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색 구조대가 없었던 일본 항공대

탐색 구조대가 없었던 일본 항공대 



※ 아래는 저명한 일본 해군 전사가 오쿠미야 마사타케 씨가 썼던 글을 참조한 것이다.



태평양의 항공전에는 탐색구조대의 유무로 특징을 살펴볼 수가 있다. 


미군은 질적으로 매우 우월한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중요한 점은 미군은 항상 숙련되고 경험 많은 조종사와 승무원들을 확보하고 있었으며 미군은 큰 전투가 끝나면 수륙 양용기[비행정]들을 전투 해역으로 보내 바다에서 표류하는 조종사들이나 승무원들을 수색해서 구출해냈다는 부분이다.

 

비행 속도가 느린 PBY 카타리나 비행정은 우리 전투기에 걸렸다면 쉽게 격추시킬 대상이었으나 이 방어력 취약한 비행정은 츨격할 때마다 항상 9기 내지 12기의 전투기 호위를 받으며 해상의 실종자들을 수색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PBY 수륙양용 비행정

 

비행정의 임무는 매우 위험한 것이었는데, 시계가 불량한 날이나 황천의 악천후에서도 이들은 전우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출격해야했기 때문이다. 전투가 끝났어도 제로기들이 전투 현장으로 되돌아와서 초계할 수도 있는 상황이 빈번했고 비행정이 전투기들의 엄호를 받고 있어도 갑자기 구름 속에서 나타나 비행정에 일격을 가하고 구름 속으로 도주하는 일본기의 기습 공격까지 방어할 수는 없었다. 


태평양 전쟁 중에 미 구조 전문 비행정 승무원처럼 위험한 임무에 쉬지 않고 투입된 용감한 장병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일본군의 상황은 미군과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본 해군은 극도로 위험한 지역이나 해역에 날아다니며 목숨을 내놓고 대담한 작전에 임하는 미 해군 비행정 조종사들에게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비상한 용기를 가진 이들에게 경외심마저 가진 일본 조종사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반면 일본 고위 사령부에서 인명의 고귀함과 그 구조의 중요성을 [이론적으로만]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전투에 투입된 인원을 잃는다면 그 인원을 대체하기가 힘들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미군의 수색과 구조의 활동을 잘 알고 있는 일본 해군의 고위층들은 미군의 수색 구조의 시스템과 활동을 보고 배우려 하지 않았다.



가와니시 2식 비행대정


일본 해군의 고위 간부들은 격추되어 바다에서 표류하는 아군 조종사들을 구조하려고 비행정과 호위전투기들을 출격시켰다가 오히려 더 많은 추가 피해를 입을 것을 두려워했다. 그 결과 충분히 구할 수도 있었던 조종사들을 해상에 방치하여 그대로 죽게 만들었다.

 

그들은 단 한 명의 조종사를 구하기 위해서 값비싼 대형 비행정과 승무원들을 위험에 몰아넣을 수는 없다는 심리였다.

 

비행정 또는 수상 비행기를 출동시키면 분명히 조종사를 구출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이를 시행하지 않는경우가 아주 많았다. 그러나 이런 조난자들에 구조에 대한 무심함은 해군의 지휘관들뿐만이 아니었다. 

 

전투에서 같이 싸우는 전우들, 예를 들어 격추당한 조종사들의 편대원들도 대체로 죽음을 눈앞에 둔 전우의 운명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을 표하지 않았다.


미공군의 탐색 구조대


서구인들의 눈으로 보면 일본의 조종사들이 전우들의 희생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는 비정한 인간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은 사실, 그런 인간의 감정이 없는 집단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전우의 죽음은 자기도 곧 따라 갈 수도 있는 운명이었다.

 

동료의 구조에 무심한 조종사들은 자신이 격추되어 구명 조끼에 의지하여 표류하게 되어도 구조 같은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자기 힘으로 버티다가 구조가 되면 다행이고 아니면 초연히 죽음을 맞겠다는 정신 구조 때문이었다.



한국 공군 탐색 구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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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도록 교육시키는 무사도의 정신적 부작용이 여기서 나타난다. 소위 무사도는 죽음을 미화하는 일종의 미학까지 포함한 일종의 광신적인 철학을 한 바탕으로 한 것인데 그 부작용이 사이판과 오키나와에서 수많은 여성과 양민들까지도 죽음으로 내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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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심리 때문이었는지 단지 조종하기에 불편하다는 이유로 낙하산을 메지 않고 출격했다가 자결하듯 죽음을 맞은 조종사도 적지 않았다.


일본 해군의 일선 단위 수상기 부대에서 부대별로 전우를 구하기 위해서 출격한 일은 자주 있었지만 적어도 오늘날 미국이나 한국, 또는 세계 각 공군에서 필수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체계적인 수색 구조 부대는 그 많은 항공기와 조종사들을 잃고 멸망에 이를 때까지 일본 해군에 나타나지 않았었다. 



일본의 2식 수상기


일본 해군은 패색이 짙어진 후반 내리막길에서 숙련 조종사들과 승무원들 부족으로 작전이 엉망이 된 경우가 많았다. 이는 조종사들을 바다에 방치하여 그대로 죽게 만든 비정한 인명 무시 정책이 원인일 것이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Trackbacks 0 / Comments 1

  • 2015.01.30 16:30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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