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날 특집] 포병이 이끈 새로운 문명





포병이 이끈 새로운 문명



한국 경제는 물론 세계 철강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박태준 포스코 명예 회장이 지난 2011년 12월 13일 타계하였을 때 그와 관련한 많은 일화가 언론에 대거 소개되었다. 그중에는 한국 철강 역사를 논할 때 그와 떼어 놓을 수 없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관계도 있었다. 그들은 사제지간으로 처음 인연을 맺었는데 1948년 박회장이 남조선 경비 사관학교 6기생 생도 시절에 대위였던 박대통령이 탄도학 교관이었다.



[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의 영결식 당시 모습 ]


어느 날 수업 시간에 포탄의 탄도 계산 문제를 칠판에 적어 놓고 생도들에게 이를 풀라고 했는데 오로지 박회장만이 이를 일사천리로 풀어내었고 그때부터 박대통령이 그를 눈 여겨 봤다고 한다. 탄도 궤적을 예측하려면 기하학, 미분, 삼각함수 등 각종 수학 원리를 깨닫고 있어야 했다. 따라서 궤적 계산 문제를 쉽게 풀었다는 것은 기초가 튼튼하고 사전에 준비를 충분히 하였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 목표물을 명중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사전 계산이 필요하다 ] 


이처럼 탄도 계산은 매우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일이다. 이를 쉽게 계산할 수 있다면 사격 준비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초탄부터 적을 정확히 타격할 수 있다. 더구나 2차 대전 말기에 등장한 V-2같은 로켓은 장거리 타격을 가능하게 해주었지만 거리가 멀어질수록 탄도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더욱 힘들어졌다. 만일 계산이 잘못되어 값비싼 장거리 로켓이 엉뚱한 곳에 떨어진다면 그야말로 낭패였다.



[ 로켓처럼 사거리가 긴 무기의 탄도 계산은 상당히 중요하다 ]


명중률을 높이려면 포탄이 날아가는 궤적은 물론 온도, 습도와의 관계를 함께 계산해야 하는데 불과 60초 정도 비행하는 탄도를 정확히 알아내려면 수학자들이 평균 약 20시간 이상 계산을 해야 했다. 당연히 실전에서 사용하기 어려워 미군 당국은 편리하고 빠른 계산 방법을 찾으려 노력하였다. 당시에도 기계식 계전기를 이용한 계산기가 있었지만 탄도 같은 고난도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속도도 느렸다.




[ 미군은 빠른 계산 방법을 찾는데 혈안이 되었다 ]


미 육군 탄도 연구소는 1943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공학 교수였던 존 모클리(John Mauchly)에게 해결책을 의뢰하였다. 모클리는 졸업생인 존 에커트(John Eckert)와 팀을 결성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는데 이를 ‘프로젝트 PX’로 명명하였다. 그리고 연구에 착수한지 3년이 되던 1946년, 빠르게 그리고 정확히 탄도를 계산하여 줄 수 있는 새로운 기계를 완성하였는데 난제 해결의 상징답게 그 규모도 엄청났다.




[ 군부의 의뢰로 프로젝트를 진행한 모클리(좌)와 액커트(우) ]


20평 크기의 방 전체를 차지하는 무게 30톤의 계산기는 17,000여개의 진공관과 7,000여개의 다이오드, 70,000여개의 레지스터로 이루어졌는데 가동에 들어가면 인근 마을의 전기 공급에 문제가 생길 정도였다. 하지만 수학자보다 20만 배나 빠른 속도인 30초 만에 주어진 탄도 계산을 너끈히 해내었다. 십진수 10자리의 곱셈을 0.0028초, 나눗셈을 0.006초 이내에 처리할 수 있는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속도였다.



[ 거대한 크기의 계산기의 연산 속도는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 ] 


이 놀라운 기계의 이름은 에니악(ENIAC)이었는데 바로 새로운 문명의 이기(利器), 컴퓨터였다. 비록 프로그램 내장 식 컴퓨터와는 개념이 다르지만 에니악은 인류사에 있어 새로운 문명의 태동을 뜻하는 사변이었다. 1942년 제작된 아타나소프-베리(Atanasoff–Berry)를 최초로 보는 경향도 있기는 하지만 에니악을 실용적으로 사용된 최초의 컴퓨터로 거론하는데 별다른 반론이 제기되지 않는다.



[ 에니악은 실용화에 성공한 최초의 컴퓨터다 ]


그만큼 에니악이 컴퓨터 역사에 남긴 발자취는 어마어마했다. 이후 컴퓨터는 우리 삶과 단 일초도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물론 오래 동안 거대한 조직이나 기관만이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컴퓨터를 개인들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만든 스티브 잡스(Steve Jobs) 같은 인물이 있어 그 발달이 가속화될 수 있었다. 하지만 탄생 없이 발달이 있을 수 없으므로 에니악의 등장은 그만큼 위대한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 군사적 목적에서 탄생하였지만 컴퓨터는 삶의 일부가 되었다 ]


그런데 이러한 이기의 탄생을 이끈 것은 군사적 이유 때문이었다. 물론 이런 이유가 없었어도 언젠가 컴퓨터는 등장하였겠지만 군사적인 문제는 그 발달을 촉진 시켰다. 그리고 그렇게 탄생한 컴퓨터는 이것 없이 전쟁을 벌일 수 없는 시대를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그보다도 당장 컴퓨터가 사라진다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삶 자체가 곧바로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전쟁보다 더 무서운 상황일지도 모른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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