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 공비 이영회의 최후 -2-




최강 공비 이영회의 최후  -2-



이영회는 지리산 주력 공비 부대 지휘관이자 우리 군경에 막대한 피해를 준 인간. 또는 한국 국방사에 중요한 비중을 가진 사람 중 한 명이었으나 그에 대한 연구는 전혀 안 되어있다.


나는 그가 반란 시에 단 스무 살이었다는 공식 기록에 의문을 가졌던 것을 계기로 그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었으나 정말 얻은 결과는 너무 미미했다. 한국 국방사에서 악당으로서 죽은 이 인간에 대해서 별다른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았다.


당시 전투 경찰대 - 철모가 지급된 것은 후기에 들어서였다.


나는 1955년 출간된 군 자료에서 이영회가 사살되던 1954년에 32살이었음을 발견했다. 반란 시에 단 스무 살의 애송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했는데 역시 나의 의문이 풀렸다. 이 기록은 이영회의 본적지 주소가 전북 순창이라는 사실까지 밝히고 있었다.


그가 1947년 국방 경비대 시절에 군에 입대해서 일 년 조금 넘은 시점에 일찍 상사 계급장을 달았다는 사실을 통해 그가 과거 일본군 복무 경력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 무렵 군은 군 전투력 증강 차원에서 일본군 복무 경험이 있는 병사들은 일반 병들보다 훨씬 빠른 진급의 특혜를 주었었다. 여순 반란 사건에서 앞장을 섰던 지창수 상사가 입대 1년 반 만에 상사와 연대 인사계라는 자리를 차지한 사실은 이를 입증해준다 할 것이다.


영회가 47년 국방 경비대 입대시 나이가 벌써 26세였는데 일본군에서 돌아온 해방 후의 그의 이력은 ‘실록 정순덕’을 썼던 작가 정충제 씨가 밝히고 있다. 이영회는 입대 전 순천역전에서 놀던 깡패 출신이었다는 것이었다. 그런 불순한 범죄 행위를 하고 있으니 경찰이 가만히 둘리가 없다. 경찰관에게 자주 단속도 되고 경찰에 끌려가 구타를 당하기도 했으니 경찰에 대해 쌓였던 원한이 전투 경찰 포로들을 마구 학살한 배경이었던 듯하다.


그는 군에 들어와 입대 전부터 이미 적색물이 든 지창수와 일본군 출신이라는 공동의 배경으로 친해지고 자연히 공산화되었을 것이다. 지창수는 반란시기에 나이가 거의 40대에 가까웠다고 하는데 중일 전쟁을 일으킨 일본군이 병력 충당을 위해서 1937년부터 실시한 조선인 대상 지원병 제도 초기에 나이가 든 상태로 입대했던 것 같다. 지창수는 자연히 그의 많은 나이와 일본군 시절의 계급으로 14연대 적색분자들 비밀 조직의 리더가 되었고 여기에 일본군 출신 다수가 합세했을 듯하다.


반란후 공비가 된 이영회는 군경의 토벌이 극심해지면서 그 대담한 전투 지휘로 관록을 쌓아가며 이현상에게 충성을 다했다. 그가 지휘했던 공비 부대는 자주 부대명을 바꾸어서 혼동을 주지만 57사단이라는 부대명을 쓸 때 가장 위력을 떨쳤다.


의령 경찰서를 습격했을 때 그의 부대는 대폭 감소되어 구례군당 소속 995 부대로 다시 재편성을 하여야 했다.

마지막 공비 정순덕은 이영회 부대를 따라다니며 밥을 해주다가 전투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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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 정순덕’을 보면 이 영회가 전투가 벌어지면 전투모를 뒤로 돌려쓰고 부하들을 마구 다그치며 대담한 전투 지휘를 했다는 정순덕의 회고 장면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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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국방부 블로그에서 ‘한국전 최고의 파이터 강삼수 경위’를 두 번 소개했었는데 역시 일본군 출신인 강삼수 경위의 산청군 사찰 유격대는 공비 최강의 부대 이영회 부대를 상대로 잘 싸워서 이영회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경찰 부대가  되었다.


단 10여명의 부대원만 이끌고 62회의 전투와 322명의 공비를 사살한 산청경찰서 사찰 유격대장 강 삼수 경위



전에 소개했었던 글을 여기 다시 소개한다.


1951년 9월 11일 산청군 새롭재에서 강삼수 부대의 매복조에게 당해 큰 피해를 입었었던 이영회는 애같은 짓으로 그에 대한 증오감을 드러냈다. 전투 경찰사는 이런 일화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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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군 금서면 매촌 부락에서의 보급 투쟁을 마치고 소굴로 돌아가던 공비 57사단장(정규 사단이 아니라 이영회 부대를 가리킴) 이영회(李永檜)는 밤머리 재에 올라서 마을을 향해 


"삼수 요놈아! 뽈갱이 여기 있다. 잡아봐라! 잡아 봐!" 

"삼수야! 헛다리 짚었다고 슬퍼 말아라! 이 요사할 놈아!" 하고 외쳐댔다고 한다. 


위에서 썼던 ‘뽈갱이[빨갱이], 요사한 놈’등은 이영회가 태어난 고향의 향토 사투리다. 경상도인 산청에서 이런 고향 사투리가 흘러나온 것을 보면 위의 말은 이영회가 정말 남겼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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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일화는 강삼수 경위에게 시달릴대로 시달린 이영회가 그를 얼마나 깊이 증오했던가를 잘 보여준다.(계속)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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