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때문에 탄생한 경제체제 [ 3 ] 그들이 생각한 전쟁의 원인




전쟁 때문에 탄생한 경제체제 [ 3 ] 그들이 생각한 전쟁의 원인

 

알다시피 제2차 세계대전 전에 세계를 휘청거리도록 만든 거대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대공황(Great Depression)이다. 이 폭풍은 발원지인 미국을 넘어 세계를 순식간에 경제 빙하기로 몰아넣었다. 1차 세계대전의 최대 채권국인 미국 경제의 추락은 곧바로 세계 전체에 영향을 주었고, 이런 동시다발적인 위기는 인류사에서 보기 힘든 초유의 사건이 되었다.

 


 


[ 대공황 당시인 1930년 영국 런던의 구직 행렬 ]

 

난관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은 대외 채권을 회수하고 정부 재정 확대를 통한 적극적인 노동시장 창출로 돌파구를 마련하려고 했다. 이른바 뉴딜(New Deal) 정책이었는데, 알려진 것보다 그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영국과 프랑스는 본국과 기존 식민지를 더욱 배타적인 경제권역으로 분리하여 자력갱생하는 형태의 블록(Bloc) 경제 정책을 시도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는 국내 시장이 크거나 해외에 많은 식민지를 거느린 공통점이 있었다.

 


 



[ 후버 댐은 뉴딜 정책을 상징하는 토목 건축물이 되었다 ]

 

그리고 이때 전체주의 정권이 집권한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의 후발 자본주의 국가들은 경제를 통제하고 이웃나라를 침략하여 새로운 원료공급처와 상품소비처를 확보하려는 방법으로 대공황을 극복하려 했다. 내수 시장이 작아 대외로 눈을 돌린 것인데 문제는 그 방법이 교역이 아닌 침략이었다는 점이다. 2차 세계대전의 모든 원인이 이것 때문이라 할 수는 없지만 결국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당사자가 되었다.

 


 



[ 일본은 대륙을 지배하려 수탈하기 위해 중일전쟁을 일으켰다 ]

 

이처럼 국가별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각론적인 방법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내 배가 고프니 남을 생각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행동했다는 데 있어서는 모두가 똑같았다. , 나의 고통을 최대한 남에게 전가함으로써 위기를 돌파하려 했고 그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 1939년 폴란드를 침략하는 독일군 ]

 

경제학자들은 이처럼 자기만 살겠다는 이기적인 행동의 표현이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고 본 것이다. 그들은 폐쇄적인 세계 경제 체제는 전쟁을 불러일으킬 만한 요인이 많았고, 이런 원인이 제거되거나 개선되지 않는 한 비극은 앞으로도 재발할 것이라고 보았다. 이와 더불어 자본주의체제를 지키려면 가장 위협적인 세력이라 할 수 있는 공산주의와도 경쟁을 해야 했다.




[ 경제학자들은 경제 위기를 막지 않으면 전쟁은 재발한다고 보았다 ]

 

당장 추축국이라는 공적을 상대하기 위해 협력을 하고는 있지만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은 전후에 더욱 막강한 힘을 휘두를 것이 명약관화하였다. 근본적으로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와 공존할 수 없는 경제 체제였으므로 당연히 체제의 새로운 위험 요소가 될 것이 틀림없었다. 결국 오랜 연구와 토의 결과 미국과 영국의 경제학자 및 정책 담당자들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했다.

  * 추축국()제2 세계 대전 , 연합국() 대항한 나라. 특히 독일, 이탈리아, 일본 나라 가리킴

 


 


[ 독일이라는 공적을 상대하려 협력하였지만 영원할 수는 없었다 ]

 

첫째, 다른 나라에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자본주의 정책은 폐기되어야 한다. 국제간 상품 거래에 있어서 서로 이익을 볼 수 있는 자유무역이 이루어지는 것이 최선이므로 전쟁 이전처럼 블록 이외의 경제권과 거래를 제한하는 각종 장벽은 철폐되어야 한다.

둘째, 국제간 금융 거래도 자유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일국의 통화, 환율, 외환 등의 정책이 실패했을 경우 다른 국가에 끼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세계 금융을 거중조정할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

 


 



[케인스는 전후 새로운 질서를 구축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

 

이를 위해 상품 교역과 관련한 GATT(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와 국제 금융 질서 조정을 위한 IMF의 창설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정책의 산파가 대공황 당시 미국에 뉴딜 정책을 처방했던 영국의 유명한 경제학자인 존 M. 케인스(John M. Keynes).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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