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공[警空]공지 합동작전 - 1951년 -1-

 

 

 

 

 

아래는 1993년 재향 경우회 경남지부에서 발간한 경남 경우 45년사에 수록된 백남현 선생의 기고 글을 편집한 내용이다.

 

 

 

체포 된 공비들 

 

1951년 초 지리산 주변에는 1만 명의 공비들이 득시글거렸다. 그들의 행패는 치안과 경제를 마비시켜 한반도 서남부를 대한민국 통치의 반신불수 상태로 만들어 놓았다공비들은 주변 지서 습격은 다반사요 식량 화보를 위한 약탈과 살인 방화 등의 갖은 악랄한 짓을 다하고 있었다공비들의 준동이 여러 곳에서 심했지만 특히 경남 산청군은

그 읍 소재지에 위치한 산청 경찰서가 네 번이나 습격을 당했을만큼 공비들의 피해가 극심했었다.

 

1951년 봄이되자 이들 막강한 세력의 공비들은 산청군 단성면을 점령해 교두보를 만들고 그 다음 목표로 진주 점령을 계획하고 있었다공비들을 토벌해야 하는 전투 경찰력은 너무도 미약하였다. 무기가 없어 유지들에게 십시일반으로 쌀을 거두어 모은 자금으로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오는 총이나 기관총 등을 암시장에서 사오는 형편이었다.

 

실전 경험 많은 북한군이 공격 주력인 공비 부대의 대공세를 막아낼 능력은 없었다경찰은 공비들을 토벌하기 위해서 여러번 정부와 군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군도 전방의 북한군과 중공군과 대적하느라 여력(餘力)이 없었다허약한 경찰 전투력의 문제는 산청 경찰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때 공군이 작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김신 대령이 이끄는 F-51 무스탕 3기와 정찰용 T-6 한 기로 편성한 전투 혼성 편대를 산청 인접 경남 사천 비행장으로 파견한 것이다. 그때 한국 공군은 훈련에만 열중하느라 전투 출격은 아직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 공군 무스탕기

 

 

그러나 경찰측 상태가 급박했던터라 소규모나마 베테랑 조종사인 김신[金信] 대령을 중심으로 지원 편대를 파견했던 것이다. (김구 선생의 아들이기도한 김신 대령은 중국 공군 출신으로서 한국 공군 창군 멤버였다. 후에 공군 참모총장을 지냈다.)

 

아래는 경찰측을 대표해서 공군과의 공지 합동작전을 주도하였던 산청 경찰서 경비 작전 주임이었던 백남현 경위의 실전담을 편집해서 소개하는 글이다.

 

 

 


 

백 남현 경위[1924년생]는 일본 해군 육전대로서 필리핀 전선에 파견되어 근무했었다. 그는 귀국 직후 1945년 경찰에 투신하였다. 군복무 경력은 그를 공비 토벌의 일선에서 긴 세월을 보내게 하였다.

 

 

 

백남현 경위- 후년의 모습

 

 

1960년 민주당 정권에서 자유당 정부에서 부정선거에 연관된 직책에 있었다는 이유로 무더기 해직조처로 경찰을 떠났던 여러 전쟁 유공자분들 중의 한 분이었다. 해직 후 행상 등을 하며 어려운 생활을 하다가 후년에는 산청 경찰서 앞에서 행정서사를 했었다. 후배의 회고에 의하면 리더십이 뛰어났고 용감한 분이었다는데 수 년 전 지병으로 타계해 취재를 위한 인터뷰를 하지 못했다. 우리나라 전투 경찰사에서 손으로 꼽을만한 전공을 남기신 분이다.

 

 

아주 드문 경찰과 공군의 공지 합동 전투의 사례에 관한 백 경위의 글은 19513월 경남 사천으로 이동한 공군이 주관하는 공지 합동작전 회의가 진주 배영 초등학교에서 있었다는 대목에서 부터 시작한다이 회의에 공군과 전남 경찰서와 서부 경남 각서의 경비 작전주임들이 참석했다회의 요점은 공군으로서 적의 핵심 거점을 공중 폭격으로 약화시키는 작전 목표를 확인하고 출격에 관한 정보 제공은 경찰이 수시로 수행하는 것을 합의하는 것이었다.

 

공군으로부터 대공 표식 만들기와 그 설치 요령 등이 교육되었다. 그리고 세부로 들어가 각 지역의 적정에 대한 토의 분석이 있었다본서인 산청 경찰서로 귀서[歸署]한 백 경위는 그 후 공군에게 크게 도움이 될 관내의 상세한 적정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수록한 적정도[敵情圖]를 알기 쉽게 만들어 제공하는 등 협조를 위한 공군과의 유대 관계를 친밀히 하였다.

 

4월에 들어서자 단성 지서 인근 산악지방에 공비 병력의 집결이 급증했었다. 단성 지서 공격을 노리는 적의 의도가 명백히 보이기 시작했다. 위기가 도래했고 공군의 힘을 활용할 때가 온 것이었다위기를 직감한 백 경위는 서장의 차를 빌려 타고 사천 공군 기지로 달려갔다.

 

45분 뒤 사천기지에 도착해 그는 김신 대령에게 위기 상황을 알려주고 즉시 출격을 요청하였다. 김 대령은 미 고문관과 상의하더니 편대기 4대를 직접 지휘하고 즉시 출격했다. 앞에서 말한바와 같이 F-51무스탕 전투기 3기와 T-6 정찰기 1기로 구성된 편대였다. 백 경위는 정찰기 뒷 좌석에 탑승했다. 그는 북한군에게서 노획한 신호탄 권총을 가지고 있었다. 발사 권총을 휴대하고 있었다. 실탄격인 신호탄들도 여러 발 있었다. 

 

 

 

T-6 훈련기와 정찰기로 사용됨

 

 

이륙한 정찰기는 가는 비행 코스에 있는 진주 경찰서 상공에서 150 미터의 저공으로 한 번 선회하였다. 이미 백 경위가 이륙 전 산청 이웃서인 진주서에 출격한다는 사실을 통보했던터라 진주서의 이정용 서장과 서원들이 경찰서 앞 도로에까지 나와 모자를 흔들면서 격려하여 주었다백 경위도 손수건을 흔들어 주었더니 서원(署員)들은 사기 충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그 때는 지리산의 공비들이 산청은 물론 진주 침공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진주 서원들도 전전긍긍하고 있었으니 공군 전투기들이 출격하는 것을 보고 크게 안도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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