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연대 창설 1기 - 서근석 중령의 회고 -마지막-

 

 

 

 

 

 

 

 

 

 

 

초등 군사반 교육 수료 후 서근석씨는 다시 6사단 7연대 1대대 1중대장으로 보임되었다그는 1년간 중대를 지휘하면서 중공군과 여러 번의 전투를 겪어냈다. 서근석 씨는 52년도 말 동해안에 새로 창설되는 53연대의 창설 요원으로 차출 되어 19462월 첫 인연을 맺은 후 7 년간 생사를 같이 했던 7 연대를 떠났다.

 

 

 

 

   

 

일본군 군도를 가진 서근석 씨. 이 군도는 북진 때 북한 내무서에서 노획한 것임. 중공군 간부들은 표독스런 일본군에게 크게 데인 일이 많아서 중대를 거느린 서근석씨가 일본도를 휘두르며 돌격해가면 국군을 일본군으로 오인하고 쉽게 무너져 도망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청춘을 불사른 7연대와의 영원한 작별이었다. 이 해에 그는 대위로 진급하였다. 19537.27 휴전이 되고 그는 전후방 근무 교대 원칙에 따라 연대를 떠나 후방 보병학교로 전임하였다. 전후 서근석 씨는 직업 군인 생활을 계속했다. 1958년에는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예쁜 아내를 얻어 가정도 꾸렸다.

 

7연대가 배속된 6사단의 2연대에서는 여러 번 근무했었다. 그러나 그는 다시는 7연대로 돌아가지 못하였다전쟁의 급박한 시절, 군은 부사관들을 장교로 급조해 긴요할 때 큰 역할을 하게 했지만 전후  현지 임관 출신들은 진급시 눈에 안 보이는 벽에 부딪혀야 했다.

 

최갑석 씨처럼 육군 소장까지 진급한 분도 있었지만 현임들은 대개 소령으로 군 생활을 마감했고 능력자도 중령으로 군 생활을 마감했다. 서근석 씨도 19714중령으로서 길고 긴 군 생활을 마감하고 군문을 나섰다다행히 그 무렵부터 시작한 연금 제도의 수혜자가 된 것은 국가에 고맙게 생각한다. 그 뒤 그는 민간 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조용히 은퇴 생활을 즐겨왔다.

  

서근석 씨는 본인과 같이 군인의 길을 걷다가 육군 소령으로 예편하고 사업을 하는 큰 아들과 카이스트를 나와 회사에 근무하는 둘째 아들,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다.

 

   

영원한 초산인 서근석 중령

 

 

 

 

서근석 씨는 아들들의 효도를 받으며 현재 큰 아들과 같이 살고 있다. 그는 일 주에 한 번 효성 지극한 며느리와 간단한 안주를 만들어 소주 한 병 씩을 나누는 노년의 나날을 유유자적하고 있다그는 매년 1026일 압록강 진격 기념식에 이대용 장군과 같이 먼 철원군 동송읍에 방문하는 것을 빼지 않고 실천하고 있다.,

 

나는 글의 클로징 멘트로서 서근석 씨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서 중령 님에게 7연대라는 존재는 무엇일까요?”

 

서근석 씨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내 인생의 모체[母體]였어!”

 

'모체? !'

 

아둔한 나는 몇 시간 뒤에 지난 3237연대에서 한 말씀하시라는 연대 인사 과장 부탁에 한사코 이를 거부하던 서근석 씨의 마음을 알 수가 있었다68년 전 7연대는 찢어지게 가난한 조국에서 갈 곳도 없었고 할 것도 없었던 충청도의 젊은이들을 가난한 살림이지만 거두어 주고 보듬어 주었다그리고 그렇게 보듬고 가르친 자식들이 목숨을 던지며 조국을 지키는 역사의 현장을 지켜봤다이제 그 어머니의 품인 7연대가 70년의 공백을 뛰어넘어 갑자기 백발의 첫 아들을 다시 보듬으려고 했으니 서근석 씨가 어찌 말문이 막힐 정도로 감격하지 않았으랴!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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