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해군의 양자강 전투 -2-

영국 해군의 양자강 전투 -2-

 

애머시스트는 浮上(부상)을 위해서 함의 무거운 짐들을 전부 강에 버리는 노력을 거듭한 결과 4월 21일 자정이 조금 지나 좌초에서 벗어나 다시 떠오를 수가 있었다.

 

[양자강- 하류 둥근 지역이 난징과 샹하이 사이의 사건 발생 지역.]


애머시스트는 겨우 엔진을 살려 상류 쪽으로 짧은 거리를 이동했다. 이후 난징의 영국 대사관 차석 무관 존 케란스 중령이 비행정으로 현장에 날아와 강변 육지로 피신한 부상자를 포함한 수병들을 만나 이들의 후송 처리를 마무리해놓고 승함해서 함의 지휘를 맡았다. 

 


[양자강에 내린 영국공군 쇼트 선더랜드 수륙양용기]


애머시스트는 몇 차례 계속 이동을 시도했으나 모택동 군의 포대는 함을 따라오며 포격을 해댔다. 함이 움직이기만 하면 포탄이 날아왔다. 결국 포격에 견디다 못한 애머시스트는 푸테위라는 곳에 닻을 내리고  정박을 했다. 

 

사건 다음 날인 21일, 애머시스트는 함대 사령부로부터 급전을 받았다.

“ 전투함 런던과 블랙 스완이 구조 임무차 급행중.이동 준비하고 대기 바람.”



[영 슬루프급 전투함 블랙 스완[1,250톤]]

* 슬루프 급은 콜벳함과 프리게이트 중간 크기의 함급이다. 이 함은 1950년 7월 2일 미 순양함 주노, 영순양함 저메이카와 함께 북한 어뢰정 3척과 다수의 수송선들을 격침한 주문진 해전에 참전했다.


순양함 런던과 슬루프함 블랙 스완이 현장에 도착했으나 모택동군의 포격은 극심하였다. 두 함에도 3명의 전사자와 14명의 전상자들이 발생해서 두 함은 급히 후퇴하였다.

 

4월 30일 영국과 협상에서 모택동군은 애머시스트가 자신들에게 먼저 포격을 가해 200여명의 군민 피해가 발생한 데 대해서 사과하고 배상하라고 강요하였다. 덧붙여서 중국에 있는 미 영 불의 무장 병력은 모두 철수하라는 억지 요구도 하였다. 먼저 사격을 하지 않았었던 영국 정부는 이를 거절하였다. 

 

애머시스트는 인질이 되고 말았다. 애머시스트는 모택동군의 감시하에 그 곳에서 무려 10주나 강제로 정박당하고 있어야 했다. 협상은 계속 되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공산 측 대표는 초기의 기본 요구를 고수하였다.


공산 측에 더 이상의 아량을 구하는 것은 무리였다. 은밀한 탈출만이 살길이었다.

 

1949년 7월 30일. 칠흑 같은 야간, 조용히 앵커를 들어올린 애머시스트는 양쪽 강안의 모택동군의 포화를 각오하고서 양자강 하구의 안전지대를 목표로 167km 거리의 탈출 질주를 시작했다.

 

애머시스트는 마침 통과하고 있던 대형 중극 여객선 걍링해방호[江陵解放号]의 뒤를 따랐다. 애머시스트는 같은 여객선처럼 위장하기 위해서 여객선 항해 규정대로 전후 마스트에 불을 밝혔다.모택동군 눈을 속이기 위한 기대감에서였다.

 

애머시스트가 움직이는 것을 눈치 챈 모택동군은 가차없이 포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들은 어둠 속에서 선두에 가던 걍린 해방호 [江陵 解放号]를 애머시스트로 오인하고 포격하여 침몰시켰다. 다수의 중국인 여객들이 영문도 모르고 사망하였다.


05:00, 강을 따라 내려 탈출하던 애머시스트는 모 택동군이 엄중하게 수비하고 있던 바오샨 포대와 우송 포대의 요새지대를 통과하게 되었다. 두 포대는 양자강을 감제하는 중요한 요새들이었다. 여기만 통과하면 안전한 양자강 하구까지는 61km만 달리면 되었다.

 

두 요새는 이따금 서치 라이트로 수면을 훑으며 감시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천만 다행으로 애머시스트는 이 마지막의 위기 순간에 발각되지 않고 무사히 통과했다.


05:25, 미리 예정되었던 영국 함대 구축함 콘코드와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콘고드는 우송 포대로부터 포격이 있으면 즉각 제압 사격을 하는 임무를 받았었다.콘코드는 이 임무를 실시하기 위해서 양자강 상류를 거슬러 올라와 유리한 위치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랑데부에 성공한 두 함은 같이 양자강을 내려왔다. 


구축함 콘코드[2545톤]      


07:15

두 함은 드디어 양자강을 완전히 벗어나왔다. 항해를 계속한 두 함은 12:00 샹하이에 가까운 새들 군도에 도착했다.두 함은 이곳에서 일시 정박하고 콩코드 함은 만신창이가 된 애머시스트에게 필요한 연료와 정비용 부품과 기타 필요한 필수품들을 건네 주었다.

 

군수품 외에 승조원들이 절대 부족한 애머시스트에도 인원 충원이 있었다.긴급 구조 조처가 완료한 두 함은 홍콩을 향하여 함수를 돌렸다.

 

다음날 두 함은 극동함대 기함 순양함 저메이카와 구축함 코잭이 접근해서 에스코트 임무를 인계 받아 애머시트트와 같이 홍콩으로 향하였다.콩코드는 이 사건에 대해 일체 함구하라는 명령을 받고 일본으로 향하였다.

 

‘양즈강 사건’으로 불려진 이 탈출은 그 후 미국에서 방영된 라디오 연속극으로서 알려졌고 후에 영국에서 영화로 만들어져 인기를 타기도 

하였다.


 [양즈 인시던트 – 양자강 사건, 1 편에 영화있음]


1957년 영국에서 명우 리차드 토드가 애머시스트의 함장 케란스로 분한 양즈강 사건은 실제 은퇴 상태였던 애머시스트가 출연하기도 했다. 엔진이 수리 블능 상태라서 자매함 매그파이가 동적인 역할은 대신하였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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