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문명 충돌사 [ 5 ]

동서문명 충돌사 [ 5 ]



황제의 죽음으로 살아난 유럽 (1241년 리그니트 전투)


* 동: 몽골 (승)

* 서: 유럽 (패)


13세기 초 몽골이 등장하면서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흔드는 세계사의 거대한 흐름이 있었다. 유사 이래 어떤 정복국가도 이런 거대한 제국을 세운 적이 없었으며, 그들이 왜 이렇게 계속 확장을 해나갔는지는 아직도 역사학자들의 고민거리로 남아 있을 정도다. 이들은 점령지를 칸국으로 분리하여 통치했는데, 19세기 중반 인도 대륙의 무굴제국이 영국에 점령당할 때까지 유라시아 대륙 곳곳에 그들의 흔적을 남겼다.


[ 13세기 초에 들불처럼 타오른 몽골의 위세는 세계사를 크게 바꾸었다 ]


이러한 몽골 팽창 초기에 유럽으로 향한 선봉장은 칭기즈칸의 장자 주치의 둘째 아들인 바투였다. 1237년부터 시작된 바투의 유럽대원정은 900년 전 그들의 조상인 훈(흉노)의 서진만큼 유럽사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바투는 볼가르 공국의 점령을 시작으로 서진을 거듭하여 키에프 공국까지 차례로 점령한 후 러시아를 정벌했다. 그리하여 러시아는 이후 250년간 ‘타타르의 멍에’라고 불리는 몽골의 지배를 받게 된다.



[ 터키에 있는 바투의 동상. 서양인의 모습으로 묘사된 부분이 흥미롭다 ]


러시아 정벌 후 잠시 숨을 고른 몽골은 1241년 드디어 유럽 쪽으로 말발굽을 돌렸다. 몽골군은 그해 4월 리그니트(Leignitz) 평원에서 리그니트공국과 독일 기사단의 저항을 받았으나 대승을 거두었고, 같은 시기에 헝가리로 공격해 들어간 또 다른 일파가 헝가리군를 초토화시켰다. 몽골군이 다뉴브 강을 건너자 전체 유럽이 몽골의 지배 하로 들어가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고, 여기에 대해 역사학자들도 별다른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 리그니트 전투를 시작으로 유럽 전체의 몽골 지배는 가시화되다 시피 하였다 ]


이렇게 절망적인 상태의 유럽을 구한 것은 몽골울루스의 2대 대칸 우구데이의 갑작스런 죽음이었다. 대칸이 사망하자 몽골울루스의 대권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바투는 회군을 결심하게 되는데, 만약 우구데이가 좀 더 오래 살았거나 아니면 바투가 대권에 욕심을 갖지 않고 서진을 계속했다면 서유럽의 역사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역사에 만약이라는 단어는 필요 없지만 몹시 궁금해지는 가정이다.



마지막 고대왕국의 종말 (1453년 콘스탄티노플 공방전)


* 동: 오스만투르크 (승)

* 서: 동로마제국 (패)

 

13세기 말 건국된 오스만투르크는 어느덧 오리엔트지역을 통일한 또 하나의 제국으로 성장하여 유럽 대륙으로의 진출을 꾀하는데, 상대는 무려 2,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비잔틴제국(동로마)이었다. 비잔틴은 유구한 역사를 간직하였지만 14세기 이후에는 당대 유럽 최대의 도시인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한 발칸반도 부근 만 간신히 장악하고 있건 노쇠한 제국이었다.



[ 비잔틴제국의 자랑이다가 터키의 상징이 된 아야소피야 ]


따라서 이 도시의 점령은 곧 동로마제국의 종말을 뜻하는 것이자 고대사의 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정복자들이 이곳을 지배하기를 원하였지만 오랜 세월을 버텨온 것만으로 알 수 있듯이 철벽 방어막에 막혀 번번이 실패하였다. 15세기 중반 오스만의 술탄 메흐멧 2세(Mehmed II)는 이전의 다른 도전자들처럼 성급하게 공격하여 스스로 물러나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 정복자라고도 불리는 메흐멧 2세 ]


그는 해협을 두고 비잔티움과 마주한 요충지에 루멜리 히사르(Rumeli Hisar) 성을 건축하여 보스포러스 해협 통행권을 장악하고 외곽 길목을 차단했다. 심각성을 깨달은 비잔틴은 성문을 수리하고 해안 입구에 쇠사슬을 연결하여 선박의 진입을 봉쇄하는 한편 로마교황과 유럽 각국에 군대의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고대왕국은 치밀한 오스만 제국의 공격에 마침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 콘스탄티노플에 입성하는 메흐멧 2세와 오스만투르크 군대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 ]


오스만투르크는 콘스탄티노플을 이스탄불이라 개명하고 이곳을 발판으로 발칸 반도에 대한 대진격을 개시하여 쉴레이만 1세(Sulayman I) 치세에 이르러 비엔나까지 육박했고 영토는 아시아-아프리카-유럽 3대륙에 걸쳐 19세기 말까지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했다. 비록 이후 제국은 급격히 쇠락하였지만 이때 확보한 이스탄불은 여전히 터키의 주요도시이고, 그들이 점령했던 발칸 반도에는 보스니아 같은 많은 무슬림지역들이 남아 있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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