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남 개천의 ‘현금 열차’ 노획 -2-

 

 

 

 

 

 

 

 

전쟁 기념관에 전시중인 T-34

 

 

이번 열차는 앞 차가 정지되어 있기 때문에 그 후미에서 자동적으로 정지하게 되었다. 정지와 동시에 아군으로부터 집중사격을 받은 소대 규모의 호송병들과 수 미상의 승무원들이 열차에서 황망히 뛰어내려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 후 경계를 하며 밤을 새웠지만 별다른 상황은 없었다. 결국 별로 힘들이지 않고 또 다른 6량의 화차와 거기에 가득 실려 있는 노획품을 취하였다. 장병들은 열차에 가득 실려 있는 소련제 군복을 보고 환호성을 올렸다.

 

 


 

 

열차가 노획된 곳은 개천뿐만 아니었다. 7연대 1대대는 개천을 초월하여 북진 중에 자작역에서도 여기 저기 화차가 널려있는 곳을 보았고 구장 부근에서는 구장 터널에 숨어있는 열차를 발견하고 다량의 소련제 군복을 수확했다.

 


 

 

1대대나 3대대 장병들은 순식간에 화차에 실려 있던 북한군의 소련제 신품 전투복으로 모두 갈아입었다북한군 군복이 겨자 색인 반면 소련제 군복은 국군 전투복과 같은 녹색이었지만 조금 다른 올리브 칼라였다. 단지 바지의 뒷주머니 덮개가 없었고 상의 윗 주머니는 국군 전투복과 달리 한 개만 있었다.

 

하지만 걸쳐 입고 위에 이미 지급된 미군 시보리 점퍼를 걸쳐 입으면 적군 것인지 아군 것인지 알아 보기가 힘들었다낙동강 전선까지 밀리면서 전투를 계속했었고 북진하면서도 전투로 나날을 보낸 장병들은 전투복 지급이 여의치않아 모두 해어진 옷들을 걸치고 있어서 새 전투복이 절실했었다북진 중에 국군에게 전투복 보급이 온 것이 아이러니컬하게 남쪽 후방이 아니라 북쪽 전방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개천의 열차와 구장의 열차에서 꼭 같이 소련제 초콜렛이 노획되어서 장병들의 입을 즐겁게 하였다. 개천과 그 북쪽 구장에서 꼭 같은 군수품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이들 열차들은 같은 장소에서 많은 군수품을 나누어서 적재하고 내륙으로 도피 운행 중 쾌속으로 전진하는 국군에게 모두 다 빼앗긴 것으로 생각된다.

 

북한군 패주의 마지막 파장인 이때 소련에서 다량의 군복이 지급된 사실에 유의해보면 이때 북한이 전투복 생산과 보급마저 불가능할 정도로 코너에 몰려있던 상황이었다고 보겠다. 겨울이 오고 있었고 상황이 암담해지자 다급해진 북한이 소련에 동계 피복을 구걸할 지경이 되었던 것 같다그러나 개천의 열차에서 노획한 것은 T-34 전차들이나 소련제 전투복만이 아니었다. 3대대는 한 화차 안에서 내부를 꽉 채운 북한 화폐를 발견하였다.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여기에서 밝히고자 하는 사실이 있다 3대대를 초월해 진격하다가 구장에서 열차를 노획했었던 7연대 1대대 장병들도 북한 돈[붉은 돈]을 노획했었다. 단지 그 액수가 3대대 장병들이 노획했던 만큼 다액이지 않아서 간부들에게만 비상용으로 지급되었었다. 1대대 1중대장 이대용 장군도 북한 돈을 받으면서 조금은 귀찮은 생각도 했지만 나중에 중공군의 대포위망을 탈출해 나올 때 이 붉은 돈의 큰 도움을 받게 된다이 곳은 개천에서 강계를 거쳐 만포진으로 가는 철로로써 붉은 돈들이 향하는 최종 목적지가 강계일 가능성을 예시하고 있다.

 

 

 

이대용 장군의 중대장 시절 한국전중 112회 기록의 최다 교전 경험자.

이 장군은 3대대의 개천 돌입이 7연대 최고 전공의 하나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이때 1대대가 발견한 유기 기차는 3대대가 노획한 열차와 달리 머리를 남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남쪽으로 향하다가 구장 터널에 숨어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7연대는 북진의 선두에서 달리고 있었고 누구나 통일의 순간이 목전에 닥쳐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북한 화폐는 곧 휴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대대장 조한섭 소령은 참모들과 상의한 끝에 대대 전 장병들에게 북한 화폐를 5만원씩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민폐를 끼치지 말고 주민들에게 이 돈을 주고 거래를 하라는 의미에서 나누어 주었다고 하겠다이 액수를 한번 현재의 가치로 계산해보자. 나는 7연대 1대대 소대장으로서 압록강까지 진격하였던 서근석 중령으로부터 당시 현지 평안도의 소 한 마리 값이 북한 돈으로 5천원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서근석 중령 - 7연대 창설 요원으로 압록강까지 진격했었다.

현재는 건강이 좋지 않아 와병 중이다.

 

 

5만원이면 소 열 마리 값에 해당하는 액수다. 장병들이 소 열 마리 값에 해당하는 현금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인데 그때 3 대대 장병은 편제에 못 미치는 700명 정도로 추산되었다. 대대는 한우 7,000마리 값의 현금 부자가 되어있었다. 현재 한우 수컷은 3-400만원 내외다.

 

이것을 환산하면 그 화차 한 량에서 3대대가 노획해서 나누어 가진 돈은 오늘날의 금액으로 환산하면 합계 200억이 넘는다는 계산이다. 오늘 날 한국에서 직원 수 백 명을 고용한 큰 기업을 차릴만한 거액이다. 당시 북한 정권은 국군과 유엔군의 북진에 쫓겨 평안북도 강계에 마지막 피신처를 틀고 있었다.

 

 

당시의 남북 열차들 - 대부분 미카터우모델의 일제로써 남북한 동일하게 사용했었다.

사진은 파괴된 한강 철도 복구 후 열린 재개통식

 

 


 

 

북진하는 국군들이 도처에서 본 것은 도망치는 북한군 지휘관들이 길 여기저기에 붙인 명령문에서 북한군 패잔병들에게 북쪽 강계로 집결하라는 내용들이었다. 이 열차 화물의 최종 목적지는 북한 정권과 북한군이 집결하고 있던 강계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

 


 

 

김일성은 이 강계 일대에서 마지막 방어 전투를 기획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개천에서 3대대가 노획한 8량이나 되는 T-34 전차가 가능성을 예시하고 있다. 전차 부대는 공격이건 방어건 주력 목표를 위한 군사 행동에 동원되는 수가 많다이대용 장군은 개천에서 노획한 전차들이나 보급품들이 소련에서 보내져 만주를 통해 만포진 쪽에서 넘어온 것으로 추측했다.

 

군수품등은 전황이 급한 평양에 투입 되었거나, 되던 중에 유엔군의 북진이 너무 급박하자 강계 방어를 위해서 되돌아 오다가 3대대에게 노획되었다는 추리된다고 이야기 했다한 화차 분의 붉은 화폐의 액수로 보아 북한 작은 도시의 금융 기관에서는 발견하기 힘들고 아마도 평양의 중요 은행들이나 금융기관에서 급하게 적재한 것일 것이라는 사실도 말했다.

 

그리고 1대대가 더 북쪽인 구장에서 노획한 열차는 역시 남쪽 평양으로 향하다가 공습이나 전황 급박 등의 기타 이유로 오도가도 못하고 구장에서 대기하다가 유기되었을 가능성도 이야기 했다. 이 전차들이 소련에서 보내졌을 가능성은 소련제 군복과 소련제 초콜렛 등이 강하게 예시하고 있다.

 


 

 

그럴 경우 화차에 가득 실린 이 거액의 화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김일성 정권은 도망쳐 온 이들 북한 관리들과 패잔병들에게 월급도 주어야 했었고 식량이며 주거지 마련과 장비 보충을 해야 했다. 완전히 와해된 부대들의 재편성도 필요하다. 여기저기에 막대한 자금이 필요 하였다

 

북한 열차 폭격

 

 

그러나 당시 강계로 도주한 북한의 김일성 정권에게는 이런 큰 돈이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다음 날 22 3대대를 초월해서 북진했던 1대대는 청천강가에서 김일성의 승용차를 포함한 70여대의 차량을 노획하였다. 김일성은 이곳에서 미군 폭격으로 교량이 부서져 도로가 막히자 차를 버리고 도보로 도망쳤다고 한다.

 

이런 지경으로 강계로 도주한 김일성은 재정 확보에 제대로 손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화차에 실린 거액의 현금은 정신없이 도망친 북한 정권에게 절실한 생명수와 같았다만약에 중공군의 개입이 없이 김일성이 강계 일대에서 최후 결전을 준비했었던 상황이라면 이 돈줄의 차단은 김일성으로 하여금 헛된 꿈을 버리고 일찌감치 만주로 줄행랑 치게 해 전쟁 조기 종결의 효과를 가져 왔을지도 모른다.

 

그 돈줄을 차단해버렸으니 3대대로서는 적 부대 몇 개를 섬멸 해버린 것보다도 더 값진 승리를 거두었다고 하겠다. 물론 이 붉은 화폐는 당시로서 적[]의 화폐이기 때문에 경제적 가치를 부여할 수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그러나 이 붉은 돈이 그대로 후방으로 후송되어 정보 당국에 활용되었다면 그 가치 이상의 진가를 발휘할 수가 있을 것이다그 당시 적진 투입을 전문으로 하던 KLO 부대도 있었고 북의 측면 황해도에서 후방을 들락거리며 그들을 위협하던 서북의 유격대들도 있었다. 이들에게 이 붉은 돈은 또 다른 무기가 되었을 것이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Trackbacks 0 / Comments 1

  • 벨지단토 2015.10.13 16:51

    우리나라도 T-34를 노획한 적이 있다는 걸 알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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