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의 말춤과 용골대의 조선 급습 -1-

 

 

 

 

 

 

 

K -POP이 절정에 달한듯하다. 세계가 열광하는 싸이의 말춤을 보면서 나로서는 복잡한 사고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최종병기 활이라는 병자호란 무대의 영화를 보고 꼭 써야지 했으면서도 늦추어 오던 주제를 이번에는 다루어보고자 한다글이 단문의 블로그 글 답지않게 조금 돌아갈 것을 미리 밝혀둔다. 이 기회를 이용해서 싸이의 말춤에 대한 약간의 분석을 하기 위해서이다중요한 주제는 군사전략에서 주요한 요소인 기동의 원칙이 말해주듯 한반도 역사에서 가장 성공한 기동 작전인 163612월 청국 용골대가 지휘하는 기병단의 조선 기습이다.

 

 

 

청병

 

 

또 이를 가능하게 만든 인조와 신하들의 매국적인 무능함과 그 결과로 조선의 백성들이 당했었던 참혹한 피해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한다여기에 관련된 싸이 말춤의 승마 자세와 몽골 말의 소개 그리고 이 요소가 결합된 용골대의 기병 기습을 순차적으로 이야기 하고자 한다싸이의 말춤은 잘 보면 그 시작이 그가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좌우 발을 번갈아 밟는 것을 보실 수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가장 편한 승마자세라는 것을 먼저 말한다. 손을 앞으로 모아 잡은 것은 바로 안장 앞을 두 손으로 잡아 신체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두 팔의 피로도를 감소시키기 위한 것이다.

 

 

 

싸이의 말춤

 

 

단거리라면 몰라도 장거리 기승(騎乘)에 꼭 필요한 자세다. 싸이가 좌우 발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것은 말의 여러 보행 자세에서 말하는 측대보(側對步)를 연상시킨다앞 뒤 각각 두 개의 다리들 중 좌우 한 쪽이 사람이 빠르게 걷는 것처럼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측대보와 달리 대각보라고 앞뒤 다리가 대각선에 있는 다리처럼 걷는다고 방법도 있으나 너무 복잡해서 여기서는 긴 설명을 취소하기로 한다. [측대보는 amble, 대각보는 trotter.]

 

측대보는 말이 고저로 요동하는 폭이 좁아서 싸이가 하듯 상체를 바로 세우고 승마할 수가 있고 피로도가 아주 적어 장거리를 갈 수가 있다. 경마장에서 보듯 말들이 네 발굽을 모아 힘껏 박차고 달리는 말의 모습은 질주[gallop]라고 하며 이렇게 달리면 [말도 생물인데] 몇 키로 달리지 못해 지쳐 버리고 사람도 상하로 요동하는 말의 안장 위에서 전력을 다해 엎드려 있어야 하기 때문에 싸이의 말춤 자세처럼 여유있게 상체를 세운 자세를 취할 수가 없다.

 

이 측대보는 말이 주요 교통 수단일 때에 아주 바람직한 승마자세로 여겨졌다. 승마 자세로써 아주 편했고 장거리를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측대보를 천성적으로 잘하는 말은 그 값이 높았고 미국에서는 측대보를 잘하는 말의 품종을 개발해내기도 했었다이 싸이가 모션을 잡은 측대보는 기병대가 기동 중의 대부분 시간에 쓰던 중요한 걸음걸이다. [기병이 활을 쏘며 적진에 쇄도하는 질주-gallop-는 공격 전투에서 발휘된다.]

 

유명한 몽골말들은 이 측대보에 강하다. 몽골말들은 크기는 작은 반면에 머리가 크고 다리는 짧다. 대체적 인상으로 이야기 하자면 잘 생긴 아라비아 말에 비하면 아주 볼품이 없다. [명작 영화 벤허에서 전차를 끌던 네 마리의 백마가 아라비아 말이다.] 그러나 강한 체질을 가졌고 추위에 아주 강하다. TV에서 보니 몽골말들은 하루 200km를 주파할 수 있다고 한다. 러시아 말들은 150km를 달리고 포기한다고 한다.

 

추위에 아주 강하여 1908년 색클턴의 남극 탐험대에 이들 북만주 내몽골 지역에서 구매해 간 몽골말들이 동행했다. 몽골말들은 북극보다도 훨씬 추운 남극대륙의 추위에 버티지 못하고 다 죽었으나 그 중 삭스라는 강인한 말은 남위 84도까지 내려 갔었다. 더 갈 수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깊은 크레바스에 빠져 목숨을 거두었다. [색클턴은 이 탐험에서 남위88도까지 남하했었다.]

 

 

 

색클턴

 

 

더구나 몽골말들은 겨울이 오면 라는 특별훈련을 받는다. 먹이와 물을 점점 줄여가면서 운동량을 점점 늘려가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몸만들기의 특수 강훈[强訓]을 받는 것인데 이런 지옥 훈련을 거치면 말의 군살이 없어지고 먹이도 많이 먹지 않고도 먼 사냥 길의 혹독한 환경도 이겨 낼 수가 있다강한 체질에 혹한의 인내성과 특수훈련을 받은 몽골말들을 탄 청나라의 기병대가 조선정부를 붕괴상태로 몰아넣었던 한반도 최대의 피습 전쟁을 되돌아 본다.

 

1636129일 청장[淸將]용골대와 마부대는 3,000명의 최정예 철기병단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넜다. 최정예 철기병단(鐵騎兵團)은 최우량 말들을 탄 몽골병들이 다수 섞여 있었다. 청황제 홍타이치[청태종]가 작심하고 포문을 연 조선 공격의 선발 기동 특공대였다그리고 의주-한양 대로를 쏜살같은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주변의 성을 공격하거나 보급대를 기다리느라 지체하지 않고 오로지 전력을 다해 남으로 달리기만 했다.

 

 

몽골 기병대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 그 모델이 용골대로 추정되는 청 장수 쥬신타가 결혼식장을 습격하거나 성을 공격하는 장면도 나오는데 이는 물론 픽션으로써 실제로는 용골대에게 잔치상과 미녀를 제공했어도 눈을 주지 않고 남하를 계속해야했던 상황이었다.]

 

기동 목표는 정묘호란 때 조선 왕 인조가 재빨리 도망친 강화도와 한양을 잇는 탈출로 차단이었다철기병들은 주야 최소의 휴식 시간과 수면 시간만을 가지면서 정신없이 달려 사흘 만에 한양 교외인 교하에 도착했다당시의 좁은 길을 종대로 달려야했던 3,000 병력의 기병들이 이와 같이 빠르게 서울에 도달한 것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실로 번개 같은 기동이었다.

 

조정에 이때서야 전방의 김자점이 보낸 청군 침입의 장계가 도착했다김자점은 게으른 인조가 다시 있을지 모르는 여진족의 공격에 대비해서 취한 엉성한 조치 중 하나로 그는 임진강 이북의 모든 국방을 책임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럴 중차대한 임무를 맡을 역량이 없는 사람이었다. 내습한 청군과 청군의 압록강 도강 내습을 보고하는 보고서가 같이 도착한 것이다. 철기병들을 인솔하고 달리는 마상에서 용골대와 마부대는 자기들이 지난 8한양 궁궐에서 당한 수모를 생각해내며 이를 갈며 말에 채찍을 가했다. 어떻게 이런 상황이 왔던가? 뒷 장에서 말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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