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의 반격 신호를 울리다, ‘인천상륙작전’

6∙25 전쟁의 반격 신호를 울리다, ‘인천상륙작전’ 




▲ 미 해병대 중위 발도메로 로페즈가 소대원을 이끌고 방벽을 넘는 모습. 이 벽을 넘은 몇 분 후 로페즈는 부대원의 피해를 막기 위해 자신의 몸으로 수류탄을 감싸고 전사했다. 후일 이 사실이 알려지며 이 사진은 인천상륙작전의 상징처럼 되었다.


올해는 6∙25전쟁 발발 65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950년 북한의 갑작스러운 남침에 우리는 단 사흘 만에 서울을 점령당하고 말았습니다. 남쪽으로 후퇴를 거듭하던 국군은 유엔군의 참전으로 반격의 기회를 얻게 됩니다. 낙동강 전선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던 그때, 인천에서는 대대적인 반격의 서막이 시작됩니다. 이른바 인천상륙작전. 1950년 9월 15일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의 지휘 아래 진행된 이 작전으로 6·25전쟁의 판세가 뒤바뀌었습니다. 


“당시 미국내에서는 인천상륙작전에 대해서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어요. 인천은 상륙작전을 하기에 적합한 장소가 아니란 이유였습니다. 조수 간만의 차도 크고, 북한이 점령한 서울과 거리도 가까웠으니 그만큼 경계도 삼엄한 곳이었으니까요. 많은 사람이 ‘미친 짓’이라고 말 할 정도였어요. 하지만 맥아더 장군은 적군의 보급선을 봉쇄하고,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해서는 이 방법 밖에 없다고 하고, 설득의 설득을 거쳐 작전이 이뤄지게 됩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어요.”

- 공정식 前 해병대사령관 인터뷰 중(2014년 9월 16일 MBN) 


만약 이때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요?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 공산군이 남북군사분계선이던 38선 전역에 걸쳐 불법 남침하면서 한반도에 비극이 시작되었습니다. 북한의 기습에 남한은 전혀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사흘 만에 수도 서울을 점령당하고, 국군은 참패를 거듭하며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나야 했습니다. 유엔군이 참전했지만, 초반에는 전황이 순조롭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을 단번에 뒤집은 반전의 계기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인천상륙작전’입니다. 


반대 여론 속 작전을 강행하다 

개전 후 파죽지세로 진격한 북한군은 유엔군의 참전으로 낙동강 전선에서 교착상태에 빠집니다. 국군도 전열을 가다듬어 두 진영은 낙동강을 사이에 둔 채 공방을 거듭하며 버티고 있었습니다. 유엔군의 압도적인 공군 화력에 보급선까지 길어진 상태로 북한군이 낙동강 전선을 돌파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국군과 유엔군(당시 국군은 유엔군 편제에 있었습니다) 역시 본격적인 반격을 하긴 어려운 상태. 이 교착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는 후방상륙작전을 계획하기에 이릅니다.  


▲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의 모습


인천은 서울로 접근할 수 있는 최단거리 항구이자 적에게 심리적 타격을 가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은 인천의 지리적 요건을 활용해 남한 깊숙이 투입된 북한군의 보급선을 차단하고, 동시에 낙동강 전선에서 총반격하여 북한군을 섬멸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계획은 큰 반대에 부딪힙니다. 인천항은 대규모 함정의 진입이 불가능하고, 적이 기뢰를 매설할 시 많은 피해가 예상되며, 조수간만의 차가 심해, 병력, 탄약, 보급품의 운송 등 작전을 지원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였습니다. 미 육군참모총장과 해군참모총장 등 미군 수뇌부가 대부분 이 작전에 반대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미친 짓’이라는 원색적 비판까지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차라리 군산이나 삼척 혹은 삼천포 등이 상륙작전에 더 적합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맥아더는 북한군의 보급을 차단하는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인천이 가장 적합하다라고 맞섭니다. 당시 참전 용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맥아더는 반대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 오랫동안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고 합니다. 결국 합동참모본부는 8월 28일 작전명 ‘크로마이트(Operation Chromite)’, 즉 인천상륙작전을 승인하기에 이릅니다.


▲ 인천에 상륙하고 있는 국군과 유엔군 병력


압록강 진격의 계기를 만들다

알몬드 소장을 군단장으로 삼아 휘하에 7만5천여 명의 병력이 동원됐습니다. 작전은 극비로 진행돼 우리 국군조차 당일에서야 작전 내용을 알고 참전했다고 전합니다. 국군 측 총 지휘자는 해군참모총장 손원일 제독이었습니다. 그 외 국군해병연대 신현준 대령, 국군 제 17연대 연대장 백인엽 대령이 국군을 이끌고 참전했습니다. 이들의 임무는 인천항의 확보와 해안 교두보를 마련한 후 신속하게 김포 비행장을 확보해, 미 제8군단과 연합 작전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1950년 9월 15일 새벽 5시. 인천 앞바다에 4척의 항공모함과 6척의 구축함이 월미도를 포격하기 시작했습니다. 2시간 후 월미도의 등대에 불이 들어오며 월미도 탈환 성공을 알립니다. 그 후 주력 부대인 국군 해병 4개 대대, 미국 제7보병단과 제1 해병사단은 전격공격을 감행해 인천을 점령하고 김포비행장과 수원을 확보하는데 성공합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은 담숨에 전쟁의 흐름을 바꿔놓았습니다. 패퇴를 반복하던 국군과 유엔군은 이를 반전의 계기로 삼게 됩니다. 낙동강 전선의 북한군은 보급로 차단과 후방 위협을 동시에 겪으며 크게 동요했고, 국군과 유엔군은 이를 놓치지 않고 반격을 개시합니다. 이 전투로 북한군 14개 사단 병력이 거의 전멸했고 1만 2천 여명이 포로가 되었습니다. 2~3만명 정도만 북쪽으로 후퇴하고 일부는 빨치산이 되었습니다. 이 승리를 계기로 국군과 유엔군은 서울을 수복하고 38선을 넘어 압록강까지 진격하기에 이릅니다.   


▲ 지난 2009년 열린 장사동 상륙작전 참전 용사 합동 위령제 (사진 출처: 국방일보)


숨은 영웅들의 목숨과 바꾼 승리 

인천상륙작전이 크게 성공했지만 여기에는 많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특히 장사동 상륙작전에 투입된 772명의 학도 의용군(772유격대)들은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할 사람들입니다.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되기 전 북한군의 시선을 따돌릴 목적으로 군함 미주리호가 삼척 근처에서 공습을 시작했습니다. 상륙작전준비로 오인시키기 위한 책략이었습니다. 또 애초 계획지였던 군산에 상륙한다는 정보를 흘려 북한군을 기만하기도 했습니다.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의 완벽한 성공을 위해 북한군의 거점지인 영덕군 장사리에 상륙해 북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장사동 상륙작전(작전명 174)을 양동작전으로 진행하고자 했습니다. 이것은 보안이 가장 중요한 작전이었기에 유격대원들에게 극비리에 명령을 수행하도록 했습니다. 이 유격대원들이 바로 학도의용군입니다. 이들은 지원병, 피난민, 전쟁고아 등 10대 소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장사동 상륙작전은 처음부터 적을 기만할 목적으로 이뤄진 것이기에 적은 병력만이 투입되었습니다. 병력의 열세로 학도의용군은 큰 피해를 겪게 됩니다. 이 전투에서 총 139명이 전사하고 92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나머지 인원은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은 이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영덕군과 국가보훈처는 240억원을 들여 장사 상륙작전 전승기념공원을 조성, 2016년 상반기에 일반에 선보일 예정입니다.


▲ 미주리호의 함포가 불을 뿜는 모습


인천상륙작전을 소재로 한 문화 콘텐츠

인천상륙작전은 전쟁사에 오래 기억될만한 대사건이었던 만큼 이를 소재로 한 콘텐츠들이 꽤 있습니다. 영화로는 그레고리 펙이 주연한 <맥아더>나 우리나라 제작진의 <인천상륙작전> 등이 있습니다. 학도의용군을 소재로 한 <포화 속으로>는 3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도 성공했습니다. 이 영화를 연출한 이재한 감독은 인천상륙작전을 소재로 한 신작 영화 <맥아더>의 연출까지 맡기로 하였습니다. 맥아더 사령관 역할에 리암 니슨, 주연 배우에 이정재, 현빈 등이 물망에 오르는 등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을 소재로 한 웹툰도 있습니다. <미생>으로 유명한 윤태호 작가가 2014년 그린 작품입니다. 작가는 해방 후 혼란기부터 한국전쟁 발발, 낙동강전투와 인천상륙작전, 서울 수복까지의 과정을 웹툰 형식으로 담아냈습니다. 평범한 철구네 가족을 통해 6·25전쟁의 중요한 순간들을 보여주며 전쟁의 참혹함과 당시 사회상을 여과 없이 드러낸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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