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전쟁 [ 3 ] 피와 별개였던 경쟁





그들의 전쟁 [ 3 ] 피와 별개였던 경쟁


재미있는 점은 독일, 러시아, 영국의 세 왕조가 모두 독일에서 시작되었으며, 이후에도 독일과 밀접한 관계가 많았다는 사실이다. 독일제국을 만든 프로이센의 호헨촐레른 가는 발흥지가 현재 러시아 영토인 칼리닌그라드로, 이곳의 옛 이름은 프로이센의 중심이었던 쾨니히스베르크다. 지리적으로 프로이센은 신성로마제국의 변방이었지만 어느덧 독일의 통일을 주도한 중심이 되었다.



[ 발흥지 인근에 축성 된 호헨촐레른 성 ]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조는 14세기 중엽 모스크바로 이주한 프로이센 왕족의 후예인 코빌라를 시조로 하고 있다. 1613년 후손인 미하일이 차르에 오르면서 왕조가 시작되었는데, 이후 독일의 여러 제후국들과 지속적으로 통혼관계를 맺었다. 이 때문인지 유독 러시아 황실과 독일 제후국들의 혈연관계는 대단하여 1762년 남편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제위에 오른 예카테리나 2세처럼 독일에서 시집을 와 황제가 된 경우까지 있었을 정도였다.



[ 독일 출신으로 러시아로 시집와 남편을 실각시키고 황제에 오른 예카테리나 대제 ]


1714년 앤 여왕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영국은 제임스 1세의 외증손자가 되는 독일 하노버 가의 조지 1세를 국왕으로 모셔오는데, 이때부터 영국의 하노버 왕조가 시작되었다. 영국 왕실의 명칭은 빅토리아 여왕 사후 독일인 남편 알버트 공의 원류인 색스-코버크-고타 왕조로 바뀌었고, 이후 1차 대전 때 영국이 독일과 적대국이 되어 전쟁을 벌이면서 윈저 왕조로 한 번 더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빅토리아 여왕과 독일 색스-코버크-고타 왕조 출신 알버트 공의 결혼식 모습 ]


이렇게 영국 왕실도 전통적으로 독일의 왕가들과 통혼관계가 대단한데, 빅토리아 여왕의 경우 그녀의 조상도 그렇지만 그녀의 외가, 남편도 모두 독일인이었고 그녀가 사랑하는 여러 공주들도 독일로 시집보냈을 정도였다. 이처럼 세 나라의 왕가들이 독일과의 인연이 대단하지만 정작 그들이 우호적으로 지낸 역사를 찾기는 상당히 어려운 편이다. 어쩌면 제1차 대전 당시의 상황도 그러한 연장선상이었다.



[ 영국 조지 5세 즉위식에 참석한 독일 빌헬름 2세와 여타 군주들 ]


가끔 사랑 때문인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 정략적으로 혼인관계를 맺었기에 유럽의 왕조들은 대부분 핏줄로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정작 정략적 목적 때문에 혼인관계를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끊임없이 발생했다. 예를 들어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무찌르고 해양패권의 초석을 놓은 영국 엘리자베스 1세도 형부이자 스페인 국왕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펠리페 2세와 양보할 수 없는 싸움을 벌였다.



[ 엘리자베스 1세는 펠리페 2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였다 ]


다시 제1차 대전 발발 당시 상황으로 돌아와 살펴본다면 내각책임제의 전통이 확립된 영국에서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국왕이 형식적인 국가원수로 군림하고 있었지만 국민의 어버이로써 존엄은 잃지 않고 있었다. 독일은 카이저의 의지가 국정에 상당히 반영될 수 있었고, 전제 왕정의 러시아는 차르의 권위가 국정 전반을 이끌 만큼 강하였다. 즉 모두는 적극적인 의지만 있다면 전쟁을 막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것이었다.



[ 러시아 니콜라이 2세와 독일 빌헬름 2세 ]


때문에 그들이 한 나라의 지존으로서 전쟁의 무서움과 고통을 십분 이해하고 억제하려 적극 노력했다면 제1차 대전이 벌어지지 않았거나 아니면 적어도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 간의 국지전 정도로 끝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2중, 3중의 혈연관계로 맺어진 사이여서 서로가 결코 낯선 상대들이 아니었다. 사실 역사를 살펴보면 이런 혈연관계가 전쟁을 억지한 예를 발견하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것도 아니다.



[ 비스마르크는 독일과 러시아 황실의 관계를 이용하여 삼제동맹을 주도하였다 ] 


예를 들어 프랑스를 고립시켜 전쟁을 예방하려 했던 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는 러시아의 로마노프 가를 설득하여 1873년 독일-오스트리아-러시아의 삼제동맹을 맺음으로써 유럽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었다. 사실 발칸반도 일대에 대한 이해관계 때문에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의 관계는 적대적이었는데, 독일과 러시아 황실의 혈연관계가 이러한 간극을 메우는데 잠시나마 크게 작용하였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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