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와 어뢰정의 대결-1973 중동전 비화




전차와 어뢰정의 대결 - 1973 중동전 비화



전쟁 중에 아주 드물지만 육상의 전차하고 해상의 전투함이 전투를 하는희귀한 상황이 가끔 발생했었다. 6.25 전쟁 때 원산에서 미 구축함이 중공군의 T-34 전차와 교전 한 일이 있었고 함북 성진 근처에서 미 초계함과 북한군의 자주포 SU-76 들과 교전한 일도 있었다.



 수에즈 운하를 기습 도하하는 이집트 군



1973년 10월 욤 키프르 전쟁[3차 중동전]에서 항구로 돌진한 이스라엘 전차에게 도주하던 이집트 군의 어뢰정들이 격침된 것은 특히 이채롭다.


1973년 10월 이집트와 시리아의 선공에 3차 전쟁이 발발하였다. 1967년 이스라엘에게 선공을 당해서 뼈아픈 패배를 했던 이집트 - 시리아가 빼앗긴 땅을 되찾고 패전국의 불명예도 지우려면 먼저 기습을 하는 방법 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내지른 선방이었다.


기습을 당한 이스라엘은 당황하였지만 곧 냉정을 찾고 응전에 나섰다. 먼저 공격 종심(縱深)이 좁은 북부의 골란 고원에서 시리아 침공군을 격파하고 군사력을 돌려 수에즈 운하 전선에서 반격을 시작하였다. 


이집트는 이미 수에즈 운하를 건너와서 이스라엘 군을 동쪽 시나이 사막 쪽으로 내몰고 수에즈 운하 일대를 점령 중이었다. 


이스라엘에게 호의적인 미국은 그들의 첨단 정찰기 SR-71로 촬영한 수에즈 운하 전선 정찰 사진에서 발견한 한 첩보를 이스라엘에게 전달하였다.


첩보는 그레이트 비터 호수 바로 남쪽 지점에 이집트 군대가 배치되지 않은 곳이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이미 수에즈 운하를 건너 전개한 이집트 2군과 3군의 빈틈이었다.


이스라엘은 이 빈틈에 집중한 병력으로 역도하를 해서 이집트 군의 배후에 큰 구멍을 뚫었다. 역습을 주도한 부대는 역전의 명장 아리엘 샤론 장군이 지휘하는 143사단이었다. 도하에 성공한 샤론 사단은 교두보를 확대하면서 북쪽으로 진격했다.


이집트는 예상하지 못한 이스라엘군의 반격에 놀라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역도하하는 이스라엘 군 전차


이어서 아브라함 아단 장군이 지휘하는 162기갑 사단이 뒤따라 도하하여 맹진격하였다.


뒤따라 도하한 칼만 마겐 장군의 252기갑 사단이 서쪽으로 더 나아가 좌회전, 아단 사단 우측 측면을 엄호하면서 평행 진격하였다. 그들의 목표는 이미 시나이 반도로 넘어가 있는 이집트 3군의 후방 차단과 포위였다. 


위기를 느낀 이집트 군들은 총력을 동원해서 남진하는 아단 부대의 돌격을 분쇄하려고 들었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수에즈 운하를 따라 남쪽으로 진격한 이스라엘 군은 22일 저녁 유엔의 중재로 포위망을 완성하지 못하고 휴전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도발을 핑계로 바로 휴전에 응하지 않고 전투를 계속하며 진격했다.

 


이스라엘의 M48


남하하던 두 개 사단의 주력 전차는 M48이었다. 당시 한국군이 장비했었던 M48 전차가 휘발유 엔진에 90mm 포를 가진 반면 이스라엘 M48 전차는 디젤 엔진에 105mm포를 가진 개량형이었다.


이스라엘 군의 주력 전차는 영국제 센추리언 전차와 미국제 M48이었다. 그 외 구식 M4 셔만 전차를 개량한 슈퍼 셔먼등이 있었고 최신형 M60 전차도 소량 보유하고 있었다.



사나이 반도에서 격파된 M 60전차


센추리언은 주로 북부 시리아 전선에 배치되어 있었고 마력(馬力)이 좋은 M48은 장거리 기동이 많은 남부 시나이 반도에 배치되었다.


23일, 252 기갑 사단의 마겐 장군은 휘하 여단장 단 대령에게 맹속으로 진격을 계속하라고 명령하였다. 계속되는 전투로 마겐의 기갑 사단 전차 수량은 50여량 밖에 가동되지 못했고 단의 여단 전차도 17량으로 축소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단 여단은 그날 오후 2시부터 자정까지 쉬지않고 진격을 계속했다. 단의 여단 전차 부대는 이집트 군이 유기한 수 많은 차량과 장비들로 가득 찬 도로의 차단 지대를 피해서 길 옆으로 우회하여야 했다. 오후 동안 단의 부대는 이런 방해물과 적의 저항을 격파하며 약 50km를 전진하였다.


자정 무렵에 그의 전차 부대는 드디어 푸른 물이 넘실대는 수에즈 만이 목전에 보이는 지점인 라스 아다비아 시까지 도착하였다. 시에 돌입한 단의 전차 부대와 보병 부대는 야간에 당한 졸지의 기습에 놀라 항복한 800여명의 이집트 군 포로를 잡았다. 이들 중에 세 명은 대령이었다.


새벽에 단의 부대는 수에즈 해안을 따라 기동 공격을 계속하여 아바디아 항구로 들어섰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빨랐던지 이 항구의 작은 해군 기지에 계류 되었던 이집트 해군의 두 어뢰정들도 그냥 항내에서 어물거리다가 전차의 굉음과 사격 소리가 어울려 접근해오자 허겁지겁 시동을 걸고 항외로 탈출해나갔다.



소련제 어뢰정


어뢰정들은 항을 벗어나서 수 킬로를 가기 전에 후방에 하얗게 일어나는 파도에 눈길을 준 이스라엘 전차병들에게 발견되고 말았다.


전차들은 지체없이 포탑을 돌리고 포문을 열었다. 어뢰정들의 최고 속도가 40노트의 고속이라고 하지만 그 속도는 105mm 포탄의 속도를 피하지는 못했다.두 어뢰정들은 전차포의 고폭탄에 두들겨 맞고 속도가 느려지다가 곧 침몰하고 말았다.


다음날 24일 이스라엘의 증원된 부대는 수에즈 시에 대한 총공격을 가해서 격렬한 저항을 물리치고 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도시를 점령하였다.



수에즈 운하 남하 작전도



이집트 군의 붕괴를 눈앞에 둔 이 시점에 소련은 휴전 협정 위반을 강하게 항의하며 군사 개입을 하겠다고 위협했다. 24일 유엔은 다시 결의안을 제출하여 휴전을 촉구하였다. 


이미 시나이에 전개한 이집트 군의 후방 차단과 포위망을 완성한 이스라엘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 포위망 안에 갇힌 4만 명의 이집트 3군은 한동안 식수마저 이스라엘의 허락을 받아 후방에서 배급받아 마시는 신세를 면치 못하다가 휴전 협정이 발효되고 이스라엘 군이 철수하고 나서야 이 포위망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욤 키프르 전쟁은 기습으로 호기롭게 이스라엘에게 한 방을 먹이고 시나이에 진출하였던 이집트 군이 역습을 당해 포위되는 것으로 종결된 체면이 구겨진 전쟁이었다. 




Trackbacks 0 / Comments 9

  • David 2015.05.10 03:23

    1975 년 으로 기억 되는데요. 당시 동해안 북부에 침투 햇다 도주 하는 북한 괘속 간첩선을 당시 동경사 ( 현 7 군단 전신, 12;12 당시 정승화 참모총장이 오만한 전두환 이를 이리로 좌천 시킬려 하자 이에 위기를 느낀 전두환 일당이 12:12 를 일으켯다는 설도 잇는..) 인지, 아니면 12 사단 37 연대 배속 탱크 부대 인지, 하여간 도주 하는 간첩선을 잡을려고 지상 야포 들과 직사 화기가 쏴댓쓰나 잡질 못하는 상황에서 탱크가 탱크포로 쏴서 격침 시킨 사실을 당시 제가 12 사단 52 연대 근무시 들은 적이 잇는데요, 당시 부대원 들간에 많이 회자 되엿던 말 입니다, 국방부 기록을 보면 자세히 알수 잇겟쓰나, 어떻케 확인 하는 방법은 모르겟군요, 혹 울프독 님이 확인 하실 수 잇다면.....

  • 울프 독 2015.05.10 21:33

    이 사건은 언론에 나오지 않았었습니다.
    1971년도 연평도 방송선 납북사건에서도 전차포가 사격을 하였는데 명중시키지 못했는데
    이 사건 역시 언론에 소개되지 않았었습니다.
    이 동해안 간첩선 격침 사건은 당시 사단장 백행걸 장군의 자서전에 나오는데
    공식 전사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오늘 말씀 주신 김에 한번 자료를 심도있게
    찾아 보겠습니다.

  • David 2015.05.11 00:45

    감사 합니다, 울프독 님의 늘 수고 하심에... 네! 백행걸 사단장님! 그 이름이 새롭게 느껴지네요!
    당시 사단장 마치시고 육본 에비군 참모 로 가셔서 에비군 장발 단속을 하셔서 언론에 화제가 될 만큼
    특이하신 분 이셧지요, 또한 당시 군복무 시 들은 말로는, 전방 GP 소대장( 대개 갓 육사 나와 임관한 소위) 이 정찰 나갓다 그만 발목지뢰( 푹풍지뢰) 에 발목이 나가 사단 의무대로 후송 됫는데, 사단장이 문안 오자, 이 소위가 침대 에서 외발로 벌떡 일어나 거수경레를 하며 " 사단장님 , 절 다시 GP로 보내 주십쇼" 소리 치다 그만 기절해 버렷다 합니다
    얼마전 한 TV에 인터뷰 한 전방 근무 소대장의 " 철책선 근무가 겁난다" 는 지금 세대 와는 너무도 다른 당시의 모습 이엇나 싶습니다....

  • Name 2015.05.11 20:55

    이스라엘놈 들이 잘나서 이긴 것이 아니라
    미국놈들이 도와주어서 이긴거네 ㅠ
    이스라엘놈은 한놈도 남기지 말고 전멸했으면 좋겠다.
    팔레스타인의 아픔이 빨리 낫고 행복한 아랍인들이 가득하길
    이스라엘 뛔뛔.
    개독교 역겹고
    알라교 착해

  • David 2015.05.12 00:25

    울프독님의 집필을 아끼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 좀 비하적인 표현은 안 하셧쓰면 좋켓군요
    우리가 오히려 이스라엘의 정책에서 배울점도 잇다 생각 합니다. 우리의 정부당국이 지난날, 북한의 위협에 이스라엘 식으로 좀 때릴건 때리고 햇쓰면 오늘날 이런 꼴이 낫겟씁니까? 조폭같은 짓거리의 위협에 지난 반세기 넘께 그저 당 하고만 살다보니 지금 북한 정권 애들이 우릴 그저 엿 으로 보는거 아닙니까? 더우기 좌파 정권 및 종북 세력 들의 삽질로 죄다 갓다 바쳣쓰니 그걸로 핵 무장 하고 이제와 공갈 이나 쳐 대니.. 아니 이 지구 상에 이렇케 갓다 바치며 엍어 터지기만 하는 나라가 잇씁니까? 왜 평화를 돈 주고 구걸 하려는지? 우리 어릴때 동네 양아치 애들이 괴롭히며 돈 띁을려 할때 그냥 한번 돈 준다고 게 들이 그냥 끝나던가요? 그럴 수록 와서 더 괴롭히고 점점 더 요구 하잔아요? 그 들의 생리가.. 고등학교 때 저도 이런 꼴 몇번 당하다 견딜 수 가 업써 원래 약골 엿는데, 내 방어를 위해 사촌 형이 하시던 육체미( 지금 Body building) 를 시작해서 좀 지나 제 몸이 커지고 강해 지니까 더 이상 그 양아치 애 들이 저에게 접근 안 해 오던걸 기억 하는데, 국가나 개인 이나 마찬 가지지요, 내가 강하게 나올때 상대가 날 우습게 안 보는거지, 내 약한 모습 보이는 순간 상대의 밥 이 된다는 사실을 우린 역사의 사실을 통해 많이 보왓지 안씁니까? 북한의 불쌍한 동족을 돕는것도 구 서독 식으로 그 구호물자가 정확히 북한주민에게 갈 수 잇는 System을 만든후 해야지, 지금 개성공단 등, 북한지원 이란게 결국 북한정권 애들 주머니에 돈 들어가 핵무기 만드는데, 게들 호화생활 하는데 쓰게 만드니, 도대체 무슨 생각들을 갓고 대 북한 정책을 하는건지, 북한을 돕자는 건지 모르 겟습니다.

  • Favicon of http://7xx.org 칠성 2015.05.12 15:00

    욤 키푸르는 이스라일이 전투에서는 대승했지만 그 후로 이스라엘군도 공격당하고 깨질 수 있다고 아랍이 자각하였고 또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소모적인 전투로 인해 국가가 피폐해졌다고 느껴 평화를 갈구하는 목소리가 나와서 강경파들이 후퇴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 David 2015.05.13 03:01

    강하면 물론 부러 지지요, 허나 선제 공격은 아니더라도, 이스라엘 같이, 최소 우리의 자존심은 지켜야 하는거 아니겟써요? 그런 최소한의 나 자신에 대한 존재감도 업다면, 포기 한다면 그게 정상적 인격체고 국가라 볼 수 잇겟써요?
    대기업의 횡포에 결연히 맟선 KAL 의 박 사무장 같은 분에게 국민적 성원이 가는건 그런 자존감을 찿을려는데 공감 하기 때문 아닙니까? 적이 내나라 대통령 관저 앞까지 게릴라를 보내도 그저 잠자코 잇고, 테러로 아웅산 에서 수 많은 고위 공직자가 죽어 나가도 그만..내 국민을 백주에 납치 해도 남일 보듯, 우리 영토에 포격을 가해 국민이 죽어 나자빠져도 강 건너 불보듯... 그저 늘 한단 소리가 " 한번만 더 하면 두고 보자" 식이니.. 우리 어렷쓸때 하던 말이 " 세상에 두고 보자는 놈 겁날거 업다" 라 햇는데, 우리 스스로 좀 창피 한줄 알아야 하는거 아닙니까? 늘 얻어 터지기만 하고, 늘 두고 보자 라는 허풍 이나 둘러데고, 그것도 모자라 적에게 무기 사고 독재자 호화 호식 하라고 돈 이나 갓다 바치고.. 세상에 이런 나라 찿아 볼 수 잇겟써요?

  • 레이루 2016.03.13 20:17

    울프독님은 욤키프로 전쟁을 이집트가 망신당한 전쟁으로 소개하고 있으나 이집트 국민들은 이 전쟁의 결과로 시나이 반도를 되찾게 되어 엄청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집트는 이를 기념하여 카이로 최대의 공단에 옥토버 피프쓰 라는 이름을 붙여서 기념하고 있습니다.

    맨날 만방으로 불계패하다가 처음으로 계가까지 갔다고 좋아하는 꼴입니다.

  • 나그네 2017.08.17 10:55

    이스라엘 저주하는
    빨갱이같은 무식한소리하지마
    이스라엘은 우리의 잠재적우방이야
    북한은 중동전 이집트시리아측에 참전했고
    우리는이스라엘로부터미국이안파는
    무기수입도하고
    군사정보지원도 받는처지야
    노획한소련제 북한소유전차기종도
    보내주어서큰조움주는나라가
    이스라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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