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노벨상을 탔다 [ 上 ] 모두를 놀라게 만들다

그가 노벨상을 탔다 [ 上 ] 모두를 놀라게 만들다



1953년 노벨위원회는 영국의 현역 수상인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을 그 해 노벨상 수상자임을 발표하였다. 나치의 침략으로부터 세계의 평화가 위협받았을 때, 굳은 신념과 지도력으로 제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자유의 가치를 수호해내는데 앞장섰던 그가 노벨상을 수상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많은 사람들은 어리둥절하였고 당사자 처칠도 놀랐다.




[ 트레이드마크 같은 시가를 물고 V자를 표한 처칠 ]



왜냐하면 수상 분야가 정치인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문학상이기 때문이었다. 스웨덴 한림원은 그가 1948년부터 저술한《제2차 세계대전(The Second World War)》이 ‘전기와 역사서에서 보여 준 탁월함과, 고양된 인간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행한 훌륭한 연설문’이라고 칭송하며 노벨 문학상 수상의 이유를 설명하였다.




[ 윈스턴 처칠이 저작한 제2차 세계대전 ]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칠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많은 뒷담화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이와 관련하여 자주 거론되는 이유 중 하나가 스웨덴 정부가 눈치를 보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내심 정치인에게 최고의 영예라 할 수 있는 평화상을 처칠에게 수여하고 싶었지만 정작 노벨 평화상은 노르웨이에서 선정하여 수상하므로 스웨덴이 관여할 수가 없기에 편법으로 문학상을 수여하였다는 주장이다.




[ 200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

이처럼 정치인들도 단골 수상대상자다 ]


노벨 문학상은 처칠을 제외하고 정치인이 수상한 경우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은 더욱 힘을 받고 있다. 처칠이 전쟁 승리에 공로가 큰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문학상이라는 편법을 동원하면서까지 그에게 성의를 표한 것은 절차상으로도 그렇고 상을 제정한 노벨(Alfred Nobel)의 이상과도 부합되지 않는다며 처칠에게 문학상은 가장 잘못된 수상 사례라고 지금도 공공연히 거론 될 정도다.




[ 처칠의 노벨상 수상은 아직도 논쟁거리다 ]


그런데 이러한 주장들도 많은 모순점이 있다. 우선 독립적인 위상을 갖는 노벨 위원회는 차치하고라도 스웨덴이 굳이 제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눈치를 볼만한 이유가 그다지 많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친독적이었다고는 하지만 제2차 대전 당시에 스웨덴은 끝까지 전쟁에 말려들지 않고 중립을 지킨 몇 안 되는 유럽 국가였다. 따라서 정치 외교적으로 영국이나 전쟁 당시 연합국을 영도한 처칠에 대해 갚아야 할 것이 별로 없었다.




[ 제2차 대전 당시 스웨덴 스톡홀룸의 모습

친독적이었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중립을 유지하였다 ]


오히려 그렇게 따진다면 노벨 평화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노르웨이가 영국에 진 빛이 많았다. 제2차 대전 당시에 노르웨이가 독일의 침략을 받자마자 노르웨이를 돕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였었다. 또한 노르웨이 왕가와 정부가 대독항전을 계속할 수 있도록 망명지를 제공하고 후원해준 나라가 영국이었다. 따라서 노르웨이가 앞장서서 처칠에게 노벨 평화상을 수여할 수 있는 개연성이 오히려 컸던 상황이었다.




[ 노르웨이 오슬로를 점령한 독일군 ]


최근 밝혀진 스웨덴 한림원 문서에 따르면 당시 노벨 문학상 최종 후보로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월터 드 라 메어(Walter De la Mare), 할도르 락스네스(Halldór Kiljan Laxness),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그레이엄 그린(Graham Greene)같은 당대 문호들이 거론되었고 정작 처칠은 빠져 있었다. 그런데 당시 한림원 사무총장이었던 안데르스 외스털링(Anders Osterling)이 거론된 후보들이 수상자로 합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 당시 수상 후보였던 로바트 프로스트 ]


그들을 제외한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는데 이를 한림원의 여타 심사위원들도 별다른 이의 없이 수용하였던 점만 보더라도 외스털링의 주장이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님을 추측할 수 있다. 외스텔링은 대신 처칠을 수상 후보자로 언급하였는데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다. 이미 처칠은 스웨덴 작가들의 추천을 받아 1946년 처음 노벨 문학상 후보가 된 뒤 매년 추천을 받아왔었다는 사실이다.




[ 한림원 사무총장이었던 안데르스 외스텔링 ]


오히려 그동안 처칠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 번번이 미끄러진 이유가 그의 수상이 정치적 색채를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들 또한 처칠을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하였을 경우 닥쳐올 역풍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8년이 넘게 계속하여 후보로 거론되었다는 점은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던 것 이상으로 처칠의 문학적 능력이 대단하였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 계속 )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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