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연대 창설 1기 - 서근석 중령의 회고 -5-

 

 

 

 

 

 

 

 

연대가 춘천으로 이동한 뒤인 19501서근석 씨는 춘천의 7연대 주임 상사로 전임하였다. 약관 23살의 나이였다. 그런 젊은 나이에 부사관으로서 최고의 직책에 올라간 것이었다춘천 7연대에 배속된 제16포병 대대가 있었다.

이 대대에 주임 상사인 최갑석 특무 상사가 있었다. 서근석 씨와 최갑석 씨는 춘천 일대 군부대의 단 두 명 밖에 없는 특무상사였다.

 

최갑석 상사는 서근석 씨와 비슷한 시기 대전에서 창설된 2연대의 창설 요원이었다그는 이등병으로 시작해서 83년 육군 소장으로서 36년의 군 생활을 끝내고 전역한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서근석 씨에게 당시 최갑석 씨를 만난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니 부대가 다르고 근무처의 거리도 있어서 얼굴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말을 나눌 기회는 없었다고 이야기 했다.

 

서근석 씨는 당시 어렵기는 했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군 형편으로 보아 자기는 부사관으로서 장기복무를 하고 군 생활을 끝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인생 설계를 했다그러나 1950625일 김일성이 도발해 온 민족 상쟁의 비극은 그의 인생을 쥐고 뒤흔들었다당시 춘천 지역은 임부택 중령의 7연대가 방어하고 있었다. 춘천 동쪽 샘밭 일대는 7연대 2대대가, 중앙의 춘천시 북방은 1대대가, 서쪽 가평 쪽에는 3대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2516포병 대대의 선전으로 하루 동안 공격을 중지했던 북한군은 다음날 춘천 방향으로 총공세를 취했다가 1대대와 16포병 대대의 대반격에 패주했다. 덕분에 7연대는 3일간 춘천을 막아냈다7연대가 전방으로 총출동을 하자 서 근석 씨는 춘천역 근처에 있던 7연대의 본부 인원들을 모두 모아서 춘천 시내 방어 부대를 편성하고 출동하였다.

 

대대는 물론 연대 본부까지 전방으로 총출동하였기에 연대 주임 상사인 서근석 씨가 춘천 후방 방어 부대의 총 대장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서근석 씨는 춘천의 북방 소양강 제방에 그의 급조 부대를 배치하였다. 그가 적의 침투에 대비했었던 급조 부대는 뜻 밖의 전과를 거두었다춘천 북방 옥산포에 있던 1대대의 눈을 피해 남으로 침투한 적군의 소부대가 소양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합수머리 근처에 있는 가래모기 나루터에 나타났다서근석 부대의 한 부대가 시민의 제보를 받고 달려가 마침 나룻배를 타고 소양강을 건너오던 일개 분대 규모의 북한군 병력들에게 집중 사격을 가해 모두 수장시켰다.

 

 

 

 

중앙은 춘천 봉의산이고 왼쪽 소양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오른쪽 백사장에 가래모기 나루가 있었다.

 

 

 

7연대는 잘 싸워서 사흘간 춘천을 방어해냈으나 38선의 국군 방어선이 모두 무너졌기에 전선 조정을 위해 철수하라는 명령을 받고 남하 철수를 개시하였다.

 

적의 주력 공격을 받은 서부 전선의 국군들이 한강 도강 때 다수의 장비를 잃어버리고 어려움을 겪었지만 7연대는 전투 손실 장비도 없었고 식량과 연료,그리고 차량들을 민간인들의 것까지 징발하여 확보했었기 때문에 보급에 지장을 받지 않고 싸울 수가 있었다민간인 물자 징발은 어차피 놓아두고 철수해봐야 북한군의 것이 되기 때문에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택한 방법이었다.

 

춘천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던 7연대는 후퇴 중에도 동락리 전투나 음성 무극리 전투, 그리고 원주 신림 고개 등에서 연승을 거두었다서근석 씨는 후퇴의 혼란 속에서 연대 특무 상사로서 임무를 다하다가 전황이 위급해지고 연대에 예비대가 급편성되자 그 부대의 소대장이 되었다연대가 문경 북쪽 옥녀봉에서 북한군과 힘든 전투를 할 때인 19508월 31서근석 씨는 소대장으로 전선에 투입되어 포화의 맛을 직접 체험했다.

 

7연대가 경북 문경의 옥녀봉 전투를 치루고 낙동강 전선으로 옮겨가자 전투는 점점 더 치열해지기 시작했다인원 소모도 극심했다. 간부들의 소모가 특히 커서 전투 지휘관 확보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예로서 7연대 1대대 1중대의 경우 중대장 이대용 대위가 이미 포탄에 맞아 후송되고 중대장 대리 한도선 중위도 미군기의 오폭으로 전사하였다. 중대 지휘를 맞은 소대장들이 연달아 전사하거나 부상을 입어 후송되자 연대 인사계였던 이한직 상사가 중대장이 되었으나 그도 전사하고 말았다. 이한직 상사는 서근석 씨와 같은 7연대 1기생으로 고향도 같은 청주였다.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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