계급장이 없는데...... 혹시 이것이 큰 물의를 빚은 제2 국민병 사건의 부대가 아닐지 모르겠다. 일부 모리배의 농간으로 많은 젊은이가 굶어 죽고 얼어 죽었는데......




시골에 분유가 없던 시절 어머니는 수유의 이중고를 격어야 했다. 자신이 잘 먹지 않으면 젖도 안 나오니 배고픈 자기도 괴롭지만 젖 못 먹이는 미안함에 고통을 겪어야 했다.




전쟁 중 피난길을 가는 한국의 어머니가 겪어야 했었던 육체적 고통을 보여준다. 아이를 업고 머리에 인 짐을 지고 땡볕에 먼 길을 걷는 것은 슈퍼맨의 인내와 노력이 필요했었다. 전쟁 중 이 땅의 어머니들은 이 중노동을 다 해냈다.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말을 남긴 마가렛 히긴스 기자가 1951년에 호남 지방을 방문하여 취재한 사진으로 공비들의 매복에 전사한 박남기라는 경찰의 집을 직접 방문하여 장례식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슬픔이 보는 이로 하여금 눈물을 머금게 한다.​




부모가 죽으면 산에다 묻고 남편이 죽으면 머리에 묻고 아들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데 이 이별의 장면을 보면 절절히 공감이 가는 말이다.



북한 정권의 악의에 의해 자녀들과 이별하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들, 자식들을 지켜내기 위해서 피나는 혈투를 벌이는 엄마들은 그래도 운이 좋다고 하겠다. 군경의 아내와 자식이라는 단순 이유로 무수히 학살당했었고 기독교인이나 부자 출신의 불순 계급으로 학살을 당한 어머니들의 비극은 어떻게 표현할 수가 있을까?


​북한이 예비로 구속해놓았다가 유엔군이 북진하자 함흥에서 대규모의 학살이 있었다. 이때 대수롭지도 않은 일로 끌려가서 이렇게 학살당한 사람들이 만여명이 넘었었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Trackbacks 0 / Comments 2

  • 김태우 2016.05.20 16:43

    정말 비참함에 몸이 떨린다
    강해야지 이런 비극이 없을것 같다 ㅠ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kysfs2777 27사 2016.07.14 23:16

    이러면서 자생빨갱이들은 보도연맹 학살했다고 연막을 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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