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편의대 전술 - 전선 후방에 만든 2중 전선 -3-

 

 

 

 

남침하던 북한 편의대가 최대의 성과를 올린 곳은 충남 강경 경찰서 전투에서였다. 이 전투에서 정성봉 강경 경찰서 서장 이하 무려 강경 경찰서원 83명이 전사했다그 전후는 이렇다. 북한이 한강을 넘어 남침의 발길을 급히하고 있을 때 밀리던 국군와 미군은 군사 훈련이 미비했던 경찰력까지 동원해 북한군의 진출을 저지하고자 하였다. 717일 새벽 3시 강경읍 성동교에서 경비를 서던 강경 경찰서 병력은 정체불명의 무장괴한 10여 명을 검문했다.(30명으로 기억하는 분도 있다.)

 

 

 

미군에게 잡힌 북한군 포로

 

 

괴한들은 사복을 하고 칼빈총과 따발총, 그리고 일본도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들은 육군의 최전방 첩보 부대 소령이 발급한 대한 유격 대원증을 보여주었다. 강경 경찰서는 무선 통신으로 치안국에 이들의 신분을 확인하려 했으나 불통이었다. 대한 청년단 유격대원증을 제시하면서 우리는 대한 청년단원들인데 남침하는 적들과 싸우면서 여기까지 왔다.” 라고 하며 자기들도 강경 경찰대에 편입하며 싸우도록 해달라고 사정했다.

 

행정만 하다가 전투에 투입된 경찰로서 이런 방면에 경험이나 감각이 없었다. 정성봉 서장은 반신반의 했지만 부족한 경찰 병력을 보완하는 목적도 있어서 이들을 받아들이고 이들과 함께 작전 상의도 하고 암호 사용 방법까지 알려주었다그러나 이들은 북한 편의대들이었다. 서장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오후 6시경에는 논산, 광석, 성동 방향의 적은 얼마 되지 않으니 내일 총공격을 가해 섬멸하자라고 제의를 하기도 했으나 이미 강경을 은밀 포위한 적 6사단 1,000명의 병력과 내통하여 협동 공격을 약속을 하기도 하였다.

 

718일 새벽 본색을 들어낸 북 편의대는 강경 읍사무소 옥상에 소련제 수냉식 중기관총을 걸고 경찰대에 난사 하였고 읍외의 적군들도 일제히 진입하기 시작했다. 경찰대는 읍내에 급편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저항하면서 탈출을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18시간의 전투 끝에 모두 전멸하고 말았다남침 북한군 사단장 중 가장 유능하다고 평가를 받고 있으며 김일성으로부터 이중 영웅 칭호를 받은 바 있던 방호산은 호남 지역으로 들어서자 독특한 임무에 편의대를 동원하였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숙청되었다.)

 

 

 

오탄에 사망한 어머니의 죽음에  우는 아기

 

 

아래는 참전 경우회 강대언 회장의 회고다. 강 회장은 북한 내침시 전북 도경 기동대에 근무하고 있었다. 강 회장은 남침해 내려오는 북한군의 공세에 별다른 준비가 안 된 전북 도경이 우왕좌왕하는 상황에서 전북 고창 해안에 북한 육전대의 상륙 작전이 예상된다는 정보에 중대 병력을 이끌고 출동했다가 사실이 아니라는 확인과 함께 도경으로 돌아오는 중에 전북 김제 화호 병원 근처에 와서 뜻밖에도 화호 병원이 북한군 선견대에게 완전 확보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아연하였다.

 

화호 병원은 일본인이 농민들을 위해서 개설한 병원으로 지역에서는 제일 큰 종합병원이었다아직 북한군은 북쪽 한참 멀리에 있는데 후방의 화호 병원이 공격의 대상이 될 것은 상상치도 못했다. 6사단장 방호산이 보낸 편의대였다. [북한군은 이동외과 병원시설이 없어서 남침한 뒤에 남한 병원의 확보에 집중하였다. 서울대병원 세브란스 병원 인천 도립병원에서는 부상 북한군을 위한 병상확보를 위해서 대학살을 저지르기도 했다.] 북한군의 전진이 낙동강이라는 벽에 부딪히자 북한군은 편의대를 적극 동원하였다. 이 편의대에는 북한군이 내려오기 전 산속에서 공비 노릇을 하던 부대가 다수 동원되어 있었다.

 

여순 14연대 반란사건의 반란병들과 지방 공산분자들로 구성된 공비들은 군경의 토벌로 그 위세가 대폭 꺽여서 불과 200여 명의 수준으로 격감되어 있었다. 다 소멸되어 가던 공비들은 김일성의 남침으로 생기를 찾았다. 그들은 산에서 내려와 후퇴하는 경찰 부대를 공격하고 지방 유지들과 군경 가족들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러댔다. 공비 부대는 낙동강 전선 서쪽에 전개한 미군들의 후방에서 준동하며 미군 후방부대들을 공격해서 피해를 주었다.

 

 

 

사진은 19508월 공비 부대에게 습격당한 미군 무선 중계소 사병들의 시신 수습 장면을 보여준다.

공비들은 후방의 미군 무선 중계소를 습격해서 미군 통신병들을 모두 잡아 결박하고 여자 공비가 쏘아 죽였다.

 

 

낙동강 전선에서 있었던 적 편의대의 활동 중 제일 유명한 것은 1950819북한군 13사단장 최용진이 다부동에서 완강하게 저항하는 국군 1사단 사령부가 위치한 후방의 동명 초등학교를 야간 급습했다가 때 마침 지원차 도착하여 전선 투입전 숙영하고 있던 8사단 10연대 1대대 병력에게 반격당해서 패퇴한 사건이다. 편의대 활동으로 분류하기 힘든 대병력이지만 그 기본 성격은 편의대의 것과 다를바 없다.

 

821일 대구시내에 박격포탄 3발이 발사되고 이틀뒤 823일 밤에 또다시 5발의 박격포탄이 발사되어 대구 시민을 크게 동요한 것도 이들 북한 특수조의 할동이다. 이들은 팔공산에 침투한 30명 규모의 소대 병력이었는데 육군 직할 유격대 무진부대에 의해서 축출되었다.

 

대구의 동촌 비행장을 목표로 침투한 1개 분대 박격포 특수조는 경찰에게 포착되어 섬멸되었다. 이들 편의대는 전원 북한군 군관들로 농부 차림으로 침투했다. 이들은 61mm 박격포를 분해해 감추어 가져왔다. 서울 시경국 소속으로 대구로 피난와 전선에 배치돈 문인주 경사는 농부 차림의 거동 수상자 1명이 산속으로 올라가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부하 한 명과 추적하여 그들의 잠복 위치를 확인하고 보고했다. 이어진 군경 부대의 토벌에 이들 박격포 특수조는 전원 사살되었다. 이 공로는 문인주 경사는 경위로 특진하였다.

 

북한군들 편의대는 위장이나 심리전을 위해서 여자 대원들을 동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경북 도경 이진출 순경은 대구 부근 전투가 치열해지던 19507비슬산 전투에 투입되었을 때의 기억을 회상한다. 이 순경은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적의 박격포탄 공격이 시작되었다고 회상했는데 북한군 전선에서 째지는 여자 목소리로 이 경찰 개새끼들아!” 하는 소리가 따발총탄들과 같이 날아왔다고 썼다.

 

전투가 치열해지면서 유가사 근처로 5인조로 정찰을 나갔다가 불과 수십미터 거리에서 적 편의대와 조우했다. 그런데 적진에서 날카론 여자 편의대원 목소리가 들렸다. 엇 개놈의 새끼들이다!” 하는 비명소리가 나며 총탄이 날아왔다. [ 북한군이나 공비들은 경찰을 개들이라고 불렀다.] 이진출 순경의 부대는 몸을 날려 뒤로 도망쳤다. (계속)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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