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 지상군 주둔약사 [ 7 ] 제24사단, 제25사단, 제40사단, 제45사단

 

 

 

 

주한 미 지상군 주둔약사 [ 7 ] 제24사단, 제25사단, 제40사단, 제45사단

 


제24사단은 1950년 7월 2일, 예하 제21연대 1대대를 한반도로 긴급 전개하면서 6.25전쟁에 최초로 투입된 사단이었다. 하지만 죽미령 전투에서 참패를 시작으로 대전에서 사단장이 포로가 되고, 예하 제34연대는 6.25전쟁에서 재건되지 않고 해체된 유일한 부대가 되는 망신을 당했다. 미군 전사에서 이때 미 24사단이 담당했던 오산에서 낙동강 교두보까지의 후퇴를 ‘defeat after defeat’ 라고 표현하였을 정도였다.

 

 

[ 제24사단은 처음 전투에 투입 된 부대였으나 시작은 좋지 않았다 ]

 

그러나 낙동강 교두보에서 전열을 가다듬고 반격의 대열에 앞장 서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후 주로 9군단 소속으로 후방에서 작전을 벌이다 중공군 남진 후 전선에 투입되었고 1952년 1월 23일 40사단과 임무 교체 후 일본으로 부대를 옮기고 난 뒤 재편과정을 거쳐 1953년 7월 16일 재차 한반도에 배치되었으나 곧바로 휴전을 맞이했다. 그 후 1954년 미국 본토로 철수했고 현재는 해체되었다.

 

 

[ 최초로 교전에 참전한 24사단 예하 스미스 부대원의 모습 ]

 

제25사단은 일본 오사카에 주둔하고 있다가 1950년 7월 18일 미군 참전과 동시에 낙동강 교두보로 긴급 이동 전개를 했으나 당시까지만 해도 완편된 상태는 아니었다. 다른  부대와 마찬가지로 전쟁 기간 중 병력 및 장비를 보충 받아 싸우면서 부대를 재편했고 이후 중서부 전선을 오가며 무공을 세웠다. 휴전 후 1954년에 하와이로 부대를 철수했는데 현재도 유지되고 있는 10개의 미군 현역 사단 중 하나다.

 

 

[ 제25사단은 현재도 현역 사단이다 ]

 

이동 전개가 신속한 경보병사단으로 중전투 사단에 비해 전술적 이동 능력이나 화력이 뒤지지만 항공 수송 등을 이용한 장거리 전략 기동 능력은 매우 뛰어난 부대다. 때문에 철군이후에도 1970~1980년대 팀스피리트 훈련이 당시 한국에 긴급 전개하는 제1순위 부대로 훈련을 수시로 받아왔을 만큼 우리와 인연이 깊다. 21세기 들어 스트라이커 여단 체제로 바뀌면서 화력도 증강되었다.
 

[ 1980년대 팀스피리트 훈련 당시의 모습 ]

 

제40사단도 우리와 상당히 인연이 많은 부대다. 1917년에 창설되었고 캘리포니아 주방위군 임무를 수행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현역화 되어 태평양전선의 필리핀 전투 등에 투입되었고 종전 후에 24군단 소속으로 9월 29일 부산에 상륙하여 한반도 동남부를 군정 통치했다. 철군 후 다시 캘리포니아 주방위군 임무를 수행했으나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9월 1일 동원 소집되어 다시 현역부대가 되었다.

 

 

 

[ 제40사단은 평시 주방위군이지만 한반도에 두 차례나 파견된 이력이 있다 ]

 

6.25전쟁 초기에 긴급 투입된 이전의 부대와는 달리 충분한 훈련과 장비, 편제를 유지하여 참전 초기부터 뛰어난 전투력을 발휘했다. 1952년 2월 24사단과 임무를 교대하며 6.25전쟁에 참전했고 휴전 후 1954년 6월 30일 캘리포니아로 귀대했다. 현재 다시 주방위군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미국의 전시 동원이 이뤄지는 경우 현역사단으로 제일 먼저 전환될 미 육군 전략 예비전력의 임무를 담당하고 있다.

 

 

[ 1952년 중부 전선을 담당하던 당시의 40사단 장병들 ]

 

제45사단은 6.25전쟁 발발 당시 오클라호마 주방위군 임무를 수행하던 부대였다. 1950년 9월 1일 동원 소집되어 1951년 4월 일본으로 이동한 뒤 이듬해 2월 1기병사단과 임무를 교대하면서 6.25전쟁에 참전했다. 휴전 후 1954년 4월 30일 본토로 귀대했다. 45사단도 주방위군에서 동원된 사단이지만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충분한 훈련과 장비, 편제를 유지했기 때문에 참전 초기부터 뛰어난 전투력을 발휘했다.

 

 

[ 제45사단은 주로 중부전선에서 활약하였다 ]

 

45사단이 참전했을 당시에는 양측 모두가 전선을 돌파하여 전쟁을 끝내려는 생각은 사실상 접고 있던 상황이어서 전선이 38선 인근에서 정체되자 주로 참호전으로 일관했다. 40사단과 45사단의 예를 본다면 6.25전쟁 참전 초기의 24사단처럼 현역이라도 훈련이 부족하고 자만에 가득 차면 코피가 터지고, 아무리 예비군이라 해도 충분한 훈련과 준비를 한다면 막강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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