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공비 정순덕 흔적을 찾아서 -4-

 

 

 

 

 

 

나는 그런 말을 들었기에 더 묻지도 않고 돌아 나와 다시 차를 타고 계곡을 되집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정순덕의 체포 장소 탐방은 성과없이 끝나나 했다그러나 오리발을 내밀던 여자의 식당에서  불과 200m 아래 도로 옆에 무슨 안내판이 있는 것이 언뜻 눈에 들어왔다올라올 때는 보지 못했던 안내판이었다.

 

갑자기 육감이 움직이기에 차를 세우게 하고 안내판을 자세히 보았다. 정순덕이 체포된 지점이라는 설명과 함께 정순덕에 관한 여러 일화들을 설명하여 놓았었다그녀가 쌀과 농구화같은 생필품을 얻기 위해서 방문했다가 총을 맞고 죽은 성시백의 집은 물론이고 경찰 두 명이 열흘 간 잠복했었던 뒷 집 성환석의 집도 이미 없어지고 빈터만 남았다.

 

 

사진을 다시  올린다현재의 길은 아래 집 앞으로 통과하고 있다.

 

 

 

빈터만 보고도 정순덕 일당이 계곡 최상류 꼭대기의 마을을 접선지로 선택한 안목에 일단 긍정이 갔다.

  

 

 

 정순덕 체포 장소 안내판

정순덕이 살았던 장소가 아니었으나 살다가 체포되었다는 잘못된 정보를 소개하고 있다.

 

 

 

계곡 아래의 마을을 접선지로 택했었더라면 산으로 통하는 도주로가 쉽게 읽혀 매복 당하기도 쉬울텐데 이곳 계곡의 상류는 능선이나 넓은 사면 어느 곳으로도 도주가 간단하여 이런 위협 가능성이 적다이 곳은 삼장면 지서에서도 매우 먼 산간 고원이었으니 경찰의 경계망도 소홀히 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 같아서는 정순덕의 자취를 더 둘러보고 싶었으나 이번 방문이 강삼수 경위의 취재가 목표였었기 때문에 시간이 없었다두 달 뒤에 강삼수 경위가 대전 현충원으로 이장 될 때 그곳에서 뵌 참전 경우회 김을로 총장님의 사모님이 뜻 밖에도 정순덕과 이웃에 살았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강삼수 경위의 대전 현충원 안장식에서 눈물 흐르는 얼굴을 감추는 김을로 총장 사무님. 부인 이종이 여사와 친분이 남달랐다고 한다.

 

 

 

그분에게서 정순덕이가 17세에 성석조라는 시골 청년에게 시집을 갔다가 6.25 동란에 휩쓸린 초기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정순덕은 시집을 가고 산청군 삼장면 내원리에 살던 그녀의 부모는 그 깊은 골에 공비들이 득실거리고 토벌이 심해지자 김을로 총장 처갓집이 있는 삼장면 소재지에 옮겨 와 피난 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시집을 갔던 정순덕이 친정 집으로 찾아왔다. 깜짝 놀란 부모가 남편은 어디가고 너만 이렇게 혼자 왔느냐고 물어 보았는데 어디 갔는지 몰라요. 알아서 찾아오겠지요.”라며 정순덕은 태연하게 이야기 하더라는 것이었다.

 

부모에게 야단을 맞았지만 그녀는 별로 고민하는 기색이 없었다. 보니 그 남편 성석조는 이미 입산해서 공비들을 따라 다니고 있을 때였다. 좀 얼띤데다가 우쭐대기 좋아하는 그는 북한군이 들어오자 좌익이 되어서 설치다가 수복이 되자 마누라를 놓아두고 공비가 되었다.

 

그는 공비 부대의 BAR[자동 소총] 사수가 되었다가 언제 죽었는지 모르게 사라졌다. 정순덕은 입산후 성석조를 한 번 만났지만 금방 헤어지고 그 뒤에는 그를 만나지를 못했다정순덕은 어머니와 사는 동안 동네 처녀들과 어울렸는데 노래를 잘했었고 달음질도 잘했지만 상당히 건들거리는 성격이 있었다그러다가 갑자기 없어져서 부모의 애간장을 타게 했지만 이때 남편을 찾아 입산한 것이었다.

 

정충제 씨가 쓴 그녀의 자서전을 보면 그녀가 남편의 행방을 대라는 경찰의 고문에 남편을 찾으러 산으로 갔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사실은 그 기술과 맞지 않다정순덕의 부모는 맏딸인 정순점이 시집을 갔다가 소박을 받고 돌아와서 속앓이를 하는 상황에 정순덕이 마저 공비가 되어 버렸다. 부모는 둘째 딸 때문에 경찰에 시달리며 정신적인 고통 속에 살아야 했다.

   

 

언니 정순점

 

 

 

맏딸인 정순점은 나중에 재가해 사망한 것으로 쓰여 있는데 정신적인 질병이 있었다고 한다정순덕을 알고 있던 김을로 총장의 사모님은 기막히게도 정순덕과 최후까지 있었던 이홍희와 소학교를 같이 다녔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려주었다이홍희는 역시 삼장면 홍계리 출신이었다. 정충제 작가의 실록 정순덕에 작가가 직접 현지에 가서 취재 했었던 이홍희의 인물됨에 관한 글이 있었다.

 

이홍희는 대단히 똑똑하고 야무진 소년으로서 주변의 기대가 아주 컸었다는 것이었다김을로 총장 사모님도 동창생 이홍희가 특수하게 머리가 좋아서 선생들도 총애하는 학생이었다고 한다. 그가 공비가 되지 않고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갔으면 출세한 시골 청년의 길을 갔을지도 모른다이홍희는 공비 노릇을 하면서 주도적으로 사람들을 여럿 죽인 살인범이었다. 그가 경찰의 칼빈 총 난사에 목숨을 잃은 것도 어찌보면 사필귀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중상을 입고도 담을 넘으려다 사살당한  이홍희

 

 

 

어린시절에 주위의 촉망을 받았던 소년으로서 참 괴물스런 타락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다만약 전쟁이라는 마술이 그 지리산 자락을 덮치지 않았더라면 정순덕은 억척같은 촌부로서 단란한 삶을 살아갔을 것이고 똑똑했다던 이홍희도 능력있는 사회인으로 행복하게 살았을 수도 있었다. 우리 민족을 비극적으로 덮친 이데올로기 때문에 두 남녀의 인생을 꾸미로 묶어 공동의 최후를 맞게 한 것은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없다. (끝)

 

 

 본 글은 "국방부 동고동락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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