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사찰 유격대 부하 강성갑 씨의 회고 -7-

[한국전 최고의 명파이터 강 삼수 경위 3탄]

산청 사찰 유격대 부하 강성갑 씨의 회고 -7-

 

금서면 쌍효리 전투


​1951 4월.

30여명의 공비들이 금서면 쌍효리 부락에 타났다는 정보를 접한 금서 지서 소속 전투 경찰대와 특공대[의용경찰]가 긴급  출동해서  나타난 공비 9 명을 사살하였다.

강삼수 경위는 여러 정보를 분석하고 그 다음 날 저녁에 공비들이 쌍효리에 되돌아 올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다음 날 유격대를 인솔하고 현장인 쌍효 부락 뒷산에 가서 매복했다. 매복한 유격대는 저녁 6시부터 새벽 5시까지 끈질기게 기다렸다.

​공비들은 설마 기습이 있었던 그 곳에 매복이 다시 있으리라고 생각을 못하고 새벽에 50 명의 병력으로 다시 되돌아 왔다가 강삼수 유격대에게 또 기습을 당하고 도주하였다.

이미 날이 밝았기 때문에 강경위는 즉시 공비들의 발자국을 추격하였다. 유격대는 경사가 심한 산 위까지 추격해서 공비들을 따라 붙었다. 불리한 위치였으나 유격대는 공비들에게 총격을 가했다. 

​응전하던 공비들은 버티지 못하고 시체들을 버리고 도주하였다. 유기한 시체들에 더해서 공비들이 도주하면서 뿌린 혈흔의 크기나 숫자로 판단해 보아 공비들은 약 10여 명이 죽은 것으로 판단되었다.

[이 쌍효리는 뒤에 소개하는 권영도 순경의 고향이기도 하다.]​

  

공비 두목 이현상의 아지트 발견


​1952년 10월, 강삼수 유격대는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 토망골에서 이현상의아지트를 발견하였다. ​대원사 골을 높이 올라가면 조개골에 도달한다. 조개골에서 사면으로 올라가면 평평한 공터가 나오는데 이곳은 공비들이 군사 훈련을 받던 곳이었다. 이 운동장 크기의 앞에 통나무로 얼키설키 지은 서너평의 건물이 나왔다. ​세상과 고립되어 로빈슨 크루즈처럼 살아가던 당시의 이 지역 화전민들은 진흙과 통나무로 이런 귀틀집들을 짓는데 이현상의 거주 가옥도 꼭 같은 형태로 지은 것이었다.​


​[이현상의 아지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인 대원사 골짜기 상류에 남아있는 귀틀집 잔해]


그 건물 앞에는 별채의 작은식당 건물도 있어서 그 안에 투박하게 만든 식탁이 한 개 있었다. ​이현상의 남부군 사령부였지만 이현상은 다른 곳으로 이동한지 한참이 된 뒤였다. 역사 기록은 이현상은 이 곳에서 5년이나 거주하며 남부군을 지휘했다고 전하고 있다. 이현상이 지리산에서 활동했던 기간이 5년 정도인데 이곳에서만 거주했던 것은 무리라고 생각이 되나 상당히 긴 기간 거주했던 것은 사실인듯하다. 유격대는 다른 공비들이 이 시설을 사용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전부 파괴하고 불을 질러 없애버렸다.이 아지트 발견 공로로 강삼수 경사는 경위로 특진하였다.



[1953년 9월에 이 현상이 사살되었던 지리산 빗점골] 



10여년을 도망 다닌 공비들의 추격


강성갑씨의 기억에 지금도 남아 있는 끈질긴 공비들이 있었다. 하나는 강우형, 안원도 2인조 팀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응조, 정순덕, 이홍희 3인조 팀이었다. 두 팀 다 가혹한 토벌에서도 십 년 넘게 버티던 서바이벌 공비들의 상직적 존재들이었다. 특히 강우형과 안완도 2인조 팀은 너무 자주 나타나서 식량을 털어갔기에  산청군에서 아주 잘 알려진 유명 인사가 되다시피한 공비들이었다.

  

강우형은 산청군 삼장면 출신이었고 안원도는 산청군 오부면 출신이었다. 지역에 알려진 인물이었고 둘이서 항상 같이 다녔기 때문에 두 인간들이 저지른 식량 도둑질은 매번 그들의 소행임을 드러나게 하였다.

  

강, 안 2 인조는 식량 도둑질을 너무 빈번하게 해서 강삼수 유격대의 주목을 받았다. 이들의 출현 소식을 듣고 출동하거나 매복을 했지만 이들은 귀신같이 피해 도주했었다.이들의 신출귀몰하는 도둑질에 분노한 강삼수 경위는 반드시 이 놈들을 잡자고 다짐하며 추적하기 시작했다.

  

2인조가 자주 나타나는 곳은 안원도의 고향인 산청군 오부면이었다. 유격대는 오부면의 어전리에 민가를 얻어 넣고 뒷산에서 장기 매복에 들어갔다.다른 지역에서의 적정이 비교적 소강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여유를 가진 유격대는 이곳에서 달포를 기다렸지만 2인조는 눈치를 채고 아예 나타나지를 않았다. 허탈해진 유격대는 철수하고 말았다.이 때가 1951년이었다.

  

10여 년의 세월이 지난 1963년 지리산에는 강,안 두 사람의 2인조 공비들과

정순덕, 이홍희 [이 응조는 1961년 12월에 사살됨]남녀 혼성 2인조의 공비들만 남았었다.

경찰은 끝까지 두 팀을 추격했었다. 63년 5월.경찰의 쫓겨 다니며 이제 지칠대로 지친 강, 안 이인조는 올데갈데가 없자 산청군 생초면 강의 이모 집을 찾아갔다. 놀란 이모는 잘 익은 막걸리 한 항아리를 주고 이들을 쫓아냈다. 사찰계 경찰들이 공비들의 친인척은 항상 감시했었기 때문에 공비들은 친척들에게도 경원시 당했었다. 두 사람은 마른 농수로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막걸리 한 동이를 다 마시고 신세 비관을 하다가 서로 총질을 하고 자살했다.



정순덕 이홍희 2인조

​[사살된 이홍희]


삼장면은 최후의 공비며 여성 공비였던 정순덕의 고향 홍계리가 있는 곳이다. 친지나 안면있는 지인들도 많아 정순덕이 도움을 받고자 자주 출몰하던 곳이었었고 나중에 체포된 곳도 삼장면이었다. 


강삼수 경위는 유격대장 시절은 물론 삼장 지서장으로 재직중이던 10여 년의 세월에 걸쳐 정순덕을 추적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순덕 이홍희 2인조는 공비 토벌의 귀신 강삼수 경위을 잘 피해서 살아남았다 .그의 명성과 실력을 잘 알았기에 강경위의 지역에는 얼씬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 남았던 것 같다. 이홍희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머리가 명석한 수재로 알려졌다고 하는데 머리가 좋은 그가 경찰의 추격을 요리조리 피신하며 생존했었을 가능성도 있다.


2인조는 1963년 11월 강삼수 경위의 후임인 지서장 김영국 경사의 치밀한 매복 기습으로 생포되었고 이홍희는 사살되었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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