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배 장군의 38선 돌파 전투 - 화천 지촌리 전투 -5-

 

 

 

 

 

 

여단장의 호를 살펴보니 호가 아주 깊숙이 파여 있었다. 38선 남쪽에도 국군 참호가 있었고 지휘관 호에도 덮개가 있었다. 대형 포탄에 별다른 방호가 되지 않던 얇은 덮개를 덮은 국군 참호와 달리 북한 여단장의 참호는 통나무로 만든 두꺼운 덮개를 가진 참호였다. 여러 발의 포탄이 떨어져도 끄덕없을 견고한 호였다.

 

이대용 중대장은 북 여단장이 그런 참호를 1개 중대의 기습 대응에 변변하게 사용하지도 못하고 도주했다니 새삼 기습의 효과를 체감하였다. 안개 속으로의 신속 대담한 기동과 기습을 명령한 김용배 대대장의 혜안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여단장의 호에는 바구니에 담긴 주먹 밥과 반찬으로 먹을 고등어 통조림 열 두개가 있었다.

 

당시 남한은 통조림도 제대로 못 만드는 수준이었는데 이 북한산 고등어는 원산에서 만든 것이었다. 이 대위는 나중에 이 고등어 통조림 중 9개를 김용배 대대장에게 선사했다호를 점령하고 사주경계를 하면서 잠복하듯 대기하자 안개가 조금씩 거치면서 떠오르는 아침 해에 주변 시야가 점점 넓어지기 시작했다. 여단장 호가 잘 보이는 범위의 북한군들은 이미 다 도주해버렸다.

 

계속 기다리자 아래로 남쪽으로 뻗어간 능선에 따라 배치한 북한군 중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접근하거나 명령 수령차 올라오는 북한군도 있어서 모두 포로로 잡았다. 이렇게 해서 획득한 포로만 해도 십여 명이 넘었다해가 완전히 뜨자 능선 맨 남쪽 아래 3중대가 점령하고 있던 고지와 제일 높은 고지의 1중대 사이에 전개하고 있던 북한군들은 상황을 알아채고 지휘 체계가 붕괴된 채 도주하고 말았다김용배 대대장이 춘천 옥산포에서 거두었던 1개 대대에 의한 기습 돌격으로 적 2개 대대가 공포에 질려 그대로 분산 도주했던 것과 비슷한 승리였다.

 

 

  

당시의 이대용 대위

 

 

10611 :30.

 

점령 완료 보고를 올린지 서너시간 뒤에 김용배 대대장이 3중대, 중화기 중대, 대대 본부와 함께 복고개 아래에 도착해 작전회의를 가졌다여기서 김용배 대대장은 1중대장과 3중대장에게 부대를 낮에는 사주경계를 하며 휴식을 취하게 하고, 저녁에 어둠을 이용해 능선을 타고 침투, 화천 읍내를 급습하라고 명령했다. 캄캄한 야간에 험한 산맥을 타고 8km를 걸어야 하는 힘든 침투였다. 

 

이 명령 역시 대담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화천읍 같은 큰 도시를 공격할 때는 충분한 정찰을 통해 적정을 파악하고 작전을 구상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었다그러나 김용배 대대장은 복고개의 여단장이 겨우 목숨을 건져 도주했고 그의 부대조차 1중대 기습에 붕괴되어 사분오열된 결과로 적의 지휘관은 극히 수동적이 되어 원거리 방어를 포기하고 병력을 화천 주변에만 중점 배치 할 것으로 내다보았다즉, 장거리 야간 침투가 가능한 능선을 열어 놓은 것이었다. 김용배 대대장은 이런 상황 판단에 따라 적의 급소를 찌르는 공격 명령 내린 것이다.

 

북한 여단장을 도주시키고 복고개 능선을 점령한 상황이 만들어지자 김용배 대대장이 내린 세 번째 직관적 결단이었다. 작전 회의가 끝나자 바로 수색대를 내보내 복고개 북쪽의 한사모루 - 운지 - 웃말 - 주막동을 연결하는 선까지 위력 정찰을 했다. 야간 침투를 위한 준비작업 성격의 위력 정찰이었지만 적의 반격에 대비한 예방 조치이기도 하였다.

 

1중대 3중대가 북상하여 화천읍으로 침투하는 동안 김용배 대대장은 그 전날에 지촌천 서쪽에 전개한 박인권 중위의 2 중대에게 계속 경계에 임하라고 명령했다이곳은 현재의 지촌리 남쪽이고 두 개 중대가 이동 침투해 갈 화천에서 멀리 떨어진 후방이다.

 

 

좌측 하단이 둥근 원안이 2중대가 배치된 곳

 

 

이곳은 서쪽 북한군이 1대대 후방 차단을 노리고 야간 침투를 시도한다면 그 접근 가능성이 높은 곳이었다작은 결정이었지만 여기서 치밀한 김용배 대대장의 성격을 읽을 수가 있다그는 자기 대대가 안개를 뚫고 적의 후방으로 침투해 그 배후를 쳤듯이 반대로 북한군도 야음을 이용해 아군의 측후방을 공격해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던 것이다.

 

 

 

화천 공격을 위한 1 중대의 야간 산악 침투로

 

 

10618;30.

1중대가 앞장을 서고 3중대가 뒤를 따르는 2개 중대의 침투 부대가 화천읍을 감제하는 성산을 향하여 출발했다. 부대가 탄 침투로는 복고개 능선에서 바로 북으로 연결된 북상 능선이었다이 능선 역시 복고개 능선을 이어가듯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는 능선이었다. 산맥은 매우 험하고 높은 산들의 연속이다. 중간 중간에 잘렸다가 다시 이어져 능선으로 통과하기가 몹시 힘들다. 더구나 야간 기동이었으므로 무척 힘이 들었고 예상 밖으로 긴 시간이 걸렸다.

 

침투로 능선 중간에 있던 274고지를 올라갈 때 서너 명의 북한군 전방 수색대로부터 사격을 받았으나 더 이상의 저항은 없었다. 날이 밝아져 3중대를 지휘하고 1중대를 후속하던 김명익 대위가 독단 결정을 내려 산 능선 길을 버리고 산 아래 도로로 내려가서 화천으로 진격해갔다. 1중대는 3중대 도움없이 중대 단독으로 화천 읍내를 감제하는 성산을 공격해야했다. 능선으로 이어져 오던 침투로는 이곳에서 도로가 횡으로 가로 지르는 계곡에 의해 단절되어 있었다중대원들은 산에서 내려와 서남쪽에서 계곡을 건너 318 고지를 점령하고 계속 전진하여 07:30분 성산을 공격했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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