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배 장군의 38선 돌파 전투 - 화천 지촌리 전투 -1-

 

 

 

 

 

 

 

이 글은 필자가 명장 김용배 장군의 자료를 수집하면서 그 분 지휘하의 7연대 1대대에서 1중대장을 역임하였던 이대용 장군의 전투담을 정리한 글이다천재적인 전투 지휘관인 김용배 장군은 그간 우리 공식 전사에서 제대로 기억해주지 못한 분이었는데 현재 이 분에 대한 자료를 계속 수집하고 있어 조만간 김용배 장군의 일대기에 대한 글을 차근차근 올릴 계획이다김용배 장군은 국군이 낙동강으로 밀리던 개전 초기 무수한 전투에서 북한군과 싸워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던 불패의 명장이었다.

 

 

 

 

 

김용배 장군은 육사 5기로서 195036사단 7연대 1대대장으로 보임을 받아 1950626일 옥산포 전투와 소양강 전투에서 크게 이겼고 이어서 충북 음성 전투, 원주의 신림 고개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또한 낙동강 전선의 신녕에서 북한군의 9월 총공세를 막아냈고 인천 상륙 작전 후 북진하여 [이 글에서 소개하는 화천을] 기습 점령했으며 청천강가에서 김 일성 승용차를 노획했었고 국군 부대중에 압록강에 최초로 도달하는 빛나는 전공을 세웠었다.

 

1년간 전장을 누비며 민족의 호국 대명을 헌신 수행하던 김 용배 장군은 195167사단 8연대장으로 부임했다가 열흘 뒤인 72일 양구에서 포탄에 맞아 전사했다. (대령이었던 전사후 김 용배 장군은 준장으로 추서되고 최고 훈장인 태극 무공훈장이 수여되었다. 전쟁 기념관 중앙홀에 그의 흉상이 안치 되어있다.)

 

 

 

 

그가 거둔 승리의 비결은 요즈음 경영학계에서 새로 떠오르는 단어인 직관[intuition]에 의한 것이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직관의 대표적 경영인이었다.

 

 

 

  클라우제비츠

 

 

서양의 손자 클라우제비츠는 그의 저서[전쟁론]의 '천재론'편에서 나폴레옹의 상승의 비결은 남이 갖지 못한 직관의 힘이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 직관을 보통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이라고 정의하고 불어로 꾸 되이(Coup d'oeil)라고 명명했다. 꾸 되이는 '눈의 힘'이라는 뜻이다천재적인 직관의 능력은 책이나 교육으로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나폴레옹같은 명장에게 보이는 직관 능력은 선천적으로 타고 난다는 것이었다. (직관은 일본 국민작가 시바 료타로가 표현한 전각(戰覺)이라는 다른 표현이 더 이해가 빠르게 되는 면이 있다.)

 

앞으로 써 갈 이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직관에 대한 두 명장을 추가로 소개 한다. 클라우제비츠가 전쟁의 천재라고 평가한 나폴레옹은 자신의 지휘 방식을 스스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고집스럽게 상황을 통제하려 하기보다 상황에 복종하는 길을 택한다."

 

전투에 임할 때 뚜렷하게 사전 작전이나 고정 계획 없이 전장에 가서 흐르는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으로써 전투를 지휘한다라고 해석 할 수가 있다.

 

다른 예를 들어본다. 러일 전쟁의 쓰시마 해전에서 러시아 발틱 함대를 섬멸시키고 대승한 일본 연합함대 사령관 도고 헤이하치로[東鄕 平八郞]원수도 직관에 대해서 언급을 한 바 있다.

 

"승리의 비결은 결정적인 순간을 잡아 적에게 맹격[猛擊]을 가하는데 있다."

 

 

도고 헤이하치로 중장

 

 

두 사람의 발언을 결론적으로 분석한 결론은 이렇다.

 

"상황을 지켜보다가 한순간에 번뜩이는 천재적인 직관에 따라 찰나의 기회를 잡아 과감한 공격을 가하는 것이 승리의 관건"

 

이라고 정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폴레옹이나 도고 원수의 직관의 인식이 정확히 적용되는 김용배 장군의 대표적인 전투를 소개한다. 우리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38선 돌파의 화천 지촌리 전투다. 그는 이 전투에서 세 번의 결정적인 기회를 잡아내고 매순간마다 대담하기 짝이 없는 공격을 연속 가했다. 결과 김용배 장군은 단 이틀만에 대대 병력으로 훨씬 우세한 적 여단 병력을 궤주시키고 중부 전선의 요지 화천을 점령하였다. (화천읍과 화천 발전소는 당시 이북 땅이었다. 그 전략적 위치의 비중은 반대 위치에 있던 남한의 춘천에 비교가 된다.)

 

1950625일 김일성이 시도한 남한 적화의 꿈은 미국의 개입으로 산산히 깨지고 오히려 반격을 불러와 19509월 말에는 인천 상륙 작전 후 붕괴되어 북으로 도주하여야 했다낙동강 전선에서 북한군과 밀고 밀리던 국군은 공세로 전환하여 패주하는 북한군을 쫓아 휴전선을 넘어 북으로 진격하였다.

 

국군이 침략자 북한군을 쫓아 38선을 넘은 국민적 감격은 국군의 날이 국군 3사단이 최초로 38선을 넘는 날을 기준으로 하는 사실에서도 증명이 된다국군의 여러 부대가 38선을 넘는 과정에서 전투를 겪었지만 중부 전선에서 춘천을 거쳐 38선을 넘자마자 북한군의 강력한 저항을 받아 이를 격파했던 6사단 7연대의 전투와 같이 긴박감 넘치는 전투는 드물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Trackbacks 0 / Comments 0

댓글 남기기

블로그 인기 키워드

Tistory Cumulus Flash tag cloud by requires Flash Player 9 or better.

링크

re_footerlink.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