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축선의 미스터리 [ 4 ] 아슬아슬했던 시간

동해 축선의 미스터리 [ 4 ] 아슬아슬했던 시간



누누이 언급한 오뚜기부대의 제천 철수는 이후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하였지만 치밀한 사전계획에 의해 이루어진 작전이 아니라 당시 상황 때문에 이루어진 순전히 우연한 사건일 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결과가 좋았다지만 동해 축선을 텅텅 비워놓고 서쪽으로 철수한 것이 과연 올바른 결정이었냐는 한번 정도 곰곰이 되짚어 봐야 할 부분은 많다. 전사에 나와 있는 내용을 인용하고자 한다.




[ 비록 결과는 좋았지만 개전 초에 비워버린 동해 축선은 많은 생각을 들게한다 ]


"이때 만약 북한군이 제1여단과 함께 제5사단, 제549육전대(* 최근 제945육전대로 확인됨), 제766유격대 등을 통합 운용해 부산을 향해 진격했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했을까? 실로 아찔한 순간이었다. 당시의 상황은 평택, 천안, 금강방어선, 대전이 잇달아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에 국군과 유엔군은 경부축선의 지연전에 몰두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또한 국군은 가용전투력이 고갈된 상태에서 재편성에 임하고 있었고, 유엔군의 증원 역시 황급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여유가 없었다. 따라서 국군과 유엔군은 동해안과 경부축선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는 마땅한 대응책을 강구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 북한이 처음부터 동해 축선에 집중하였다면 아마 이 영화도 없었을 것이다 ]


다행이었는지 아니면 그러한 정황을 몰랐거나 그것도 아니면 무슨 이유에서 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처럼 무주공산이 되어버린 동해 축선에 대한 북한군의 진격이 앞에서도 여러 번 설명한 것처럼 지지부진하였고 오히려 주력을 둘로 나누어버리면서 스스로 동해 축선 공략에 투입한 전력을 약화시켰다. 하늘은 이처럼 결코 대한민국이 허망하게 무너지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았는지 모른다.



[ 하늘은 대한민국이 무너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


그런데 북한군의 오판과 달리 미군의 참전이 결정된 후 맥아더는 동해 축선의 중요성을 재빨리 깨달았다. 국군 제8사단의 철수로 순식간 방어막이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다행히도 북한군의 전진이 미미한 것으로 분석되었지만 그렇다고 계속해서 그럴 가능성은 없었다. 따라서 그는 동해 축선을 아군의 역량을 나누어서라도 최선을 다하여 방어하여야 할 곳으로 판단하였다.



[ 전선을 시찰하는 맥아더와 제8군사령관 워커 ]


지금이야 세계적인 물류항이지만 당시만 해도 부산이 6.25전쟁처럼 거대한 전쟁을 전적으로 뒷받침하기에 그렇게 큰 규모의 항구라고 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맥아더는 유엔군의 보급선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부산 외에도 인근에 또 하나의 물류거점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이렇게 선택된 곳이 포항이었다. 포항항 인근에 비행장까지 갖추고 있었고 부산이나 대구와도 가까워 포항은 반드시 확보하여야 할 거점으로 떠올랐다.



[ 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생명선이었던 부산항 ]


더욱이 포항은 한반도를 가파르게 동과 서로 나누어 놓은 태백산맥이 급격히 낮아지면서 그 끝을 보이는 위치여서 낙동강을 연하는 지역에 방어선을 만들 경우 전선이 자연환경 등으로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연결 될 수 있는 최적의 지점이었다. 만일 북한군이 포항을 장악한다면 대구나 영천의 안전도 장담하지 못하였고 만일 이곳을 거쳐 배후로 치고 돌아오면 경부축선의 유엔군과 국군을 뒤에서 공략 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 1950년 7월 1일 촬영된 포항항 일대의 모습 ]


맥아더는 7월 7일, 최초로 6.25전쟁에 투입된 미 제24사단의 딘(William Dean) 사단장에게 동해 축선에 대한 중요성을 설명하면서 특히 포항을 철저히 경계 할 것을 지시하였다. 딘 소장도 이곳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고 사단 주력 대부분을 방어가 시급한 경부축선에 투입하였을 만큼 예비대가 전적으로 부족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포항과 영일만비행장 경계를 위해 1개 대대를 파견하여 놓았다.



[ 동해안에서의 북한군의 진격지연과 유엔군의 대응은 이후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 포로가 된 북한군 ) ]


다행히도 그때까지 북한군은 동해안에 머물며 가만히 있었다. 강릉점령 후 북한군 스스로 전력을 분산하고 또 남진을 지체함으로써 얻게 된 시간동안 유엔군이 방어선을 구축하면서 전쟁은 이후 엄청난 변화가 이루어졌다. 어쩌면 6월 28일부터 7월 7일까지 텅 빈 동해 축선에서 벌어진 진공상태는 비록 미스터리로 남게 되었지만 대한민국이 존속하게 된 결정적인 시간들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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