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문명 충돌사 [ 2 ]

동서문명 충돌사 [ 2 ]


동방으로 원정을 떠난 정복자 (BC 333 이수스 전투)


* 동: 페르시아 (패)

* 서: 마케도니아 (승)

 

마케도니아는 그리스 도시국가 중 하나였지만 정작 다른 폴리스들로부터 야만이라고 취급받았다. 그러던 마케도니아가 필리포스 2세의 등장 후 서서히 힘을 키우더니, 헬라스연맹의 맹주가 되면서 지역의 패권을 잡게 되었다. 이어 아들 알렉산더(Alexander the Great)가 20세의 나이로 등극하여 변방의 반란을 진압한 후 100여 년 이상 그리스를 압박해온 페르시아를 정벌하러 원정길에 오르는데, 바로 유명한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이다.



[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은 서양이 최초로 동양을 침략한 사례다 ]


이것은 서양세계가 역사에 남긴 최초의 동양 침략이면서, 그리스 및 오리엔트 지역의 통일을 이루려는 동서양 두 세력 간의 세계대전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당대의 지성 아리스토텔레스 등으로부터 학문을 전수받고 부왕으로부터 전술 및 행정 등의 실무를 배운 뛰어난 지략가 알렉산더 대왕은 33세의 젊은 나이로 갑자기 죽음을 맞기 전까지 끊임없는 정복전쟁으로 유럽-아시아-아프리카에 이르는 거대제국을 이루었다.



[ 알렉산더 대왕의 전성기 당시의 지도 ]


당시 그리스인들이 알고 있던 세계를 알렉산더가 모두 정복하는 동안 그라니코스 전투, 가우가멜라 전투처럼 페르시아와 운명을 건 일척건곤의 승부를 겨룬 전투가 많이 있었다. 그러한 여러 싸움 중 후대에 벽화 등으로 기록되어 지금까지 그 잔영이 내려올 정도로 유명한 이수스 전투(Battle of Issus)야말로 전투 결과로 인해 동서세력의 균형추가 서쪽으로 기울게 된 기념비적인 전투였다.



[ 폼페이 벽화에 묘사 된 이수스 전투 ]


알렉산더는 페르시아 다리우스 3세의 대군을 소아시아 반도 끝 이수스에서 쳐부숨으로써 동방 원정의 확실한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었고, 이 전투의 여파를 극복하지 못한 대제국 페르시아는 메소포타미아 방향으로 후퇴하면서 결국 패망하여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거대제국 페르시아는 100년이 넘게 그리스 세계를 위협하였지만 결국 치열한 경쟁의 마지막 승자는 그리스가 되었다.




신의 외면을 받은 영웅 (BC 202 자마 전투)


* 동: 카르타고 (패)

* 서: 로마 (승)


이탈리아 반도를 중심으로 성장해가던 로마와 고대 페니키아의 후예로 해양세력을 키워 부를 모으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던 카르타고가 지중해세계의 패권을 둘러싼 결전을 피해가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들이 BC 3세기 중엽부터 100년 동안 3차에 걸쳐 치렀던 충돌을 포에니 전쟁이라 하는데, 이 중 역사적 분기점이 된 것은 한니발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2차 전쟁(BC 218∼BC 201)이었다. 


[ 로마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붙였던 깐나에 전투의 상상도 ]


카르타고의 정치가이자 장군인 한니발(Hannibal)은 후대에 두고두고 불운한 영웅으로 회자되는데, 그는 피레네 산맥과 알프스 산맥을 넘어 북에서 로마를 공격하는 누구도 생각지 못한 전략으로 로마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갔다. 그러나 역사를 바꾼 것은 한니발의 주력을 이탈리아 반도 내에 묶어두고 오히려 카르타고 본토를 침공하여 전쟁의 승부를 걸었던 스키피오(Scipio Africanus)의 전략에 의해서였다.



[ 자마 전투 상상도. 이때 당한 단 한 번의 패배로 카르타고는 전쟁에서 졌다 ]


10여 년 간 로마의 곳곳을 휘저으며 위협을 가하던 한니발은 본국이 위험에 처하였다는 급보를 받자 원정을 중단하고 귀국길에 올랐는데 철저하게 스키피오가 파놓은 함정에 빨려드는 행위였고 어쩌면 이때 한니발의 명운은 결정되었는지도 모른다. 스키피오가 급거 귀국한 한니발과 운명을 건 대회전을 벌인 곳이 자마(Zama)인데, 이 전투는 결국 한니발의 전술을 역으로 이용한 스키피오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 자마 전투를 승리로 이끈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


이것이 한니발이 당한 유일한 패배였지만 이 단 한 번의 패배로 카르타고는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한니발에게 무수한 패배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가 승리한 이유는 전쟁을 장기간 치를 수 있는 항전 능력에서 우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기력이 쇠한 카르타고는 로마가 목숨을 끊기 위해 벌인 3차 전쟁(BC 149∼BC 146)에서 철저히 파괴당하면서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Trackbacks 20 / Comments 1

  • 국가가 요구하는 것과 보장하는 것 2015.10.27 19:51

    알렉산드로스는 피정복자들에 대한 배려는 해 주었습니다
    우리나라는 피정복자도 아닌,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는 군인 분과 나라의 어려움을 극복해낸 국민에 대한 배려도 없지요
    지금은 고대가 아닙니다... 아무리 위에 소련 괴뢰국이던 빨갱이 왕국이 불법 점거를 하고 있다지만 이게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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