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연대 창설 1기 - 서근석 중령의 회고 -1-

 

 

 

 

 

 

 

지난 2014323, 1946년에 창설된 강원도 철원 갈말 6사단 7연대에서 창설 68주년 기념식이 있었다. 부대 일정이 바빠서 조금 늦게 열린 기념식이었다.

 

  

 

 

7연대 본부 건물

  

 

기념식이 끝나고 연대장 고태남 대령과 7연대 출신 이대용 장군, 서근석 중령(이하 중령 생략), 그리고 지방 유지들이 배석한 가운데 점심 식사가 있었다. 식사 중간쯤 7연대 인사 과장 김정환 소령이 일어나 말을 꺼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서근석 중령님은 우리 7연대의 창설 멤버이십니다 서 중령 님, 소감을 한 마디 해주시죠!”

 

이대용 장군이나 서근석 씨는 해마다 1026일 압록강 진격 기념일이 되면 이 먼 철원군 동송읍의 7연대까지 찾아 와서 행사에 참석했다두 분 다 7연대 1대대의 중대장과 소대장으로서 같이 압록강까지 진격했었던 자랑스러운 전공이 있던터라 행사의 핵심 내빈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7연대는 이대용 장군은 잘 알고 있었으나 서근석 씨와는 행사 외에 별로 접촉이 없어서 그냥 압록강 진격 선배로만 알고 있었다.

 

연대의 인사 이동도 잦았고 서근석 씨도 자기 공로를 내세우는 성격이 아니어서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7연대의 인사과가 이번 행사 전에 우연히 그가 압록강 진격 7연대 용사였을 뿐더러 7연대의 창설 요원인 7연대 1기생이었으며 연대의 초대 주임 상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벤트성 깜짝 쇼를 준비했었던 것이다.

 

7연대의 조심스런 준비를 모르고 참석했었던 서근석 씨는 예년과 다르게 행사장 귀빈석에 자기의 이름이 쓰인 VIP 좌석이 있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김정환 인사 과장의 한 말씀 감회를 말해달라는 뜻 밖의 요청에 서근석 씨는 벼락에 맞은 듯이 멍한 표정을 짓더니 입을 여는 것을 한사코 사양했다.

 

의외였다. 서근석 씨는 친화력이 강한 외향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더구나 대단한 달변가였다.그런 분이 갑자기 말하기를 거부하니 돌발상황이라고 아니 할 수가 없었다후배들이 큰 관심을 가지고 이 대 노선배의 한 마디를 들어보고자 했지만 이 노병은 고개를 푹 숙이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보니 울음이 터지기 직전의 표정이었다왕년의 중대장 이대용 장군의 권유에 겨우 일어나서 몇 마디 하더니 말을 못 하겠습니다.미안합니다.” 하고서 주저앉아 버렸다. 후배들은 박수로써 그를 격려했지만 고개를 숙인 서근석 씨는 말이 없었다.

 

 

 

 

갑작스런 지명에 감격에 겨워 말문을 못 여는 서근석 씨

왼쪽이 압록강 진격 중대장인 이대용 장군, 다음이 연대장 고태남 대령

 

 

 

나는 나중에 왜 그러셨냐고 물어보았다. 서근석 씨는 쑥스럽다는 듯이 대답하였다.

 

너무 감격해서

 

86세의 노병은 19세에 몸을 담고 일생의 중요한 시기를 보낸 7연대의 후배들이 자신의 헌신(獻身)을 알아주는 것이 가슴이 철렁할 정도의 충격을 주더라는 것이었다. 서근석 씨는 7연대에 몸을 담고 창군의 어려움을 모두 겪어내고 군 생활이 몸에 익어갈 때 바로 6.25 전쟁이 터졌다그리고 국군이 낙동강으로 후퇴하고 다시 반격하여 압록강으로

진격하고 또 중공군의 개입으로 또 다시 철수하는 어려운 과정에서 여러 번 목숨을 잃을뻔한 고비를 넘기며 살아나고 27년간의 군 생활을 했었다.

 

군 생활 중에 서 근석 씨는 여러 부대를 이동했지만 자신의 꿈을 펼치기 시작한 이곳 6사단 7연대를 항상 잊지를 못했다식사 후 고태남 연대장의 집무실에서 7연대 원사들과 같이 가진 간담회에서 창설 초기와 한국 전쟁 중에 두 분이 털어놓은 최강 연대 7연대의 비화들은 산전수전 다 겪은 7연대 원사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서근석 씨, 고태남 연대장, 7연대 원사들

 

 

 

공식적인 몇 종류의 전사 서적들에서도 언급되지 않은 서근석 씨가 회상하는 7연대 창설의 생생한 역사는 걸어다니는 비밀 창고에 비장된 보물과도 같았다나는 기회를 얻어 그분으로 부터 7연대 창설, 아니 우리 국군의 창설 비화를 기록할 수가 있었다

 

그의 회상은 해방이 된 1945년 충북 청주로부터 시작된다. 서근석 씨는 청주 근교 농촌의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일찌감치 어린 나이로 취업 길에 나서야 했다. 그는 16세에 취직의 줄을 얻어 상경했다그가 일하게 된 곳은 영등포구 신길동의 글라이더 공장이었다. 이 공장에서는 목재와 헝겊으로 만들어지는 군수와 민수의 글라이더를 생산하고 있었다. 서근석 씨는 이곳에서 목공의 기술을 배웠다.

 

1945년 태평양 전쟁도 막바지에 밀리고 회사의 형편도 어려워지자 서근석 씨는 청주 집으로 돌아와 실직 상태로 놀고 있었다1945815일 전쟁이 끝나고 미군들이 들어와 미군정이 시작되었다. 서근석 씨의 집은 청주에서 약 8km 떨어진 농촌이었다. 그는 가끔 걸어서 시내에 나가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들었다.

 

해방이 되고 몇 주가 흘렀을 때 친구들이 청주 시내에 '장정대[壯丁隊]'라는 치안 유지 자위조직이 창설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 조직은 일본군 소위였던 민기식 씨가 조직한 것이다민기식 씨는 종전이 되고 서울에 학병 동맹이라는 것이 생기자 여기에 가입했는데 이 조직이 좌익 색채를 가진 단체라는 것을 알고 194591일 과감히 탈퇴하고 귀향하였다. (계속)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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