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군 참전의 날’ 특집 영화 ‘웰컴투동막골’ 통해 본 6.25전쟁, 그리고 유엔군 참전의 의미

‘유엔군 참전의 날’ 특집

영화 ‘웰컴투동막골’ 통해 본 6.25전쟁, 그리고 유엔군 참전의 의미



7월 27일은 6.25전쟁 정전 기념일이자 유엔군 참전의 날입니다. 바로 6·25전쟁 당시 직접적인 연관도 없는 타국에 와서 하나뿐인 목숨을 바친 유엔군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공헌을 기리는 날입니다. 하지만 정작 유엔군 참전과 6·25전쟁의 의미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요즘 많아진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6·25전쟁을 소재로 삼아 만든 영화 ‘웰컴투동막골’을 통해 6·25전쟁이 지닌 의미를 살펴보고 유엔군 참전의 역사와 가치도 되짚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휴머니즘으로 부각되는 전쟁의 비극


영화 ‘웰컴투동막골’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동막골’이라는 강원도 산골마을을 배경으로 시작됩니다. 영화는 유엔군 조종사 스미스, 북한군 리수화 일행, 국군 표현철 일행이 우연히 이 마을에 모이면서 벌어지는 일을 영화적 판타지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순수한 동막골 사람들은 마을로 찾아온 국군, 북한군, 유엔군 모두를 환영하며 먹을 것을 내놓습니다. 오지에 살면서 전쟁이 일어났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이들은 총은 작대기, 수류탄은 돌멩이로 인식하며 남북 군인들에게 “서로 친구냐”고 묻습니다. 동막골 사람들은 서로 총을 겨누고 대치하는 국군과  북한군을 무서워하기는커녕 감자밭에 멧돼지가 길을 내는 것을 더 걱정합니다. 날카롭게 대립하던 군인들은 점차 마을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 서로에게 마음을 열게 됩니다. 이들은 각자 민간인 복장으로 갈아입고 마을사람들과 어울려 지냅니다. 서로가 적이라는 사실을 잊고 동막골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되죠. 양측의 병사들은 서로의 꿈을 이야기하고 고민을 토로하며 형 동생하는 관계까지 발전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6.25전쟁을 소재로 한 전쟁영화 중 가장 밝고 따뜻한 영화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전쟁의 폐해와 참상을 알리는 메시지가 아닌, 인간적으로 화합하는 남과 북의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여기에 영화적 판타지와 코미디를 적절히 뒤섞어 전쟁영화가 갖는 무거운 주제의식을 강조합니다. 전쟁 속의 휴머니즘을 다뤄 오히려 전쟁의 비극을 더 크게 부각시키는 일종의 모순어법입니다. 이러한 감독의 메시지는 ‘웰컴투동막골’의 대표적인 장면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옥수수를 쌓아둔 헛간에서 수류탄이 터지며 옥수수 알갱이들이 팝콘이 되어 눈처럼 공중을 날아다니는 장면 말이죠. 이 장면은 감독이 전쟁이라는 현상을 영화에서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행복한 시간을 함께 보낸 군인들이 동막골을 지키기 위해 연합해 싸우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하늘에서 무차별로 쏟아지는 미사일은 사방으로 터지던 팝콘과 오버랩됩니다. 군인들은 동막골을 지켜냈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차례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유엔군 참전과 그들의 희생정신을 기리며


영화 속 ‘스미스’처럼 6.25전쟁 당시 유엔 연합군으로 참전한 세계 각국의 병사들이 있습니다.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즉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열었고 28일 미국 트루먼 대통령의 지시로 맥아더 전투사령부가 우리나라에 설치되었습니다.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벨기에, 캐나다, 콜롬비아, 프랑스, 그리스, 에티오피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뉴질랜드, 필리핀, 타이(태국), 터키, 영국, 남아프리카 연방까지 총 16개 회원국이 6.25전쟁에 전투병을 파병했습니다. 우리 국군 역시 유엔군 총사령부의 지휘 아래 편입되어 전투를 치렀습니다. 

당시 이승만 정부는 북한군에 밀려 수도 서울을 버리고 대전, 대구를 거쳐 부산까지 패퇴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6.25전쟁에 참전한 유엔군 역시 미 육군 24사단이 패주하는 등 초반에는 수세에 몰렸었습니다. 하지만 낙동강 전선을 마지막 방어선으로 삼아 반격을 준비했습니다. 곧 상황은 역전되어 우리 국군은 미군과 영국군 등 유엔군의 지원을 받으며 낙동강 방어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북한군의 사기는 꺾이고 말았습니다.

이후 북한군의 군수품 공장을 파괴하고 전선을 공습하는 등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드디어 역사적인 9월 15일,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의 지휘 아래 인천상륙작전이 전개되었고 미군과 우리 국군은 인천 장악에 성공하였습니다. 이 작전을 통해 전쟁 발발 3개월 만인 9월 28일 한국군은 서울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6.25전쟁에는 전투 지원 16개국을 비롯해 60개 회원국 190여 만 명의 유엔군이 참전했습니다. 총 4만여 명(국군 제외)의 전사자가 발생했으며, 이 중 3만 6574명이 미군입니다. 

머나 먼 타국에서 목숨을 걸고 전투에 나선 유엔군 참전을 기리기 위해 우리 정부는 6.25전쟁 정전 기념일인 7월 27일을 유엔군 참전의 날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올해 유엔군 참전의 날에는 특별한 행사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유엔군 참전용사와 가족 150여 명이 한국을 방문, 이중 4명의 노병(老兵)들에게 태극무공훈장이 수여될 예정입니다. 



올해는 6.25전쟁 발발 65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혹시 6·25전쟁과 한국전쟁, 어떤 표현이 맞는 것인지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한국전쟁이라는 표현에는 ‘내전’의 의미가 담겨 있는데, 사실 6·25전쟁은 내전이 아니라 ‘국가간 전쟁’이기 때문에 6·25전쟁이 더 그에 걸맞는 표현이라고 합니다. 해외에서는 6·25전쟁을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 사이에 벌어져 잘 알려지지 않은 전쟁이라고 하여 잊혀진 전쟁(The Forgotten War)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실제로도 6·25전쟁과 한국전쟁이 같은 것임을 알지 못하는 청소년이 있을 만큼 2015년 우리 국민의 역사 · 안보의식은 무척 미흡한 수준입니다. 

영화 ‘명량’의 마지막 장면에 보면 우리 수군 한 병사가 “나중에 후손들이 우리가 이렇게 개고생한 걸 알까 모르겠네”하며 웃는 장면이 나옵니다. 6.25전쟁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2015년, 6.25전쟁 발발 65주년과 유엔군 참전의 날을 맞아 후손들을 위해 희생한 호국장병과 대의를 위해 희생한 유엔군 참전용사들의 고귀한 정신을 기억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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