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해군의 양자강 전투 -1-

영국 해군의 양자강 전투


https://www.youtube.com/watch?v=bbdjD9jSjS8

영화 양자강 사건



중국의 국공(國共)내전이 막바지로 접어든 1949년 4월 20일. 버나드 스키너 함장이 지휘하는 영국 해군 프리게이트함 애머시스트는 샹하이를 떠나 양자강 중류의 난징[南京]를 향해 강상(江上) 항해를 하고 있었다.



* 애머시스트-Amethyst-라는 이름은 자수정(紫水晶)이라는 뜻이다. 애머시스트 함은1,350톤 크기의 프리게이트 함으로서 1943년에 취역하여 1945년 2월 20일 북대서양에서 독일 유 보트[U-1276] 한 척을 격침시키는 전과를 올린바 있었다.


애머시스트 함


애머시스트는 양자강의 중류 난징[南京]에 있는 영국 대사관과 거류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강상(江上)경계 근무 중이던 콘소트 함과 임무 교대 차 북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난징은 당시 장개석정부의 수도였었다.

 

1947년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와 모택동의 공산당 정부 사이에 국공 내전이 발발하고 양군이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승기[勝機]를 잡은 모택동 군은 1949년 양자강까지 진격해와서 난징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전전긍긍한 상황이었다.



모택동군- 내전 중에 급속도로 병력을 늘려나갔다.


* 이때 모택동군은 이미 오늘날 명칭인 중국 인민 해방군이라 칭하고 있었지만 여기서는 그냥 모택동 군, 또는 공산군으로 부르기로 한다.


양자강 -영국 군함이 습격을 받은 양자강 하류 유역[둥근 원안]


양자강을 거슬러 난징으로 올라가던 애머시스트가 육상의 모택동군 포병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것은 4월 20일 아침 08:31이었다.북쪽 강안에 포진했던 중공군은 먼저 기관총 사격을 가하고 이어서 포문을 열고 열 발의 포탄을 날렸다.

 

그 포탄들은 애머시스트 못 미친 강물에 떨어지고 말았다. 애머시스트는 그 포격을 양자강 남안에 방어선을 치고 있던 장개석군이 가하는 정기적인 교란 사격으로 판단하고 포탄 낙하 지대를 통과하기 위해서 속력을 올렸다.

 

애머시스트는 육상의 중국군들에게 잘 보이도록 양현에 영국기 유니언 잭을 걸고 빠르게 달리자 포격이 멈추었다.

 

아침 09:30,더 상류로 올라가 지앙인[江陰] 지점을 통과하던 애머시스트는 모택동군으로부터 두 번째로 연속적인 포격을 만났다.


첫 발은 함 위로 통과해버렸지만 두 번째 탄부터 함교 조타실과 엔진 실등에 명중하는 피해를 주기 시작했다.함장은 심각한 중상을 입었다. 함교의 모든 인원이 부상을 입어서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특히 조타수의 부상이 심했다


조타수가 정신을 잃고 키를 놓자 함은 좌현(左舷)쪽으로 함수를 돌리고 달리다가 강변에 좌초하고 말았다. 함이 명중되기 전 함장은 사격 명령을 내렸었다.그러나 포수가 방아쇠를 당겼으나 탄이 발사되지 않았다.한방 맞은 충격으로 사격 관제 전기 회로가 나가 버린 것이었다.


함의 부장(副長)인 조프리 L.웨스턴 중위가 부상을 입은 몸으로 지휘를 인수했으나 모택동군의 포탄들이 계속 낙하하여 함을 강타했다.왼쪽 엔진 실이 파괴되고 발전기까지 정지해버렸다. 전원이 완전히 나가기 직전에 웨스턴 중위는 사령부로 긴급 타전하였다.


‘본함 피습중, 적 포화 극심, 부상자 다수, 위치 북위31.10,동경 119.50’ 

 

그는 각 포탑의 포수들에게 수동으로 포격하도록 명령했으나 함의 기울기가 심해서 전부(前部) 포탑 두 개의 포구를 목표로 돌릴 수가 없었다. 단지 후부 포탑만이 간신히 포탑을 돌려 응사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후부 포탑도 몇 발 쏘지 못하고 모택동 포병의 반격에 명중되어 파괴되었다. 모택동 군의 포화는 점점 치열하여 애머시스트의 파괴 개소는 늘어나고 부상자도 속출하였다. 

 

공격 당한 후인 10시와 10시 30분 사이, 웨스턴 중위는 중상자들을 강변 육지로 긴급 후송하도록 명령하였다. 짧은 거리지만 구명 보트가 내려져 강변 육지로까지 중상 환자 수송에 동원되었다. 몇 사람은 물에 뛰어들어 수영으로 함을 탈출했다.


모택동 군 포병들은 조준을 옮겨 함에서 탈출하는 병력과 강변 육지로 사격을 해댔다. 애머시스트는 육지로의 부상자 후송과 도피를 중단해야 했다. 그러나 59명의 수병들과 4명의 중국인 사환들이 장개석 군이 관할하는 강남 쪽으로 피신하는데 성공하였다. 안타깝게도 두 명의 수병이 헤엄쳐서 탈출하는 과정에 익사하였다.

 

다음 날에는 장개석 군이 마련한 삼판[sampan-조각배]으로 중상자들이 추가로 육지로 이동하였다.이들 부상 승조원들은 지안인[江陰]의 선교사가 설립한 병원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고 난징에서 급파 된 영국 외교관들과 만날 수가 있었다.응급 치료가 끝난 이들은 모두 기차 편으로 샹하이[上海]로 보내졌다.애머시스트에 남아있던 인원들은 운 좋게도 부상당하지 않은 60명이었다.

 

포격으로 큰 피해를 입은 애머시스트


함에 대한 포격은 중지했지만 모택동 군은 저격병을 배치하고 사격을 해대 함내[艦內]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포격이 11시쯤 정지되었을 때 집계해보니 22명이 전사했고 31명이 부상하였다. 


애머시스트의 피격탄 수는 50발이나 되었다. 홀수선 밑에 구멍이 뚫어져 침수가 되었으나 승조원들은 임시 방편으로 해먹과 매트리스로 틀어막았다.

 

애머시스트가 사투를 벌이고 있는 동안 난징의 강상에서 경계 임무에 있던 구축함 콘소트 함이 29노트의 쾌속으로 하류로 달려왔다. 콘소트는 일곱 개의 백기와 세 개의 영국기를 휘날리며 적대감이 없슴을 표시하였다.


구축함 콘소트 -총톤수 -2,545 톤


영국 극동 함대의 작전 사령관 매든 제독은 사건이 발생하자 로버슨 중령이 지휘하는 콘소트 함을 난징에서 현장으로 달려가게 하였으며 함장 제이 대령의 프리게이트 함 블랙 스완을 양자강으로 들어가 지양인으로 급행하게 하였다.

 

콘소트 함은 오후 세 시경 현장에 도착하였다. 콘소트를 본 양자강 강북 모택동군 포병들은 치열한 화력을 퍼부었다. 콘소트는 엄청난 포탄들이 낙하하는 상황에서 애머시스트를 구하는 것이 불가능해서 그냥 애머시스트를 통과해서 2 마일쯤  하류로 내려갔다가 다시 되돌아와 애머시스트를 견인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콘소트는 장비 포인 4.5인치 포를 포함한 기관포까지 동원해서 모택동군의 포대를 상당수 파괴했으나 낙하하는 포탄은 멈추지 않았다.콘소트는 또다시 견인 시도를 포기하고 하류 쪽으로 피해야 했다.포화는 콘소트에도 인명피해를 발생시켜 10명이 전사하고 23명이 부상하였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Trackbacks 0 / Comments 1

  • david 2016.01.24 05:31

    귀한 자료를 찿으시는 수고에 늘 감사 드립니다. 이 Story를 보며 생각나는 영화가 잇군요, 혹 보신 적이 잇는지 모르 겟지만, 60 년대 영화로 Sand Pebble( 산파부로 란 제목으로 상영 됫썻씀)란 영화의 장면이 이 story의 배경과 아주 흡사 합니다
    중국에서, 공산당 하고... 스티브 맥킨 과 켄디스 버겐(그녀의 데뷰작)이 주연한 영화 엿는데요, 강상 에서의 전투 장면과 마지막에 스티브 멕킨이( 수병) 켄디스 바겐( 선교사)을 구하며 홀로 남아 BAR( 자동소총)로서 적을 저지 하다 죽을때 홀로는 안 가겟다 울부짓는 켄디스 바겐의 모습이 아직 생생 하군요. 당시에 아주 잘된 영화란 평이 잇썻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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