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특집 시리즈 -1] 北 소대장이 겪은 오산 죽미령 전투 -6-



[6.25전쟁 특집 시리즈 -1]

北 소대장이 겪은 오산 죽미령 전투 -6- 


앞 글까지 북한 최강 연대인 4사단 18연대 소대장인 박 선생의 오산 죽미령 전투 회고를 들어 보았다.이제 미군의 기록으로 옮겨가 보자 


미군의 공군은 전투 발발 후 이틀 뒤에 출격해서 서울 북방과 북한을 공격했으나 지상군 투입은 늦어져서 북한군과 미 육군이 최초로 전투를 벌인 것은 7월 5일 오산 북방 죽미령에서였다.


스미스 특임 부대라 불린 이 한국 급파 부대는 7시간의 지연전을 펼쳤으나 큰 피해를 입고 패배하였다. 세계 최강 부대라는 미군이 그 무렵 세계 무대에서 그 존재도 희미했었던 북한과의 초전에서 대패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은 매스컴을 타고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미국은 망신을 당했으며 대한민국은 불안감이 더욱 짙어졌고 북한은 세계 최강국 미군과 싸워 이길 수가 있다고 자신감을 가졌다.


맥아더가 한국 전선을 시찰하고 육상 병력을 투입하기로 하자 일본 주둔 24사단장 윌리엄 딘 소장은 바빠졌다. 전황이 급박한데 신속히 한국에 보낼 병력은 일본에 주둔하는 24사단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단은 2차 세계대전 후 예산과 병력 감축의 영향으로 축소되어 편제 이하의 전투력을 가진 엉성한 사단이었다.



윌리엄 딘 소장과 8군 사령관 워커 중장

24사단장 딘 소장은 대전 전투에서 패한 후 적 치하에서

헤매다가 북한군의 포로가 되었으며, 휴전 후 귀환하였다.


딘 소장은 이중 그래도 제일 낫다는 21연대에서 한국 전선에 보낼 선발대로 1대대를 동원하기로 결정하고 대대장 찰스 B. 스미스 중령에게 그의 이름을 딴 스미스 특임 부대를 급히 편성하도록 하였다..


스미스 중령이 지휘하는 21연대 1대대로 주력으로 하는 스미스 특임 부대는 사실 완편(完篇)의 1개 대대가 아니라 B중대와 C중대 두 개 중대, 403명의 약체 부대였다.


스미스 중령은 연대에서 제일 능력이 뛰어난 대대장으로 알려졌었다. 사실 그는 과달카날 전투부터 경험한 태평양 전쟁의 베테랑이었으나 부하들 대부분은 8주의 훈련소 기본 교육만 받은 평범한 부대였다. 여기에 51 포병대대 1개 포대 6문의 105mm 포와 153명의 포병이 추가 파병되었다. 포병 대대장 밀러 O.페리 중령이 이 일개 포대를 직접 지휘하기로 하였다.


스미스 특임 부대는 장비가 부족하여 다른 부대에서 장비를 급히 빌려 그런대로 무장하고 6월 30일부터 이틀간 한국으로 공수되었다. 7월 1일 이동을 완료한 스미스 부대는 기차 편으로 대전으로 올라와 적정을 살피다가 전황이 다급해지자 최대한 북상하여 지연전을 실시하라는 사단장 딘 소장의 명령에 따라 트럭으로 북상하였다.


스미스 부대가 급속하게 남하하는 북한군을 가로 막고 방어선을 친 곳은 수원 남방 10km 남쪽 지점이며 오산의 북쪽 죽미령이었다,이 때가 오산 전투 하루 전인 7월 4일 밤이었다.[혹은 7월 5일 새벽 3시라는 설도 있다.]



열차 편으로 대전에 도착한 스미스 부대


죽미령 좌우의 능선은 해발 100 미터 정도로서 스미스 중령은 두 개 중대를 고개 좌우 능선 1마일 폭으로 배치하고 포병을 1마일 후방에 배치하였다. 포병은 1,200발의 인마살상[人馬殺傷]용 고폭탄[HE]을 확보하고 있었으나 중요한 대전차 고폭탄[HEAT]은 단 6 발 밖에 없었다. 포병은 포 한 문에 대전차 고폭탄 6발을 주어 보병과 포병 중간의 지점에 추진하여 단독으로 포좌(砲座)를 구성하였다. 


별다르게 강하지도 못한 스미스 부대의 부대원들은 일본에서부터 북한군을 경멸하는 잘못된 소문들만을 듣고 얻은 선입관을 가지고 북한군과의 전투에 투입되었다. 즉 건국한지 수년 밖에 안 되는 북한 군대는 약체일 수밖에 없으며 상대가 세계 최강의 미군임을 알게 되면 겁을 먹고 전쟁을 중지할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오해의 선입관이었다. 심지어 북한군이 미군을 보면 즉시 뺑소니를 칠 것이라는 허풍까지도 부대 장병들 사이에 돌아다녔다.


다음 날 아침 7시 45분, 수원 쪽에서 북한군 전차 8량이 나타나 도로를 타고 남하하였다. 8시 16분 전방 2km 지점에 이르자 포병은 일시에 포문을 열었으나 T-34 전차는 꿈쩍도 안하고 전진해왔다. 전차들은 죽미령 미군 보병 저지선을 유유히 돌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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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모한 돌파에 미군들은 북한군이 방어하는 적군들이 미군이라는 것을 모르고 공격하고 있다고 지레 짐작했다. 그런 잘못된 인식의 영향이었을까? 미국의 전사들은 북한군이 오산에 전개된 방어 병력이 미군임을 모르고 공격해왔다고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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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병들은 보유한 2.36인치 로켓 포탄 22발과 75mm 무반동포탄 여러 발을 발사했으나 북한 전차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그대로 통과했다. [그러나 한 기록은 스미스 부대가 75mm 포는 장비했지만 포탄은 한 발도 가지고 오지도 았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2.36mm M1 로케트 포- 이 로케트 포에 대한 과신은 오산 죽미령 전투의 패배를 초래했다.

국군 역시 미군 고문관의 잘못된 교육으로 이 무기를 과신했다가 서울 북방의 비극적인 패배를 당했다.



보병 후방에서 단독으로 대기하고 있던 105mm 포가 발사한 대전차 고폭탄에 명중한 적 전차 2량이 파괴되고 1량의 궤도가 파괴되었다. 허만 V. 크리치필드 병장이 지휘하던 포병들은 이날 오산의 미군들 중에서 가장 잘 싸운 용사들이었다. 마지막의 대전차 고폭탄을 다 소진했으나 다른 포들이 발사한 고폭탄에 궤도가 부서진 전차도 파괴되었다 


하지만 북한 전차 공격대 1파는 이 돌격에서 스미스 부대에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피해를 주었다. 한 전차가 길을 따라 설치한 전방 FO와 포병대 사이의 전화선을 발견하고 궤도로 이를 뭉개서 절단해버린 것이다. 잠시 후의 북한 보병들의 돌격 해 올 때 스미스 부대는 이 전화선 절단으로 절실했었던 포병 지원을 받지 못했었다. 


전차대의 공격이 또 다시 이어졌다.한 시간 뒤에 곧 전방에서 T-34 25량으로 구성된 대부대가 나타났다.삼삼오오 무질서하게 내려오는 이 전차들 중에 한 량이 궤도에 포탄을 맞고 주저앉았지만 나머지는 계속 돌격해 오면서 기총 사격과 포 사격으로 20여명의 미군 보병들을 전사시켰다.여기서도 피해가 더 있었다. 4.2 인치 관측병이 전차포탄의 폭풍에 타격 당하여 말을 못하는 공황 상태에 빠져서 4.2인치 포격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M2 105mm 포


전차들은 후방에서 홀로 잘 싸운 대전차 고폭탄을 발사한 포도 파괴하고 더 전진하여 포대의 다른 포들도 파손시켰다. 전차들은 보병 방어선 바로 뒤에 정차한 트럭도 다수를 파괴하였다.그리고 계속 통과해서 남쪽으로 내려가 버렸다. 전차들의 대부대가 후방으로 사라졌지만 스미스 중령은 굴하지 않고 적 부대의 접근을 기다렸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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